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독립기념일을 맞았을 때다. 해가 기울자 사람들은 간이 걸상 같은 것들을 들고는 동네 공원으로 모여 들었다. 한 쪽에서는 불고기를 굽는 등 축제 분위기인데 이윽고 땅거미가 깔리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작은 박격포들을 늘어놓고 하늘에다 마구 폭죽을 쏘아대었다.
그 동네만이 아니고 온 천지 여기저기서 일시에 그런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 땅 전체가 그럴 것이었다. 동부에서 서부로 지는 해의 발뒤꿈치를 따라 빨랫줄이 지나가듯 남북으로 줄지어 일제히 불꽃이 튀고 콩 볶는 소리가 날 것이니 상상만 해도 장관이었다.
어쨌든 작은 마을 단위에서마저 아낌없이 공중에 날려 버리는 이 불꽃놀이도 끝이 나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낯선 땅에서의 하루가 또 저물고 있었고 나는 까닭 모를 설렘과 앞날에 대한 안쓰러움 속에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언젠가 내 나름의 폭죽 하나라도 남들의 머리 위로 쏘아 올리며 주눅 들지 않고 어울려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하지만 산다는 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것도 내가 꾸미는 불꽃놀이의 많은 부분이 실현하기 어려운 한 때의 치기였음도 얼마 안 가 자명해졌다. 밤하늘이든 내 가슴 속에서든 어둠을 뚫고 치솟아 피어나는 그 불꽃들은 휘황하지만 숨 돌릴 틈에도 다시 어둠속으로 사그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 불꽃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며 내 젊은 날은 비껴가고 그에 따라 어느덧 내 마음의 불씨 생명의 불씨마저 꺼질듯 자주 바람 앞에 사운거렸다. 이에 나는 발길을 돌려 한 순간의 불꽃이 아니라 어둡고 긴 밤을 내내 지켜 내는 꺼지지 않는 나만의 등불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오래 전부터 그러한 등불의 전설이 전해 오고 있었다. 슈라바스티에 한 가난한 여인이 있어 이 집 저 집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어느 날 성 안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부처님이 오늘 밤 이 성으로 오신다는 것이었다.
권세 높은 프라세나지트 왕도 백성들과 더불어 수만 개의 등불을 밝혀 연등회를 베풀고 부처님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이 여인은 한 닢 두 닢 동전을 빌어 기름을 구하여 부처님이 지나가실 길목에 등불을 밝히고 빌었다. 부처님 저는 가난해서 아무 것도 공양할 것이 없사옵니다. 보잘것없는 등불 하나를 밝히오니 이 공덕으로 저도 오는 세상에 부처를 이루어지이다.
밤이 깊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이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을 주무시게 하려고 제자 아난다가 이 등불마저 끄려고 하였으나 결코 꺼지지 않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가난하지만 착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리라.
나는 절에 찾아가 연등 접수를 하고 기원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는 스님을 도와 편지를 부치고 접수도 받고 거들어 연등도 매달았다. 그러다 성긴 법당 천장을 얼른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한 해의 이때만이라도 온 거리까지 형형색색의 오색 등불이 넘실거리는 화려한 상상을 하곤 했다.
법을 등불 삼고 자신을 등불 삼으려 가난한 여인의 정성으로 타오르는 등불. 그 불빛들이 모여 시내가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를 이룰 때 나는 홀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솟구치는 폭죽이 아니라 더 안으로 안으로 갠지스의 모래알이 되어 그 흐름 속에 깊숙이 쓸려 들고 싶다.
# 090428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