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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이 보는 미국정치] 오바마의 아이덴티티

New York

2008.11.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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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 소장
2007년 12월6일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맨해튼 할렘을 찾았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고서 가장 먼저 달려온 곳이다. 그는 1980년대 컬럼비아 대학에 다닐때 이곳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인종과 빈곤 문제에 화두를 던진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가 대학에 다닐 때 할렘은 125 스트릿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천국이고 한쪽은 지옥이었다. 이유는 단지 흑인과 백인 동네라는 차이었다.

청년시절 ‘실존’에 대한 고민을 신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해 의식을 굳건히 한 곳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백인 동네와 흑인 동네의 차이를 아침 저녁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자신의 삶을 공적인 영역에 결합시키겠다고 바로 이곳에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오바마는 컬럼비아 대학을 떠나 시카고에서, 보스톤에서 그리고 지역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그가 가장 그리워했던 곳은 바로 이 맨해튼의 할렘이었다.

오바마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기반은 견고하다. 미국내 흑인 지성인들이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들 스스로 ‘피 한방울의 법’은 침묵으로 공유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유색인종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백인이 아니다”가 피 한 방울의 법칙이다. 농장주인 백인 남성이 노예인 흑인여성을 수시로 겁탈했다. 그렇게 생산되는 자식은 여지없이 노예로 내몰렸다. 그러한 역사속에서 별난 희생을 다 치르면서 흑인들은 피의 투쟁의 결과로 민권법을 통과 시키고 마침내 투표권을 쟁취했다.

오바마는 대권선언을 하고서 10개월이 지나서야 맨해튼 할렘을 찾았다. 20년만에 찾아온 맨해튼 할렘의 아폴로 극장은 1960년대 흑인문화의 상징이 됐던 곳이다. 말콤 엑스가 뒷골목에서 헤매다가 철든 곳이고 킹 목사가 미국의 본질을 파헤친 곳이기도 했다.

흑인들의 영웅이었던 킹 목사와 말콤 엑스 이후 40년만에 대통령에 출마한 흑인 후보가 아폴로 극장에 나타났다. 말콤 엑스가 흑인들의 분노를 폭팔 시켰던 아폴로 극장의 바로 그 무대에 오바마가 올라섰다. 극장 2층 난간에 입장한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을 앞둔 정치 후보자가 아니었다.

흑인 특유의 커다란 몸동작을 하면서 껑충껑충 무대에 뛰어 오르던 오바마는 몸짓과는 달리 비장하고 엄숙한 표정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선지자 같은 이미지였다. 그는 흑인사회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특별한 능력은(주류사회의 특별한 일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공적인 사회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자신이 ‘혼혈 흑인’임을 냉정하게 자각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철이든 때라고 했다. 개인이 특출하게 튀어 오르는 길을 거부했고 집단사회의 평균적인 지위상승에 집착했다. 그러한 의지로 그는 삶의 목표를 확고히 했으며 그러한 그의 삶의 목표는 미국이란 거대한 사회의 희망으로 다가왔다. 백인 동네에 산다고 한국인이 백인이 될 수는 없다. 어머니가 언챙이라고 밖에 나가서 우리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이 사람이겠는가? 오바마의 자각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흑인이 흑인임을 분명히 했을 때 사람이 됐다는 것을 미국 역사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대선기간 중 오바마에 열광한 한인 2세들은 아직도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얘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하버드 법대’(명문대)란 학력을 동포사회 미래에 기꺼이 투자하려는 한인 2세들이 눈앞에 보인다. 그들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를 롤모델로 삼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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