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의 은행원 생활을 마감한 벤자민 홍 전 새한은행장. 그의 이력은 미국계 은행의 아시아지역 본부장과 한미은행장 나라은행장 그리고 은퇴 전에는 3년간 새한은행 행장을 역임하는 등 화려하다.
"은퇴한 뒤 가장 큰 변화라면 마음에 여유가 더 많아졌다" 것이라고 말하는 홍 전행장을 만나봤다.
- 새한은행을 떠나기 전 송별파티를 했다고 들었는데
"퇴임 직전 빅베어의 레이크 애로우헤드 케빈에서 간부급 직원들과 함께 1박2일의 송별파티를 가진 게 인상적이었다.
은행을 떠날 때마다 선물을 주고받는 대신 기억에 남도록 같이 일한 직원들의 얼굴과 음성이 담긴 비디오를 받는데 매번 새로운 기분이다. 또 시간이 흐른 뒤 보며서 당시를 회상할 수도 있어 좋다고 본다."
- 사실상 은퇴를 했는데 지금의 심정은
"사실 마음의 여유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를 위해 집에 크고 좋은 애플컴퓨터도 장만했다. 앞으로 하루 2시간은 전문분야에 대한 리서치도 하면서 보낼 생각이다.
재직시절 책을 읽으면서 은퇴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특히 은퇴 후 자신의 패션을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마음으로도 준비를 많이 해야한다."
- 은퇴 후의 생활은
"이제는 일을 할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싶다. 우선 책도 많이 보고 가능하다면 책을 써 보고싶기도 하다. 아울러 관심있는 학문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늘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실천해 보고싶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어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궁금하고 조그만 지구 위에 있는 내가 '태양계와 우주를 어떻게 이해야하는지'도 고민해 보고 싶다.
이렇게 하면 나름대로 철학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죽음에 대한 이해심도 생길 것 같다.
- 한인은행에서만 3개 은행의 행장을 거쳤는데
"한미은행을 떠날 때는 떠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이사회와 찜찜한 관계속에 나왔다. 당시는 사실 행장직을 떠나는게 기분이 언짠기도 했었다. 반면 나라은행에서는 한미은행의 경험이 있어 더 많이 준비했다.
후임자를 선발하는 역할도 했고 순조롭게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 후유증이 발생하며 안좋은 상황이 벌어졌다.
새한은행은 한미와 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이상적으로 떠난 것 같다. 특히 우호적으로 전임 행장과 후임 행장이 함께 자리하는 이취임식도 가지며 좋은 선례를 남긴 것 같아 기쁘다.
또 컨설팅을 통해 후임 행장도 도와줄 수 있는 길도 열어놨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행장이 쫓겨나는 모양새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년 가까이 한인은행에서 근무한 보람은
"한인은행이 처음에는 한국은행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했는데 한미은행 재임중 한미를 미국식은행으로 바꾸는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여성 인력도 발굴 활용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미국식 경영을 한인은행에 접못시킨 성과로 생각한다. 또 한인은행의 주식을 자본시장에 소개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뉴욕 진출도 성공적 선택이었다고 치부한다."
- 현 금융권 상황과 한인은행을 어떻게 보는지
"한인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위주로 컸다. 이런 가운데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고 상황은 악화되어 가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한인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영향은 미칠 것으로 보고있다. 그리고 문제는 그런 시기가 오고있다는 점이며 한인은행들이 이를 극복할 준비를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금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 한인은행권 최고참으로 한마디 한다면
"최고참 은행선배로서 큰 꿈은 없다. 앞으로 많은 후배들과 기회가 되면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후배들에게 배우면서 내가 갖고있는 경험과 지식을 전달해주고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은행계의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제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물러나 무대감독과 같은 조연 역할을 하고 싶다."
▷벤자민 홍 전행장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졸었했고, 70년 도미한 뒤에는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의 MBA과정을 마쳤다.
또 71~84년까지는 지금은 웰스파고로 합병된 퍼스트 인터스테이트은행에서 근무하며, 아시아지역 본부장까지 역임한 뒤, 88년부터 94년까지 한미은행장을, 또 94년부터 2004년까지는 나라은행을 맡았었다. 은퇴 직전인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새한은행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