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가 수려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서 5년 간 본당신부를 한 적이 있었다. 가은이라 하면 삼국시대에는 상주군에 속했지만 일제 시대에 문경군으로 편입되었다.
행정 구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은 산 좋고 물 좋은 아름다운 고장일 뿐 아니라 풍수지리로도 좋은 곳이라 걸출한 인물들이 출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 장군이 태어난 곳이며 그의 태를 묻었다고 하여 왕릉 1리 2리 3리 4리란 행정 구역명도 생겨났을 정도이다. 거기서 시오리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유명한 사찰 봉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불교의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인데 역사가 깊어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기서 많은 도사들이 출현했다. 워낙 산세가 수려하여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풍수들이 이곳을 지나다가 장차 우수한 인재들이 날 것을 우려하여 봉의 부리처럼 튀어나온 바위(봉암)를 잘라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곳에는 봉암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십리쯤 북쪽으로 가면 문경읍이 나오는데 북쪽으로는 문경새재가 있어 1관문 2관문 3관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 산책하기에 무척 좋은 곳이다.
나는 그 곳에 살면서 예전에 알지 못했던 등산의 가치를 깊게 알 수 있었다. 좀 귀한 손님들이 오면 문경새재로 안내하여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사극 드라마를 위해 마련된 신라궁 백제궁 고려궁이 세워져 있어 역사 탐방의 장소가 되기도 하여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어느 날 손님들과 그 곳을 오르다 보니 서울에서 왔다면서 중학생들 백오십여명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모두들 뚱뚱했다. 왠 일일까? 뚱뚱한 중학생들이 여기 와서 산을 오르니 서울 근교에도 산이 많은데? 학생들은 이십명씩 조를 지어 오르고 있었는데 각 조마다 빨간 모자를 쓴 20대 젊은이들이 학생들의 등산을 지도하고 있었다.
빨간 모자를 보니 군 복무시절 유격훈련을 받을 때의 조교들이 생각났다. 심한 기압을 주던 그 조교들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사람들이다. 맨 뒤에는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십 킬로미터 쯤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주차장에 들리니 대형 버스 3대가 있었다.
알고 보니 학생들을 태우고 온 버스들이었다. 차 앞뒤에는 극기 훈련원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오오라 극기 훈련원에서 뚱뚱한 아이들을 태우고는 등반하기 좋은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훈련시키는구나. 그러니 뚱뚱한 학생들의 부모들이 극기 훈련원에 돈을 내고는 우리 아이 좀 날씬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부탁하는 곳이 극기 훈련원이로구나.
극기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극기는 뚱뚱한 아이도 날씬하게 만드니 얼마나 좋은가? 성인병은 원래 어른들이 걸린다는 병으로 알고 있었는데 요즈음은 그 증세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난다고 한다. 덜 먹고 덜 마시기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천주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극기하라고 권고한다.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해진 몸을 날씬하게 하여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자녀들을 극기 훈련원에 보내면 돈이 든다. 하긴 그래야 극기 훈련원도 살 수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요즈음은 절제와 극기가 요구되는 시대다.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덜 먹어 배고파 보는 것과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려고 배고파 보는 것은 배가 고프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그 의미와 정신에 있어서는 상호 큰 차이가 있다. 후자의 정신은 진정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순수한 동기로 신앙을 키우고 은총을 받는 수단이 되리라.
# 090324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