정부의 '건국 60주년' 행사에 대한 논란은 상해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13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학술 논쟁이면서 두 개의 남.북 국가 체제 탄생을 의식한 이념적 요소가 개입돼 있다.
올해를 '남북 정부수립 60년'이라고 규정한 '역사비평' 편집위원회는 ▷정치(박정희-김일성) ▷언어(최현배-김두봉) ▷문학(염염상섭-한설야) ▷법조(유진오-최용달) ▷과학(이태규-리승기) ▷역사(이병도-김석형) ▷영화(윤봉춘-문예봉) ▷무용(조택원-최승희) 8개 분야에서 남과 북의 라이벌 16명의 삶을 이 책에 모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쓴 '박정희와 김일성: 한국적 근대화의 두 가지 길'이 흥미롭다.
남북한 정부수립 당시 이승만(1875~1965)은 일흔 셋이었고 김일성(1912~1994)은 서른 여섯이었다. 두 사람이 남과 북의 정치적 라이벌이기엔 나이 차가 너무 컸다. 김일성은 13년 뒤에야 자신의 진정한 라이벌을 맞는다.
박정희(1917~1979)는 김일성과 나이 차이도 다섯 살 밖에 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만주군 장교 다른 한 사람은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로서 두 사람 모두 만주에서 군사적 경험을 쌓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에 의한 치열한 체제 대결은 결과적으로 남측의 박정희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여기에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김일성은 간접적으로 박정희의 개인적 삶을 '구원'했고 그와 그 체제의 승리를 역설적으로 도왔다. 1948년 여순사건으로 체포된 뒤 무위의 세월을 보내던 박정희는 한국전쟁 때문에 남한 군부에서 재기할 수 있었다.
박정희의 '좌익 경력'을 김일성이 전쟁을 통해 씻어준 셈이다. 또 김일성이 도발한 한국전쟁은 남한사회에서 군부의 급속한 과대성장을 가져왔다. 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군부에 대한 남한 국민의 신뢰도 커졌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가 성공할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박 교수는 김일성을 가리켜 "자기가 제공한 토대로 인해 자신이 패배하는 비극적 패러독스의 주인공"이라고 규정한다.
한글학자 최현배(1894~1970)와 김두봉(1889~1960?)은 남북한 언어의 분단을 막은 학자로 조명된다.
분단 반세기가 넘었지만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한글전용 가로쓰기 형태주의에 입각한 맞춤법 등 문자 생활의 기본적 틀이 유사하다.
남북한 언어 정책의 골격을 세운 두 학자가 주시경의 애제자로 절친한 학문적 동료였기 때문이다. 김두봉은 한글학자로서 항일 무장투쟁에 가담해 북한 정계의 거물이 된 인물이다.
그는 1947년에 북한 학교에서 가르칠 문법책을 고를 때 자신의 저서 대신 최현배의 책을 추천할 정도였다.
한문에서 한글로 문자생활의 전환. 남북한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언어혁명'은 이 두 학자의 공로였다.
# 080915_북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