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원시림이 등정의 승패를 가른다. 등반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이 밀림만 통과한다면 등정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세아니아대륙의 최고봉 칼츠텐츠(4884m)의 정글은 특별히 연구 조사된 생태계의 자료나 거리 높이 캠프사이트등 등반정보도 거의 없다.
밤마다 쏟아지는 폭우와 습도높은 한낮의 폭염과도 싸워야 한다. 허리까지 빠지는 늪지를 빠져 나와야 하고 깊이를 알수 없는'워터 크레바스'도 살펴야 한다.
LA에서 파푸아 뉴기니의 오지 수가파까지 3일간(시차포함) 총 28시간을 날았다. 원정대와 원주민은 서로 구경꺼리가 된다. 원정대는 옷을 걸쳤고 원주민은 벌거 벗은 알몸이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합류한 원정대원(유럽 4 미국 2 한국 1)을 돕는 가이드 조리사 포터 등 도우미 35명은 모두 옷을 입었다. 그들은 일이 끝나면 생활하기 편한 자연인(벌거숭이)으로 돌아간다.
C1(캠프1 2200m)으로 향하는 산의 초입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민간복 차림의 군인이 길을 막는다. 잔돈푼을 쥐어주고 통과한다. 산불이 곳곳에서 흰연기를 낸다. 화전민이 애써 불을 질렀지만 밤마다 내리는 비때문에 밭내기가 쉽지 않다.
400m를 내려왔고 600m를 오르는 길목에서 이번에는 산적을 만난다. 칼을 휘두르고 장총까지 거꾸로 멘 알몸이다. 무섭다기 보다는 대낮의 코믹한 쇼처럼 보인다. 통행세를 몇푼주고 지난다.
화전민촌의 질척거리는 시골길의 끝인 촌장의 초가집이 C1(2200m)이다. 아내 4 명 자녀 24명을 거느린 대가족의 촌장은 갓 넘은 중년쯤 될까. 큰 아들은 17살이고 막내아기를 이틀전 풍토병으로 잃었단다. 원주민의 실생활을 하룻밤 체험한다. 집안 한복판은 커다란 화덕이 자리 잡았다. 식구들이 둘러 앉아 감자를 구워 저녁을 먹는다.
야자수 잎을 엮어 덮은 지붕은 통풍이 잘되고 빗물도 잘 흘러 내린다. 잠자리도 간편하기 짝이 없다. 땅바닥에 깔린 마른 잎이 침구다. 모닥불을 쬐다가 웅크리고 앉거나 뒤로 눕워 자기 편할대로 잔다.
샤워도 필요 없다. 빗줄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만이다. 신발도 필요 없다. 발바닥이 신이다. 만져 보니 뼈처럼 딱딱하고 굳은살이 두툼하다. 자연과 하나되어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아침 햇살이 따갑다. 여성대원들은 양산을 펴든다. C2로 가는길은 1시간을 못넘기고 돌변한다. 밀림이 시작되는구나 느끼는사이 벌써 앞이 어둡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린다. 질펀했던 흙바닥이 무릎까지 빠지는 늪지로 변해간다.
습기가 숲속을 가득 채워 한증막이 따로 없다. 모두들 땀에 젖고 늪지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텐트를 설치하니 곧 C2 (2600m)가 된다. 잠결에 바닥이 축축함을 느낀다. 텐트바닥 한쪽이 푹 꺼져 물이 스며 든다.
아침은 늘 쾌청하다. 흙탕물 투성이로 젖어 얼룩진 옷을 꽉 짜서 다시 입는다. 어제 힘겹게 지나온 늪지는 오늘과 비교하면 비단길이다. 태고의 원시정글을 실감한다. 대낮인데도 하늘을 볼 수 없다.
썩은 나뭇잎을 자칫 잘못 밟으면 무릎까지 빠진다. 나뭇가지에 빠진 다리는 빼내기도 힘들다. 죽어 나자빠진 통나무는 기름바른 미끄럼틀보다 더 미끄럽다. 딛는 순간 벗겨지는 이끼와 함께 나동그라진다. 한대원은 허리까지 늪에 빠진다.
산속 화전민촌의 촌장집서 하룻밤을 난다. 앉은 채로 뒤로 벌렁 넘어지면 취침준비 완료.
물 흐르는 소리가 발아래 수풀에서 들려 온다. 발아래 무엇인가가 두다리를 잡아끌어 당겨 내릴듯 소름이 끼친다. 아이스 크레바스가 히말라야와 매킨리에 있듯 워터 크레바스가 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된다.
뚫린 구멍이 있어 들여다 본다. 빠지기라도 하면 물귀신이 되겠다. 조심 또 조심한다. 너무 깊어 바닥을 볼 수 없다. 철철 흐르는 물소리로 그 깊이를 짐작할 뿐이다.
11시간동안 생지옥같은 900m를 더 올라 C3(3500m)를 구축한다. 덜 젖고 덜 푹신거리는 나뭇잎을 찾아 텐트부터 친다. 텐트바닥이 움직일 때마다 물에 뜬듯 출렁인다. 저녁을 잊은채 모두들 시체처럼 잠에 빠진다.
C4(3800m)를 거쳐 C5(3900m)까지는 올랐다 내렸다하는 롤러코스터 등반이다. 만년설산의 빙하같은 정글 설사면같은 산비탈을 겨우 탈출했다.
새벽녘에 C6(4334m)로 떠난다. 해가 뜨면서 소리없이 안개가 사라진다. 절벽과 에메랄드빛 호수가 보아 달라는 듯 길손을 잡는다.
아침 햇살을 끌어 안은 물빛이 고즈넉하다. 직벽에 가까운 절벽을 로프도 없이 오른다. 바위틈마다 뿌리깊은 분재와 무성하고 강한 풀이 도와준다. 가이드가 고도를 묻고 고도계에 나오는 높이(241m)를 알려 준다.
마침내 베이스캠프(C6)에 입성한다. 감옥같은 정글을 탈옥한 해방감에 젖는다. 정상까지는 풀 한포기 없는 돌산이다. 고정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홀드(손잡이와 발붙이기 좋은 곳)가 좋아 어렵지 않게 정상에 선착한다.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는 쾌거의 순간이다.
〈끝〉 # 이성인씨 7대륙 최고봉 등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