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매니 라미레스(36)는 치솟는 기름 값에 빗대 FA 대박을 예상하며 신나했다. 7월 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LA 다저스로 이적한 매니는 딱 두 달간 53게임을 뛰며 타율 3할9푼6리 17홈런 53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FA까지 됐으니 '오라는 곳도 많고 부르는 게 값'이었다. 기고만장한 매니는 "기름 값은 치솟고 내 몸 값도 덩달아 오른다. 기름 값이 과연 어디까지 갈 지…"라며 영입경쟁에 나선 팀들을 약올렸다.
'열 흘 붉은 꽃 없다'고 매니의 환상이 깨지는 데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매니의 '기름 값' 발언 후 일주일도 안돼 갤런당 5달러까지 갔던 개스값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엔 1달러 후반대까지 내려왔다. 서민들의 안타까움을 모르쇠하며 기름 값 폭등을 나홀로 즐기던 매니의 처지도 이젠 더 이상 큰 소리를 칠 상황이 못된다. 전 세계를 휩쓴 경제난으로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프로스포츠계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매니의 꿈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개스 값과 연동시킨 매니의 몸값은 어디까지 떨어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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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의 선택 주목
매니는 지난 1일 소속팀인 LA 다저스로부터 연봉조정신청을 받았다. 7일까지는 조정신청에 대해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O.K.'를 하면 매니는 다저스와 협상해 1년 계약을 해야한다. 'NO'라면 그대로 FA시장에 남아 몸값 저울질을 하면 된다. 다저스로선 매니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좋다. 거부하면 A급 선수를 놓친 데 대한 보상으로 내년 6월 신인드래프트 때 지명권 2장을 얻을 수 있다. 받아들인다면 1년 계약으로 강타자를 보유할 수 있다.
1년 계약 몸값이 역대 최고인 3000만 달러가 되더라도 다저스로선 당초 제시했다가 거절당한 2년 4500만 달러보다 많은 돈을 세이브하게 된다. 나이 많은 FA와의 장기계약은 '득보다 실'이 많은 점에서 다저스는 여전히 환영할 만 하다. 평균연봉 2500만 달러에 6년 계약으로 총액 1억5000만 달러를 노리던 매니로선 전혀 원하던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FA시장에 남아 있어도 입에 맞는 '떡'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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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양키스 메츠도 'NO'
다저스의 제안을 거부할 때만 해도 매니는 여전히 '블루칩'이었다. '큰 손' 양키스가 계속해서 "관심있다"는 말을 했고 메츠 LA 에인절스까지 1억 달러 이상 딜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위축되는 경제상황은 '빅마켓'팀들의 씀씀이까지 제한했다.
메츠는 꼭 필요한 선발투수진 보강을 위해 현금지출을 자제하기로 했다. 양키스도 하비에르 내디 마쓰이 히데키 자니 데이먼 등 좌우측 외야를 맡을 선수들이 있는 만큼 많은 돈을 들여 매니를 영입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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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시장도 악재
지난 여름만 해도 수준급 외야수 애덤 던의 FA 연봉은 1500만 달러를 호가했다. 그러나 최근 가격은 절반선으로 떨어졌다. 팻 버렐도 던과 비슷한 처지가 됐고 양키스에서 최근 풀린 3할 타율의 외야수 어브레유도 1년 연봉만 많이 주면 당장 사인하겠다는 판이다.
구단들은 연봉 2500만 달러에 5~6년 장기계약을 노리는 매니를 잡느니 팻 버렐 어브레유에 1년 몸 값을 더 쳐주고라도 계약하는 게 현실적이란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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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욕심
매니는 보스턴에 남아 있었으면 앞으로 2년 동안 4000만 달러를 더 받을 수 있었다. 2001년 보스턴과 8년 동안 연평균 2000만 달러를 받기로 계약했고 같은 조건으로 2년의 옵션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니는 FA시장에서 더 큰 대박을 위해 보스턴이 옵션행사를 포기하도록 요구했고 다저스로 옮겨 '대박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최소 5년 이상 계약에 1억 달러 계약만 해도 보스턴 때보다 6000만 달러의 금액이 늘어난다는 계산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을 장담할 수 없는 탓에 FA 장기계약은 가장 확실한 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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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보라스는 과연
최대 규모 계약을 따내기로 유명한 수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판단 미스도 매니를 궁지로 모는 데 한 몫했다. 보라스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큰소리를 쳤다. "메이저리그는 1929년 대공황에서도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는 지금의 경제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차피 영향을 받는다면 그 것은 매니같은 특급 FA가 아니라 그 아래급 선수다"라며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돼 매니의 몸값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라미레스의 친구들은 그가 보라스로 하여금 연봉조정신청을 수용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라스에게는 쉬운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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