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은 17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냐'는 질문에 "그립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양용은은 "솔직히 골프는 거의 독학으로 했죠. 그래서 그립도 제대로된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가끔씩 원포인트 레슨은 받았지만 내 마음대로 쳤죠"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그동안 꾸준히 양용은에게 조언자의 역할을 해줬다. 양용은이 최경주에게 그립 지적을 받았던 것은 지난해 함께 라운드를 했을 때였다. 당시 최경주는 그에게 "PGA에서 오래 뛰려면 그립 만큼은 제대로 잡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고.
그동안 그립을 마음 내키는대로 잡았다는 양용은은 '그래도 나한테는 이게 통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7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의 아픔을 맛보면서 그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추락할 데도 없어 과감하게 그립을 바꿨죠."
물론 10년 넘게 가져온 악습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교정 뒤에 필드에서 성적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립을 바꾼 뒤 공은 똑바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그의 자신감도 배가됐다. 양용은은 "사실 지난해 Q스쿨까지 다시 치러야하는 상황이 되서 마음고생을 많이했는 데 이렇게 빨리 빛을 볼 줄은 몰랐죠"라고 말했다.
양용은이 PGA투어에 입문하게된 계기도 역시 최경주 덕분이다. 양용은은 "한 번은 한국에서 최선배와 라운딩을 했는 데 선배님이 내게 '너 정도면 PGA서도 통할 수 있다'고 조언했어요"라며 최경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양용은의 골프인생도 최경주와 비슷하다.
"최경주 선배가 Q스쿨을 두 번씩 치른 것 만큼은 따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따랐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최경주는 1999년 Q스쿨에서 최하위인 공동 35위로 가까스로 투어카드를 받은 뒤 2000년 상금랭킹이 134위로 처지며 다시 Q스쿨에 응시했다.
역시 최하위권인 공동 31위로 턱걸이 합격을 하며 투어에 잔류했다. 2001년엔 상금랭킹 85위를 기록하며 자력으로 투어카드를 유지한 끝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용은도 루키연도인 지난해 상금랭킹 157위로 부진 Q스쿨 '재수생'이 됐고 최경주처럼 최하위권으로 다시 투어카드를 확보했다. 데뷔해 '톱10' 진입 횟수가 단 한 차례인 것도 두 선수가 같다.
양용은은 "올 시즌 목표로 우승은 생각지도 않았어요. PGA 시드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는 데 그립을 고치고 PGA코스에 익숙해진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정말 뭐라 형용할 수 없을만큼 기쁩니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