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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양용은의 '역전 골프'

Los Angeles

2009.08.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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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객원 논설위원
1600년대 말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마녀사냥' 재판에선 피의자들에게 성체를 먹게 해 귀신이 씌였는지를 판단했다. 마을 목사가 밧줄로 꽁꽁 묶여 끌려온 여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몸'하며 성체를 줬던 것.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상황에서 이 빵이 목에 넘어갈리 없었다. '초킹'(choking) 곧 숨이 막히거나 목이 메여 성체를 내밷은 것. 예수를 거부한 것으로 믿은 판사는 곧바로 사형선고를 내렸다. 수백명의 무고한 여성들이 이승을 떠나야 했던 역사의 비극이다.

스포츠에서 흔히 쓰이는 '초킹'은 마녀재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다 이겨논 게임을 망치는 경우를 일컫는다.

프로 골프에서 두고 두고 회자되는 초킹 사례는 1999년의 브리티시 오픈이다. 최종 라운드 17번홀까지의 선두주자는 프랑스의 장 방 드벨드. 3타차로 이기고 있어 18번 홀에서 더블보기만 해도 챔피언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공은 개울에 풍덩 이어 러프에 깊숙이 빠져 그만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이 충격으로 샷이 흔들리는 바람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드벨드가 오픈에서 우승하면 프랑스로서는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최대의 경사. 온 국민이 열광하는 가운데 마지막 홀에 섰지만 그의 공엔 중압감도 함께 실려 있었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다 잡았던 우승을 날려버린 셈이다.

요즘도 초킹으로 무너지는 스타 골퍼들이 적지 않다. '타이거 공포'(Tiger Phobia) 탓이다. 대회 마지막 날 타이거 우즈와 한 조가 되면 아무리 강심장의 소유자라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 선수를 주눅들게 하는 것은 타이거의 이른바 '클러치'(clutch) 샷. 결정적인 한 방을 일컫는 스포츠 용어다. 클러치를 세게 밟아 스피드를 한껏 올리는 수동식 자동차에서 빗대 생겨난 말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절묘한 퍼팅으로 버디나 이글을 낚아채는 타이거. 상대는 기가 죽을 수밖에. 우즈가 서너타를 뒤집으며 역전우승을 거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타이거는 한마디로 기록 제조기. 그가 우승할 적마다 골프역사가 새로 쓰여진다. 올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즈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3라운드까지 선두를 지키면 모조리 우승(14승 무패)을 했다는 타이거. 그런 우즈가 양용은에게 패해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깼으니 이것 역시 기록이라면 기록일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양용은이 우즈를 이길 수 있었던 건 바로 클러치 샷이다. 14번 홀에서 이글을 잡아 '황제'를 망연자실하게 만든 것.

알고 보면 양용은의 삶은 '초킹' 인생이나 다름없다. 먹고 살기 위해 술집 웨이터까지 했다니 빵이 목에 걸려 넘어가기나 했을까. 하지만 기회를 잡자 이를 놓치지 않고 클러치 샷을 날렸다. 이 한 방으로 인생역전의 꿈을 이룬 양용은.

그의 샷은 결코 행운이 아니었다. 그만큼 노력을 했고 때로는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였다.

우리의 삶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지 싶다. 지금은 '초킹'의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클러치'의 순간이 찾아오겠지…. 그러나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슬그머니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인생의 클러치는 스스로 노력해 만드는 것. 이번 대회를 통해 양용은이 우리에게 한 수 가르쳐준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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