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학생선교회(CCC)를 창립하고 총재를 맡았던 빌 브라이트(Bill Bright)는 남부 캘리포니아 출신의 보수적인 사업가였다. 그는 정치적으론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모든 이슈에서 공화당 우파와 의견을 같이 했다.
나중에 세계 최고의 복음 전도자가 된 빌 브라이트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집착했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기독교의 전세계화를 이루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청년 지식인들을 조직해서 미국을 복음화하고 이러한 조직을 바탕으로 전세계를 기독교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에 성경공부 그룹을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전세계 대학을 파고들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김준곤 목사가 학원·민족·세계복음화를 부르짖으며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KCCC)를 조직해 이끌었다.
6.25전쟁때 아내와 부모가 학살당하는 시련을 겪었고 그러한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한다. 김준곤 목사의 한국대학생선교회는 한국대학에서의 기독교 운동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6년 빌 브라이트(Bill Bright)는 보수주의 크리스천들을 정치적으로 규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는 미국의 도덕적 타락을 크게 염려했고 미국을 회복시키려면 정치권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 그것은 곧바로 극보수주의 정치 아젠다를 의미했다.
대권을 꿈꿨던 애리조나 출신 극우정치인인 존 코란(John Conlan)과 함께 정치권력을 목적으로 복음주의 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셀 그룹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정치권내 종교적 우파를 탄생시키는 최초의 시도가 되었다.
팻 로버트슨의 기독교연맹, 제리 폴웰의 도덕적 다수 같은 강력한 기독교 정치단체가 탄생하기 여러해 전의 일이었다. 빌 브라이트의 이러한 섣부른 시도가 씨가 돼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은 그들이 금과 옥으로 여기는 사회가치 아젠다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은 교회와 사회의 중간지대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바로 병원과 학교 그리고 미디어 왕국을 건설했다. 워싱턴 정치권력내 공화당 우파와 정치적 보수주의 아젠다를 공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교회가 시장의 자본과 결탁을 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성장세의 미국교회가 사회·정치적인 불평등의 문제에 둔감하게 되었고 빈곤의 문제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교회도 덩달아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성령부흥운동·국가조찬기도회 등이 바로 그러한 현상이다.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의 또 다른 희망은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가 서서히 변하고 있는 조짐이다. 지난 8월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에 기독교 복음주의 교단내 가장 영향력이 큰 릭 워렌 목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새들백교회에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초청했다.
기독교 가치 아젠다에 대한 후보들의 정견을 듣는 것이지만 분명히 그것은 건강한 사회, 평화와 공존을 위한 기독교 세력의 변화였다. 기독교 아젠다와 글로벌 이슈가 공통되는 부분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십자군을 전제로 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었다. 빈곤과 환경이 주제였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바로 이때에 ‘릭 워렌 목사’로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기도할 사람으로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정해졌다. 오바마의 진보성에만 주목하는 좌파측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오바마의 일관된 리더십은 ‘통합’이다.
오바마는 시민사회를 통합해서 위기에 처한 미국을 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5%도 안되는 부자들의 나라가 아니고 95%의 시민들을 미국사회 중심에 세우겠다는 그의 정치철학이 엿보인다.
# 김동석이 보는 미국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