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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의 스포츠카페] '군계일학'

Los Angeles

2009.11.1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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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국 위진시대 때 죽림칠현이란 일곱선비가 있었다. 이들 중 특히 혜강의 아들 혜소는 지혜가 출중하고 기개가 높아 사람들이 그를 볼 때면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 학과 같다'고 칭송했다. 그로부터 '군계일학(群鷄一鶴)'은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독 뛰어난 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주말 뉴욕 주 레이크 플래시드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대회의 김연아가 바로 그랬다. 군계일학이었다. 이틀 동안 NBC 중계를 볼 기회가 있던 독자라면 왜 김연아가 우승할 수 밖에 없었는 지를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프리 스케이팅의 잇단 실수에도 불구하고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은 출전 선수 중 가장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스케이팅 실력이나 연기 빙판 위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미소 그 어느 것 하나 경쟁자들은 범접하지 못했다. 김연아의 연기는 앞서 출전한 다른 스케이터들과는 한 마디로 차원이 달랐다. 왜 대회장에 모인 각국 취재진들이 경기를 앞두고 "우승은 김연아 2등이 누구인지가 더 궁금하다"는 말을 했는 지 경기를 보면서 쉽게 이해가 갔다.

다른 선수들은 스케이팅을 하고 점프를 하는 데도 버거운 몸짓이었다. 당연히 음악 따로 연기 따로라 누가 봐도 어색했을 성 싶다. 김연아는 달랐다. 시작부터 음악과 하나가 돼 빙판을 수놓았다.

앞으로 나아가다 점프 타이밍이 오면 관객들은 숨을 죽이다가 김연아와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고 사뿐히 내려 앉았다. 스핀 동작에서도 관중들은 함께 '고추먹고 맴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김연아에겐 눈 빛과 손짓으로 관중들은 자신의 연기 속으로 빨려 들게 하는 그런 힘이 있었다. 오죽하면 김연아가 잇달아 실수를 하자 NBC 해설자가 "아주 특별한 경우다. 김연아 연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라며 감싸는 말까지 했을까.

김연아는 경기 후 "긴장이 지나쳤다. 첫 번째 점프에서 실수한 후 크게 흔들렸다. 자신감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기 직전 스케이트 끈을 고쳐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썼던 게 긴장을 더욱 크게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빙판 위에만 서면 넘치는 카리스마로 관객을 휘어잡는 김연아도 긴장을 하다니. 잔잔한 미소와 파워 넘친 몸짓으로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인 그에게도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다니 오히려 그게 더 신기했다.

김연아 연기를 볼 때마다 피겨 스케이트를 위해 태어났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 아직 19살의 어린 나이지만 자신감 넘친 연기며 선을 살린 자연스런 몸짓 등은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소감을 들으며 김연아가 세계 최고로 우뚝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을 채근해 왔는 지를 생각하게 됐다. 더구나 김연아는 연습장 하나 제대로 없고 스폰서가 없어 개인 교습조차 맘대로 받지 못하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기적을 일궈내지 않았던가.

최고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살얼음판'을 지칠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매 대회는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필요한 모든 환경을 갖추고 넉넉한 지원속에서 어려서부터 무대 분위기를 익힌 경쟁자들과는 비교도 안될 어려움이었으리라.

비록 3번째 200점 도전엔 실패했지만 그랑프리 7회 연속 우승이란 금자탑을 세운 김연아의 위대함이 그래서 더욱 높아 보인다. 김연아가 12월에 열릴 그랑프리 파이널과 내년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도 빛나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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