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도 아니면서 참담한 마음입니다. 욕망의 끝을 보는 것같습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조차도 충분치 못했는지 한 의원은 "경영진은 사과한 뒤 물러나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보험사 AIG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연말에 무려 184억 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인 월스트릿에 분노하고 있더 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AIG가 1800억 달러의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고 마치 수술대 위에서 링겔 주사를 꽂고 누워있는 주제에 1억6000만 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린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들끓던 국민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 것입니다. 최고로 많이 받은 사람이 640만불 100만 달러를 받은 직원만 73명이라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1800억 1억6000만 640만 100만 이것이 얼만큼의 돈인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숫자에 불과해서 우리의 귀를 마비시킵니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는 이번 보너스 파동이 AIG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자동차회사들 이번 경제위기의 주범인 페니멕과 프레드메이 모기지 회사들이 정부 보조금으로 보너스 잔치를 계획 중이라는데 있습니다.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염치'라고 합니다. 이 염치는 법이나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발로입니다. 보너스 파동의 당사자들은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더니 오늘 우리가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뢰가 가지 않는 자본주의(그렇다고 제가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에 더 절망하게 됩니다.
그나마 지금의 자본주의는 따뜻함을 잃어버린 천민 자본주의요 타락한 자본주의입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지금 탐욕의 구덩이에 빠진 고삐풀린 망아지 같습니다.
약간의 우월적인 지위와 능력이 보상에서는 엄청난 차이로 작용하는 승자독식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보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지하실로부터 쇠사슬을 끄는 소리가 들리며 구두쇠 스쿠루지 앞에 옛 친구 마아리의 유령이 나타납니다.
그의 전신에서는 무덤의 냄새가 나고 허리에는 긴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가 스크루지에게 말합니다. "친구여. 내 허리에 칭칭 감은 이 쇠사슬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바로 날세. 내가 세상 살아있는 동안 이 쇠사슬 한 고리 한 고리씩 만든 걸세."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얽어 메고 있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입술로야 그럴듯한 변명을 둘러대지만 그것은 욕망의 발톱을 가리는 것일 뿐 본질을 들여다 보면 전적으로 남들은 어떠든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놀라운 이기주의의 발로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욕망이라는 쇠줄로 한고리 한고리 쇠사슬을 만들고 또 그것을 자신의 몸에 칭칭 동여메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의 경제난에서 우리 사회가 '탐욕'에 대해 교훈받지 못하면 절망입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변화를 이끌 책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더 따뜻하게 더 나누며 더 사랑이 있는 그런 사회로 말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도사 성 프란체스코는 일생동안 "내 주여 나의 전부여!" 하는 이 한마디를 항상 읊으며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고 합니다.
마음 속에 탐욕이 일어날 때마다 길을 걸을 때마다 그리고 무시로 되뇌였다는 그의 이 말은 오늘날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본성이야 누구나 차이가 없겠지만 우리는 본성을 이기는 사람이 됩시다.
# 090324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