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있는 와인회사에서 인턴십을 할 때의 일이다. 동료인 제이드는 하루에 한번 30분간의 커피브레이크를 칼같이 지켰다. 시계바늘이 2시를 가리키면 여지없이 일을 멈추고 커피를 준비해서 정성스레 음미했다. 내 눈길을 붙잡은 것은 '셀프 커피' 하는 방식이었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액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붓고 마멀레이드 잼 한 스푼을 넣고 휘휘 저어 마시는 거였다. 그 요상한 커피를 바라보는 내게 한마디. "It's my own style." 커피에 잼을 넣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왜 난 그런 생각을 한번도 못해봤지?
미국의 커피전문점에선 이런 일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주문하는걸 보면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다. '더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 '에스프레소에 무지방 우유 거품 쵸코시럽추가' 등등...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푸치노 같은 정통 커피 레시피조차 미국인들의 입맛에 따라 변형되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이탈리아 '카푸치노 수난사'라는 말까지 있을까/.
제 자식같은 카푸치노가 미국땅에서 정체성을 잃기 직전까지 가자 카푸치노 종주국 이탈리아가 뚜껑이 열린 건 당연지사.
그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07년 초부터 카푸치노의 기준을 만들어 미국에 제시하더니 급기야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커피는 카푸치노라고 부르지 말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카푸치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카푸치노는 25ml의 에스프레소 원액에 거품을 낸 우유 125ml를 섞어 도자기 잔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면 하얀 거품이 콧수염처럼 입술 바로 위에 묻어나야 하고 다 마셨을 때는 우유 자국이 컵 바닥에 남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은 생각한다. '니 마음대로 하세요'
한국은 미국과는 좀 다르다. 때는 별다방 콩다방 등 커피전문점들의 상륙 초창기. 다방커피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수십 가지 커피 메뉴 앞에서 당황하기 일쑤였다. 쿨 해지고 싶은 욕망은 속 쓰린 에스프레소를 견디게 만들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위를 훑어 내릴 정도의 쓴맛이어야지 최고라고 말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진심으로 그 쓴맛을 좋아하는게 아니라면 더 이상 참지 말아라. 약도 아니고 정신건강에 안 좋다.
에스프레소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듬뿍 넣어 걸쭉하고 매우 달게 마신다. 설탕 넣어 먹어도 된다. 설탕이 싫으면 다른 것도 괜찮다.
달콤한 메이플시럽을 한 스푼 넣으면 쓴맛이 훨씬 줄고 다크 쵸콜렛을 한 조각 넣고 녹여 먹으면 달콤쌉싸름한 모카 맛이 난다. 꼬냑 등의 브랜디를 부어 마시면 와인의 향처럼 그윽하다. 머그컵에 에스프레소25ml 탄산수200ml 시럽 1스푼을 섞고 얼음을 가득 채워 마셔보자.
탄산수와 시럽을 넣는 대신 사이다로 대신해도 좋다. 이젠 추억의 음료가 된 '맥콜'맛이 나는데 그 맛이 구수하고 꽤 괜찮다.
# 081006_김은아의 푸드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