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코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오바마 경기부양' 의 어머니···논란의 핵으로

Los Angeles

2009.02.03 19:1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재정 지출 효과 다룬 '14쪽 로머 보고서' 민주 공화 경쟁 촉발, 서머스급으로…
경기부양책을 놓고 대립하는 민주·공화 양당의 경제통들이 이 보고서를 놓고 날 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 쪽은 “부정확하다”며 깎아내리는 반면 민주당 쪽은 “타당하다”며 옹호하고 있다.

경제학계도 편을 갈라 갑론을박하고 있다.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은 “새로 발견된 성경을 놓고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하는 기독교계와 비슷하다”고 촌평했다. 어떤 보고서일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인 크리스티나 로머(51)와 부통령 수석 경제보좌관인 자레드 번스타인이 지난달 10일 내놓은 이른바 ‘로머 보고서’다.

'경기부양책의 고용효과(The Job Impact of the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Plan)'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14쪽짜리 이 보고서는 지난주 하원이 통과시킨 경기부양책이 실시되면 경제성장률과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은 보고서에서 경기부양책이 예정대로 실시되면 2010년 말까지 일자리 330만~410만 개가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실업률이 경기부양을 하지 않을 때(9%)보다 2%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교범이다. 오바마는 이 보고서가 정식 공개되기 전인 지난해 12월 말 로머의 계산을 근거로 일자리 300만~400만 개 창출을 목표로 제시하며 경기부양책을 의회에 제안했다.

최근 논쟁의 화근은 로머가 빌려 쓴 거시경제 모델이다. 그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거시경제 모델'을 디딤돌로 삼았다. 정부가 재정 1달러를 투입하면 승수 효과에 의해 국내총생산(GDP)이 1.5달러 늘어나는 반면 세금 1달러를 깎아 주면 GDP는 0.99달러밖에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화당과 감세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그 모델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FRB가 1945~2000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한 것인데 30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인 현재 상황에선 재정 지출이 그런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따라서 그들은 부양책에서 감세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민주당과 재정 투입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오차가 발생할 수 있지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옹호한다. 감세에 대해서는 "기업이나 부자의 세금을 깎아 줘 봐야 소비가 늘지 않고 오히려 저축이 늘어날 것"이라며 "중산층을 겨냥한 감세는 이번 부양책에 반영한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당장 승부를 가리기 힘든 논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묘하게 오바마 경제팀 내에서 로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논쟁이 낳은 부수 효과인 셈이다.

백악관 안팎에서는 "로머가 로런스 서머스(국가경제위원장)와 티머시 가이트너(재무장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로머는 의회에서 오바마 경기부양책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머스나 가이트너 몫을 대신한 것이다.

사실 오바마가 그를 경제자문위원장으로 발탁했을 때 의외라는 시각이 강했다. 그는 당파성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이다. 제이슨 퍼먼 국가경제위원회 부위원장처럼 민주당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서머스처럼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에서 근무하지도 않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교수로 연구에 주력했을 뿐이다.

당파적 입장보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사실주의자로 꼽히는 그는 경기 침체 여부를 공식적으로 판정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경기판단위원회 멤버로 활동했다.

오바마는 이런 그에게 대통령 당선 직후 경기부양책 마련을 의뢰했다. 일회성 용역 성격이 컸다. 하지만 그의 치밀함과 명쾌함에 반한 오바마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사실보다는 정치적 잣대가 우선인) 워싱턴에서 내가 생존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경제자문위원장 수락을 한동안 망설인 것으로 전해졌다.

버클리의 동료 교수들은 "이번 논쟁이 로머의 진짜 논리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그가 재정 투입의 문제점을 밝혀낸 학자였기 때문이다. 대공황 전문가인 그는 그 시절 데이터를 분석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이 시행과 동시에 세금 인상을 초래하는 바람에 그다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증세가 민간 투자를 억제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금본위제 폐지 덕분에 미 중앙은행이 자유롭게 통화량을 늘린 게 더 효과적이었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이런 그의 논리는 이번 경기부양책에 잘 반영됐다. 이미 미 중앙은행이 돈을 공격적으로 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세금 감면과 재정 투입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방향으로 경기부양책이 마련됐다. 대신 당분간 재정 적자가 커지는 것은 감수하는 안이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경기부양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집안 내 위상(?)도 달라질 것이라는 우스개가 버클리 주변에 나돌고 있다.

세계적 거시경제학자인 남편(데이비드 로머 버클리 교수)의 그늘에 가려 있던 그가 오바마 정부에서 성공하면 남편보다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남편 데이비드 로머는 세계 경제대학원의 표준 교재인 '고급 거시경제학(Advanced Macroeconomics)'의 저자다.

두 사람은 뛰어난 연구 동반자로 알려져 있다. 공동으로 연구해 '감세가 정부의 재정 지출을 억제한다'는 통념을 뒤집었다. 실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정부 지출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다. 둘은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 동기였다.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