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으레 편안함을 찾기 마련입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나 직장에서 일할 때 행여 의자나 자리가 불편하면 여간 곤혹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편안한 자리나 또는 편안한 자세를 갖추기를 원합니다.
육체적인 불편함 뿐만 아니라 상황을 통해 부딪히는 심적 불편함이 때로는 더 힘들고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 대하고 있어야 할때는 비록 같이 있기는 하겠지만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안함에 안주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더러는 인간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없애고자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피하여 혼자 있기만을 즐기기도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상관하지 않듯이 당신도 나에게 상관하지 마시오!"(you don't bother me and I don't bother you!) 하는 생각들이 그러한 많은 사람들을 사로 잡고 있습니다.
또한 더러는 '책임'이란 부담을 불편히 여겨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자리는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 합니다.
이러한 모든 생각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끼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의 형태를 좌지우지합니다. 교회에서나 다른 여러 곳에서 사랑과 희생을 배우며 그 모든 것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내가 지금 있는 '편안 지대'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오는 불편함과 고통은 피하려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배움과 행동이 다른 이면적 생활을 해 올때가 많은 것 입니다. 모임 같은 곳에 새로운 사람이 와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 하기를 두려워 합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또는 인도자들이 '헌신'에 대해 나누면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있는 '편안 지대'를 벗어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3장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 함으로 하자." 사랑은 말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실한 마음과 행동입니다.
내가 원하는 '편안 지대'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들어 오라고 외치기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진실된 사랑은 나의 '편안 지대'를 부수고 나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깨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일 것입니다.
나의 '편안 지대'를 부수고 나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사서 고생좀 합시다!
하늘 보좌 라는 '편안 지대'를 버리시고 이 땅이라는 죄악 세상으로 오셔서 사랑 때문에 '사서 고생'하신 예수를 본받아 우리도 예수의 사랑 때문에 '사서 고생'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