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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삶] 생명의 삶

Los Angeles

2009.04.0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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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동양선교교회 나사렛 청년부
고난 주간을 시작한 3월을 지나 부활절이 있는 4월을 맞이합니다. 고난주간을 보낸다는 것은 예수님의 아픔을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아픔을 겪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픔의 훈련을 통과한 후 얻는 기쁨과 행복은 배가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이 주신 복에 대하여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심게 됩니다.

'자신감' 책에서 '아픔을 헤아리는 사랑'의 글이 생각납니다. "아픔을 아는 사람은 결코 남을 해치지 못한다. 아픔을 아는 사람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아픔을 품어야 기쁨도 알게 되는 것이다. 아픔을 두려워 말라.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더라도 아픔을 품어라. 그것이 생명의 삶이다.

아픔을 품는 가슴 십자가를 품는 가슴에서 새 생명은 잉태되고 자라나게 된다." 주님도 절 위해 아파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을 너무 오랫동안 헤메이다가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 초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저의 모습이 이사야 큐티 말씀 속에서 비쳐집니다.

이사야 큐티(53:4-5)를 통해 예수님께서 왜 아픔을 당하셔야만 했는지 보여주십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의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평화를 누리고 자유하고 강건할 수 있다는 은혜를 잊고 있었기에 제 삶에서 아픔을 느낄 때 견디지 못하고 아프다고만 하나님께 투정 부렸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생명력이 없어 죽어있었던 지난 날의 저의 옛 모습이 기억납니다.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를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난 축복이 지금의 나의 나된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눅 20:24) 말씀을 제 삶 속에서 경험할 때마다 아직 저에게 생명이 있어 살아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죽은 자에겐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산 자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 안에 기쁨 행복 감사 이해 화목 평안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제가 육신으로나 영적으로나 아직 살아있기에 이것을 공감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것이 감사합니다.

봄이 되면 죽어 있었던 나무에 꽃에 싹이 돋아나고 열매를 맺는 생명을 보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은 독특한 생명력을 주셔서 각자만의 '색깔'을 뽑내어 하나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십니다.

생명이 있다는것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에게만 주신 독특한 '색깔'이 있는 것이구나' 깨닫습니다. 저에게 주신 '색깔'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있는 '색깔'을 발하고 있는지 생각하며 제 안에 죽어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신뢰함과 소망들이 생명력 없는 칙칙한 색깔로 주위를 어둡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봅니다.

복음은 굿뉴스이기에 끝은 해피 엔딩입니다. 지금은 고난주간이지만 고난주간의 끝은 부활이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 말씀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복음의 소식을 가지고 곧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때 이사야 52:9절 말씀처럼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라고 함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4월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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