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아시안 최초의 시의원에서 아시안 최초의 감사원장에 도전하는 존 리우 후보(42·민주).
금융계 전문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리우 후보는 지난 9월 예비선거와 결선투표를 치르면서 아시안 커뮤니티를 넘어 뉴욕시 전체를 아우르는 광역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입증했다.
리우 후보는 뉴욕시 정치인 가운데 한인사회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역구가 플러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한인사회 일이 있을 때마다 발벗고 나서 한인 후원자 그룹이 두텁다.
리우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소수계 중점 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시정부 조달 사업의 일부분이라도 소수계 커뮤니티에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과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감사원장에 당선되면 시정부의 조달사업 계약 등을 재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1년 시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지 대형 금융회사에서 보험계리인으로 근무한 금융 전문가다. 그는 선거 캠페인 동안 금융계 경력을 활용해 시정부의 살림살이를 도맡는 감사원장의 최적임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감사원장에 당선되면 시정부의 조달사업 하청 체계를 재점검하겠다고 했는데.
"시정부의 조달사업 규모는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이런 기회가 소수계 기업들에게 돌아가면 해당 커뮤니티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조달사업은 관례적으로 대기업으로 바로 연결돼 왔다.
또한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직업 창출의 효과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헀는 지 검증된 적이 없다. 감사원장이 되면 시정부 조달사업 계약 과정을 철저히 감시해 각 커뮤니티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 시정부의 소기업 지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나오고 있다. 어떤 대안을 갖고 있나.
"뉴욕시는 높은 세금과 렌트 비용으로 매달 평균 600여개의 소기업과 점포들이 문을 닫을 정도로 비즈니스 환경이 어려운 곳이다. 시정부의 소수계 비즈니스 지원 상황 등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또 소상인들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소기업에게 시정부는 가장 좋은 고객이다. 그래서 정부의 조달사업 하청 기회를 활짝 열고자 하는 것이다."
-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시정부는 올해 19억달러, 2년 안에 50억달러 규모로 예산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 부족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소득 규모에 따라 소득세율을 조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1년에 8만달러를 버는 교사와 수백만달러를 버는 백만장자에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면 부족한 예산을 채울 수 있다.”
리우 후보는 시의원에 출마한 이유를 “한 백인계 시의원이 아시안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을 봤고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정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시의원에 당선된 후에는 아시안 커뮤니티와 미국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소수계인 윌리엄 톰슨 시장 후보와 19선거구 케빈 김 후보가 반드시 당선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19선거구(베이사이드)와 20선거구(플러싱) 차기 시의원에게 리우 후보는 “무조건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커뮤니티가 무엇을 필요로하는 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우 후보는 커뮤니티 정보 제공 노력의 일환으로 아시안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부의 내부 소식과 각종 입법 정보가 부족한 아시안 커뮤니티에 성실한 답변과 함께 정보 제공에 힘쓰고 있다.
그래서 일부 미국 언론매체는 “주민보다는 마이크와 더 친하다”는 비꼬기도 했다.
-예비선거와 결선투표를 치르면서 선거자금을 대부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본선거를 위한 자금 사정이 안좋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예비선거를 위해 300만달러 이상을 모았고 예비선거 직후에도 100만달러를 모금했다. 본선거를 위해 충분한 자금이 마련돼 있으며 매칭펀드도 신청하지 않았다.
경쟁 후보가 인지도가 높거나 유명인이면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그럴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민들의 세금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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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우는=1967년 대만 출생, 5세 때 이민왔다. 퀸즈에서 자란 그는 PS20와 PS22, PS203 등의 초등학교를 다녔고 헌터중과 브롱스과학고를 졸업한 후 빙햄턴 뉴욕주립대에서 수학·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입학 전 봉제공장과 신문배달, 피자 배달원 등으로 일하기도 했다.
에퀴터블 생명과 휴이트 어소시에이츠, 타워스 페린,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등에서 14년을 근무. 97년 시의원에 첫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2001년 재도전, 아시
안 최초의 뉴욕시의원에 선출됐고, 재선에 성공했다. 아내 제니(41), 아들 조이(8)와 함께 플러싱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