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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인씨 7대륙 최고봉 등정기-4]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온난화로 만년설이 다 녹아요'

Los Angeles

2009.01.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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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했던 '하얀 산' 영원한 추억으로 사라져
쓰레기·환경파괴…검은 대륙 참상에 씁쓸함만
영화‘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봤듯이 정상엔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이 태양에 눈 부시고, 달콤한 러브 스토리가 달빛에 흘렀다.

잃어버린 사랑도 되돌아 올 것 같이 로맨틱했던 하얀 산(스와힐리어의 원뜻)은 이제 더 이상 그런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영원히 볼 수 없는 추억의 옛 산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프리카 야생동물인 악어뱀임팔라 등으로 만든 요리'야마쪼마'의 맛이 보기만 못하다. 질기고 냄새를 덜 빼 누린내가 심하다. 먹다 말고 탄자니아의 소도시 아루사에 있는 민속식당을 나온다. 모시를 거쳐 마차메 게이트 (1800m)에서 입산 수속을 끝내고 산행에 들어간다.

마차메 게이트를 출발한 지 5일만에 정상을 밟는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띵한 두통이 스치듯 왔다 사라진다. 화산 분화구의 가장 높은 검은 돌 무더기가 정상이다. 검은 화산돌은 구멍이 숭숭 나 있다. 별탈없이 힘든 줄 모르고 올라오니 관광인지 원정인지 헷갈린다.

정상인 우흐르 피크의 나무 팻말 앞에서 증명사진 같은 기념사진을 먼저 찍는다. 그러나 팻말이 눈에 거슬린다. 찢어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너덜거린다. 그 밑은 찌그러진 빈깡통 쓰다버린 낡은 등산용품 등 쓰레기가 지저분하다. 화산돌의 구멍마다 인간의 때가 묻어 있다. 과자 부스러기 음식 찌꺼기가 끼어 있다. 애달픈 정상의 모습이다.

검은 대륙이라는 자리 탓일까 아니면 남보다 덜 가진 가난 탓일까. 다른 대륙의 최고봉도 이런 괄시를 당할까. 푸대접을 받지만 푸념조차 못하는 신세다. 이 곳 산세와 비슷한 남가주 지역의 산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환경 파괴의 일그러진 참상이 아닐수 없다. 씁쓸한 기분이다.

백록담크기의 열 배쯤 되는 분화구는 척박한 맨땅이다. 그 안팎으로 만년설이 드문드문 눈에 뜨인다. 많지 않다. 열개 남짓하다. 높이 2-3층 아파트 정도의 얼음 덩어리부터 커 봤자 실내 야구장 정도다. 모두 각이 났다. 위에서 아래로 줄이 패여 있다.

분화구 안쪽은 거대한 가마솥을 방불케 한다. 만년설이 그 안에서 바글바글 끓듯 녹는다. 흘러 내리는 물이 흥건히 괴여 있어야 할 바닥은 겨우 젖어 있다. 몇발자국 밖은 말라 있다. 분화구 바깥쪽도 안쪽과 같다. 녹아 흐르는 만년설을 바짝 가까이서 본다.

서서히 녹는게 아니다. 샤워하듯 줄줄 흘러 내린다. 바닥은 연못처럼 괴어 있다. 손을 대본다. 차갑게 얼어붙어야 할 손이 이상하리만치 차갑지 않다. 분화구의 주변도 마찬가지다.

높이가 있어 어느 정도의 만년설은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간다. 흐르는 빙하도 흘러 내리는 물도 없다. 그늘진 북쪽의 깊은 골짜기조차 바짝 메말랐다. 돌틈에서 스며나와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도 있을 듯 한데 습기조차 없다.

지금까지의 녹아내린 추세를 어림하면 만년설의 남은 수명을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짧으면 10년 길어야 50년을 못 넘길 것 같다는 이곳 수석 가이드의 예측이다. 얼음 한 덩어리없는 킬리만자로의 앞날이 보이는 것 같다.

하산길에 들어 선다. 능선따라 내려가는 포터들의 행렬이 길어 백명을 웃돌아 보이지만 39명이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귀담아 듣는다.

"쟘보! 쟘보! 쟘보 부아나 와까리 빗져"

심금을 울리고 영혼까지 흔드는 흑인영가의 뿌리다. 12명인 대원은 LA에서 온 나를 빼고 모두 한국서 왔다. 언어 음식 감정이 같아 편하다. 협조도 말없이 눈치껏 잘 이뤄진다. 포터가 나르는 짐의 무게는 20kg을 밑돈다. 히말라야 셀파보다 덜 진다. 덩치는 셀파의 곱절인데 짐은 절반이다. 많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당국의 자구책이다.

필수품만 챙긴 대원의 짐은 달랑 당일용 배낭 하나다. 5kg을 넘지 않는다.

날씨는 더없이 계속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다. 산언저리(3000m전후)는 구름 또는 안개로 늘 가득 찬다. 동양화에서 봐왔던 절경을 눈앞에서 만끽한다. 운해건너쪽 홀로 솟은 고산(마웬지봉)이 고즈넉하다. 신비에 감싸인 고성같다.

바늘이 먼저가면 실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어느 원정대든 똑같은 스케줄이다. 등반의 바톤을 사파리 투어가 실처럼 뒤를 이어 받는다. 탄자니아 국립공원 '끝없는 평원' (마사이족말로는 세렝게티)에서 코끼리 사자 표범 버팔로 코뿔소등 소위 말하는'Big Five'들과 신물 나도록 함께 어울린다.

세계 최대 분화구의 웅고롱고 사파리는 재미가 으뜸이다. 뚜껑 열린 짚차타고 휘젓듯 달린다. 동물들도 더불어 달린다. 놀라서 뛰고 살려고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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