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군도의 몰로카이 섬에서 선교사로 사시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다미안 신부님이 생각난다. 700여명의 나환자들은 자기들에게 온 백인 신부를 별로 달갑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고 가정방문을 하면서 위로해주어도 시큰둥하게 대하기 일쑤였다. 신부님은 의사가 부족한 그 지역에서 직접 나병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고름도 짜주고 붕대로 상처를 감아주기도 하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관을 짜주며 묘지를 파주기도 했다.
그 분의 헌신적인 삶을 보고 전보다는 약간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친구는 되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틈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냈다. 그런 식으로 6~7년간 지난 어느 날 신부님은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지난 날보다 더 정답게 자기에게 다가오며 가까워진 것을 느낀 것이다. 의아해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던 신부님은 쉽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벽에 걸려 있던 거울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알게 된 것이다.
자기의 얼굴이 찌그러지고 코가 비틀어진 나병환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이거로구나. 나도 이 사람들과 같이 나병환자가 되었구나. 얼굴이 찢어지니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이젠 손가락 발가락도 떨어져 나가겠지."
이런 헌신적인 선교사를 기려 그 지역 주민들은 그가 귀천한 후 동상을 세워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성경 말씀을 써붙였고 교회는 그분의 헌신적인 선교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려 복자품위에 올렸으며 올 10월에는 로마에서 성인으로 추대할 것이라고 한다.
다미안 신부님의 생애를 보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린다. 이 말씀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적절한 말씀이다.
가정과 직장 어느 단체든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정에서는 서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이 대단히 중요하므로 늘 강조해야 한다.
안중근(토마스) 의사와 같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해 본다.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지 않은가?
순교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분들이 흘린 고귀한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씨앗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성공을 위하여 각자 주체가 되라고 주장한다. 누구에게 종속되지 말고 자기를 드러내야 성공한다고들 한다.
일리가 있지만 이런 주장만 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고의 가치인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희생과 봉사가 반드시 함께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엄마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희생 봉사한다. 어머니의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요즈음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여성들은 성공하는 비결은 배웠을지 몰라도 엄마와 부인 가정주부로서 해야 하는 일에는 무지하며 남성들도 특히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사고를 지닌 우리나라 남성들은 사회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은 잘 배울지 몰라도 가정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에는 우둔하다고들 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은 성서적으로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적절하고 필요한 말씀이라 이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가 조금씩 더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090324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