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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두부를 낚는 고양이

Los Angeles

2009.04.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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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재불련 이사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신 숭산 스님의 이야기다.

스님께서 오래 전에 한국의 어느 작은 절에 계시면서 절 살림을 맡아 하실 땐데 대중들의 공양에 쓰려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날두부가 밤마다 한 모씩 없어지는 것이었다.

문을 꼭꼭 걸어 잠갔을 뿐만 아니라 두부 따위를 훔쳐 갈 사람이 있을 법도 않은 한적한 시골 절간인데도 불구하고 두부는 날마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에 스님은 귀신이든 도둑이든 꼭 잡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초저녁부터 남몰래 잠복에 들어갔다.

바깥으로 자물쇠를 채워 겉보기에 감쪽같은 창고에 숨어 들어간 스님은 어스레한 구석 물건 더미 사이에 몸을 숨기고는 숨소리도 죽인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날이 어두워지고 캄캄한 밤이 된 뒤에도 끈질기게 기다렸지만 적막 속에 아무 일도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한밤중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 작고 검은 물체가 환기통을 통해 벽을 타고 들어오더니 두부를 물에 채워 담가 놓은 깊고 큰 독의 전두리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새어 드는 달빛 속에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보니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물 속의 두부를 노려보았다. 십 분이 흐르고 한 시간이 흐르고 고양이는 꼼짝 않고 물 속을 노려보고 스님은 어둠 속에서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이러고도 한참 후 마침내 눈 앞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믿거나 말거나! 물 속의 두부 한 모가 스르르 표면을 향해 떠오르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잽싸게 이 두부를 앞발로 건져내더니 게 눈 감추듯 맛있게 잡수시고는 귀신같이 휙 환기통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내일 밤을 기약하면서.

이 이야기를 실제 일어난 사실로 믿고 말고는 각자의 판단이고 자유다.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믿는 쪽으로 기우는 분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코웃음 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훌륭하신 큰스님에 얽힌 얘기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거나 버젓이 책에 쓰여 있으니까 믿어야 한다는 쪽으로만 몰고 간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이 좋은 이야기의 초점을 흩뜨려 가르침의 본질을 벗어나 쓸데없는 곁가지를 뻗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곁가지가 너무 무성하여 본줄기가 잘 안 보이는 종교도 있고 그런 곁가지에만 매달려 그 속에 파묻혀 사는 종교인들도 많다. 노상 무슨 기적이니 영험이니 뭐가 보이거나 들린다느니 어디에 뭐가 나타났다느니 하는 것 만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조금 염려는 된다. 설마 위의 이야기를 읽고는 두부 한 모 건져 먹으려고 몇 시간이나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분은 없으시겠지? 하지만 장담 못하겠다. 세상에는 황당한 일도 많으니까.

이를테면 죽은 가족의 시체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믿고 침상에 몇 날이고 뉘여 놓았다든지 병 고쳐 준다면서 다 죽어 가는 사람 더욱 두들겨 패는 분들이라든지.

이제 가르침의 본줄기를 찾아 가자. 이 고양이 얘기의 본질이랄까 이게 만약 국어 시간의 독해 시험 문제라면 설문의 주제 해답은 무엇일까? 내가 채점자라면 정신력의 위대함 정신집중의 불가사의한 강렬함이라고 쓴 답안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도 하는데 사람이 왜 못하랴? 무슨 중대하고 소중한 일을 앞두고 내 마음이 어지러워 갈피를 못 잡을 때 떠올리고 다짐해야 할 선명한 참조사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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