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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老병사희로애락-2] "의료혜택 줄어···" 늘어나는 주름살

Los Angeles

2009.12.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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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노인들 화두는 '반려자·말벗·건강·자식'
살아간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다. '노(老)'는 인생 그 자체다.

LA한인타운 패스트푸드점 어디를 들어가도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한인 노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곳에는 우리와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담겨있다.

14일 오전 6가의 한 햄버거 집. 김동철(80) 할아버지와 김영순(77) 할머니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마주 앉은 노부부의 향취는 커피향보다 더 진하다.

"늙은 마누라하고 여기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최고야. 세상 뭐 별거 있나 난 마누라가 있어서 행운아야. 요즘은 마누라한테 꼼짝 못하고 쥐어 살지만…" 할머니가 "쓸데 없는 소리는"하고 눈을 흘겼지만 잔 미소가 남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동반자'라는 것을 일깨운다. 젊은 날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부와 명예는 노부부의 평온한 영혼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같은 날 웨스턴가 패스트푸드점 바깥에는 80대 후반 노인이 간이의자를 펴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손에는 아직 오전인데도 심하게 꼬깃꼬깃해져 얼마나 봤을 지 모를 신문 한 부가 쥐어져 있다.

"이게 다 외로워서 그런 겁니다. 자식들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무료함에 다 거리로 나오시는 거죠. 개중에는 남편 아내와 사별한 노인이나 가족들이 찾아오지 않는 독거노인도 많아요."

버몬트가의 또 다른 패스트푸드점. 70대 한인 노인 세 명이 커피 석 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고 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인근 노인아파트에 살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만난다는 이들의 대화 화두는 '노인 정책과 건강'이다.

방경수(75)씨는 "예전에는 매월 1인당 900달러이던 웰페어가 올해부터 700달러로 뚝 떨어지면서 사는 데 부담이 크다"면서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메디캘 등 정부 의료혜택이 축소된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무료로 치료를 받던 혜택이 많은 부분 사라지면서 올해부터 병원비 걱정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 케빈 최(78)씨도 "그나마 우리는 노인아파트에 입주해 그럭저럭 살아나가는 편"이라면서 "주변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 심적인 두려움이 커지는데 의료 혜택은 줄어들기만 해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전했다.

세 노인의 커피 속에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말벗과 건강'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방씨와 최씨는 자신들의 고충은 자식들에 비할 게 못 된다면서 걱정했다. 앞으로도 넘어지고 주저앉을 일이 많을텐데 잘 견뎌낼 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내 새끼들'이다.

노인은 '삶의 역사'고 그들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다. 삶의 중요한 가치는 '반려자 말 벗 건강 자식'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노(老)'가 일깨워 준다.

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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