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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우팔리의 가위소리

Los Angeles

2009.02.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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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재불련 이사
이발소에 다녀온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건 내가 무슨 수도자나 히피처럼 머리칼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게 아니라 이발사들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한 달에 한 두 번 이발소 대신 동네 미장원에 다닌다는 뜻이다.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도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볶거나 하는 좀 별난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아련한 기억 속의 시골 이발소에서부터 학교 이발소 회사 근처 뒷골목의 다소 야릇한 장소들에까지 여러 이발소들에 줄곧 내 머리통을 맡겨 왔다.

거기엔 늘 평복이거나 흰 가운의 중년이나 초로의 아저씨들이 익숙한 솜씨로 사각사각 가위소리를 내며 내 고유의 DNA 상표가 심어진 검은 머리칼을 짧게 추스려가며 마지막 증표를 둘러 깎으셨다.

미국에 와서 몇 해 지난 다음 한 번은 이발을 하려고 차를 몰고 가는데 내가 그 동안 해온 대로인 몸 차림새나 머리 꾸밈새에 이런저런 최소한의 노력을 쓴다는 것마저 문득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남들은 나와 연관하여 이런 사항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혼자서만 애쓰고 있다는 새삼스런 자각이랄까 그 때 마침 미장원이 보이기에 차를 대고 문을 밀고 들어가 봤다.

서먹하고 좀 긴장된 데다 냄새도 달랐지만 거기도 다 사람 밥 벌어 먹고 사는 세상의 조그만 모퉁이임엔 틀림없었고 아는 사람도 말 붙이는 사람도 없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값도 몇 푼이나마 싸고 무엇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서 좋았다. 그 후로는 쭉 쓸데없는 것만 잔뜩 차 있고 돈 되는 건 하나 없어 두드리면 둔탁한 소리만 틱틱 나는 못생긴 머리통을 아저씨들 대신 아주머니들 손에 맡겨 오고 있다.

요즘 한 가지 걱정은 아저씨고 아주머니고 간에 내가 그 분들의 귀한 시간을 빼앗으러 찾아갔다면 돈만이 다가 아닐 것이다 검든지 희든지 뭘 좀 매만지고 솜씨 부릴 만한 건덕지 머리칼 한 모춤이라도 다보록하게 손아귀에 잡혀 드려야 기본 예의가 아닌가? 그런데 이대로 가다간 남아 있는 가닥들을 정말 한 올 씩 세어 보험에라도 들어야 할 날도 있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종 잔잔한 얼굴로 서서 할 일을 하며 결국은 다른 모습으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럴듯하게 매만져 내는 거울 속의 저 분들이야 말로 살아 있는 부처요 보살들이 아닐까도 싶다.

역사상 정말로 보살이 되신 이발사로는 부처님의 십대 제자인 우팔리 존자가 있다. 이 분은 부처님의 출신지인 카필라의 이발사였는데 출가하여 부처님이 주신 계율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잘 지킨 제자가 되신 분이다. 당시에도 인도는 철저한 계급사회로서 이발사는 천민에 속해 있었다.

부처님이 성도 후 고향에 돌아와 설법하시니 정반왕을 비롯한 아내와 아들 왕가의 일곱 왕자 등 많은 이들이 귀의하였다. 이 왕자들은 출가를 위하여 우팔리에게 와서 머리부터 깎았는데 우팔리는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자신도 출가하기를 염원하여 부처님께 여쭈니 두말없이 받아들이시는 것이었다.

며칠 후 일곱 왕자들이 부처님을 찾아가 귀의하는데 이발사 우팔리가 먼저 와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부처님은 먼저 출가한 자에게 하는 예부터 하도록 시키시고 당혹해 하는 왕자들을 꾸짖어 아만심을 놓게 하시니 이들은 기꺼이 예를 올리고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승가를 이룬 이들은 머리에 돋아나는 무명초를 때 맞추어 칼날로 서로 밀어 주었을 것이니 우팔리의 사각거리는 가위소리를 들을 일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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