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세계 언론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연일 톱 뉴스로 보도하고, TV와 라디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특별방송을 편성하는 등,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세계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역사상 한 음악가에게 이처럼 열광하고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을까? 1960년대 비틀즈와 70년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80년대초 아바의 인기를 훌쩍 뛰어넘는 마이클 잭슨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흑인들의 음악인 블루스와 재즈를 폄하하면서도, 백인인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는 블루스와 가스펠을 즐기고, 흑인 음악의 전형이었던 R&B가 머라이어 캐리를 통해 비로소 대중의 인기를 얻고 주류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당시 미국 음악계의 배타성은 심하진 않았지만, 흑백 인종차별의 남아있는 잔재이기도 했다.
이렇게 백인이 지배하던 미국 음악계에 마이클 잭슨은 흑인으로 미국 음악계는 물론, 세계 음악계를 지배함으로 음악계의 차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영웅으로 평가 받는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이에 비유한 한 음악 평론가의 말이 지나친 비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세계 팝 음악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룹활동을 접고 솔로로 데뷔하면서 보여준 현란한 춤과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동작 하나하나는 듣는 음악뿐만 아니라 보는 음악의 시대를 활짝 여는 계기가 되었다. 1984년 발매된 앨범 ‘Thriller’는 각종 팝 음악의 역사를 갈아 치우며 1억4천만장이나 팔리는 전무후무한 베스트 셀러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인생을 ‘화려한 무대 뒤의 우울한 삶’이라 말한다. 그래미상 최다 수상을 비롯하여, 메이저 어워드 197회 수상과 기네스 월즈 레코드 13회 등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화려했던 그의 음악인생과 함께 두 번의 이혼과 아동 성추행, 성형중독 등 끊임없이 오르내리던 가십성 기사와 어두운 사생활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이미 알려진 그의 화려한 이력과 열거하기조차 힘든 그의 각종 기록들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망한 뒤, 공연 기획사와 음반사의 희비가 극명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공연 기획사는 이미 매진된 런던 투어 티켓 환불금 8,500만 달러를 비롯하여, 이미 지출된 3,000만 달러에 이르는 공연 준비금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며, 공연 취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에 음반사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기 발매된 그의 음반들이 다시 판매차트 상위에 오르고, 미 발표곡 음반까지 발매를 서두르고 있다. 이미 그가 세운 음반판매 기록들을 다시 갈아치우고 계속해서 기록을 이어갈 것이며, 3~4장의 특별앨범을 기획중 이라는 소니비엠지 담당자의 이야기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의 음악을 함께한 세대가 필자와 같은 40~50대며, 어셔, 저스틴 팀버레이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 등 그의 음악을 동경하며 듣고 자란 마이클 잭슨 키드가 이제 중견 음악인이 되어 음악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늘 창의적이었으며, 10년 이상을 앞섰다. 1996년, 1999년 한국공연과 97년/98년의 한국방문 당시 필자는 음반사에 근무하면서, 2장의 새 앨범 발매에 직간접으로 참여했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했던 ‘HIStory’와 ‘Dangerous’ 앨범의 마케팅은 천문학적 마케팅 비용의 지출과 음반사 전 직원이 한 달간 그의 앨범 홍보에 전념하였으며, 타 음반사들은 그들의 전략음반들을 마이클 잭슨 음반 발매시기를 피하여 발매할 만큼 그의 새 앨범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또한 그의 두 차례 공연에서는 환상의 무대와 레이저 조명의 현란함, 그리고 특수 로켓장치를 이용해 잠실 주경기장을 날으는 등 첨단 과학을 이용하여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공연기법을 선보였다.
대통령 경호를 연상시키는 철통(?)같은 경호로 그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바라본 그의 모습에서 그만의 카리스마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며, 그를 직접 만난 지인들을 통해 팝의 황제다운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들을 수 있었다.
14살 청초한 목소리로 부르는 ‘Ben’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과거를 회상하며 이 곡을 듣는다. 그의 정상적이지 못한 사생활과 우울했던 삶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잭슨은 위대한 뮤지션이었다.
그가 함께 했던 “We are the World”를 부르며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그의 음악에 세계가 열광했고, 지금도 세계가 그와 그의 음악을 기억하고 있음에 그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