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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희로애樂-8·끝] '웃지 못할' 깜깜한 경기속···그대 덕에 '희망의 빛'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마지막 글자는 즐거움(樂)입니다. 2009년을 마감하는 오늘 즐거움을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침 많았던 한해였기에 마냥 즐겁기란 어렵습니다. 돌아보면 올해 가장 힘들었던 건 팍팍해진 살림살이였습니다. 기업들의 줄도산 소식은 피부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졸라멘 허리띠에 더이상 새 구멍을 뚫기조차 어려웠던 내 집 사정이 남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어디 이 정도로 힘들거라고 상상 했습니까. LA한인사회 경제도 내 집 가계부와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형 은행이 무너졌고 하루가 다르게 문 닫는 업소들이 늘었습니다. 살아 남은 업체들은 저가 전쟁을 벌이면서 생존에 발버둥을 쳤습니다. 10달러 아래로 떨어진 '무제한 고기 부페'에는 손님들의 인색한 주머니 사정이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돈 없으면 건강이라도 기대하고 싶었지만 신종플루라는 질병은 그나마도 허락치 않았습니다. 라카냐다 지역을 덮친 산불은 또 어땠습니까. 돌아보니 웃기가 어려워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즐거울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2009년을 시작(生)하며 사계절을 겪었고(老) 아파했고(病) 삶에 좌절하고(死) 기뻐하고(喜) 분노(怒)하고 가슴 아파했던(哀) 까닭입니다. 낙의 정의는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즐겁기만 하다면 즐거움이 낙으로 여겨질리 없습니다. 탄생이 죽음으로 의미가 있는 것 처럼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즐거움은 의미가 있습니다. 새해를 맞는 오늘의 낙은 용기와 다짐입니다. 내년에도 되풀이 될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입니다. 희망이 있다면 2010년에는 즐거울 수 있습니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2009.12.30. 22:20

[생로병사희노哀락-7] 몽골 유학생 카드바드 심짐 "고국선 풍족했는데···이방인 생활 서글퍼"

빛은 그늘을 동반하다. 찬란했던 제국의 광영 뒤엔 몰락한 민족의 슬픔이 배어있다. 몽골 유학생 카드바드 심짐(23.사진). 그는 혼자다. 13세기 세상을 호령했던 몽골 제국의 후예는 21세기 신대륙에서 이방인일 뿐이다. 미국내 몽골인 커뮤니티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네트워크 자체가 구성되어 있지 않다. 약 1만명으로 추정되는 미국내 몽골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도 손을 잡지 못한다.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의 기질 탓이라고 자위한다. 심짐은 지난 2008년 11월 넓은 세상을 눈에 담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높은 빌딩들 넘치는 자동차 다른 피부색의 수많은 사람들. 신대륙의 경이로움에 혼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커뮤니티 단위로 구성된 이민사회 미국의 참모습에 좌절했다. 심짐은 몽골 항공사의 기장인 아버지를 두었다. 고향에서 그는 풍족했고 행복했다. 학업도 뛰어났다. 영어도 독학으로 깨쳤다. 90년대 초 몽골의 가정에선 흔치 않았던 케이블 TV를 통해 공부했다. "아버지는 모든 걸 주셨어요. 저를 강하게 키웠습니다. LA로 건너올 때 비행기 표를 구입하라며 1000달러를 주셨습니다. 그 돈은 아버지가 4년간 모은돈이에요.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유학 자체가 불가능했지요." 심짐은 현재 LA한인타운 내 위치한 '인터내셔널 칼리지'에서 국제무역을 공부때고 있다. 엄청난 환율차이로 부모의 도움은 꿈도 못 꾼다. 다운타운의 한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한다. 월세 700달러의 아파트에서 룸메이트와 같이 산다. 사생활은 사치다. 외식 한번 한 적이 없다. 생존이 걸린 문제다. 파트타임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고향 꿈을 꾼다. 이 버스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고향의 초원을 달리는 상상은 언제나 행복하다. 그러나 상상일 뿐. 버스에서 내리면 현실의 냉혹함에 온몸을 떤다. 이곳에 몽골의 향기는 없다. 삶의 희노애락을 나눌 동족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러나 그들은 없다. "외로움은 슬픔으로 바뀌고 그 순간 내가 왜 여기로 왔지라는 생각이 몰려와요. 참는 수 밖에 없는 거죠." 심짐은 슬플 때마다 몽골 민족의 영웅 칭기스 칸을 떠올린다고 한다. 제국을 건설했던 그도 언제나 외로웠다. 슬픔은 마음을 단련하는 무기다. 슬픔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강해진다. 슬픔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황준민 기자

2009.12.29. 20:22

[생로병사희怒애락-6] 범죄에 쓰러져간 한인들 "어떻게 이런 참사가···" 분노한 한인

분노는 아쉬움이다.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2009년에도 한인사회에 공분이 가득했다. 대상만 달랐을 뿐 막지 못한 사건들로 인해 한인들은 무력감에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잔인함은 4월부터 찾아왔다. 20일 동안 한인 6명이 목숨을 잃었다. 2일 캘스테이트 롱비치 대학생 케이트 수 이씨가 베트남계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됐다. 몸 아픈 남동생 보살펴주고 싶다고 간호사가 되려 했던 착한 누이였다. 한인들은 범인의 어리석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닷새후 테미큘라 꽃동네 피정의 집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도 한인들을 경악케 했다. 봉사자 정수찬씨가 2쌍의 한인 봉사자 부부에게 총격을 가해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기도의 안식처가 지옥으로 변한 사건을 접한 한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의 말만 삼켜야 했다. 이어 10일과 12일 연속으로 한인 남녀가 경찰 총격에 사망하면서 한인들의 공분은 극에 달했다. 수지 영 김씨가 13개월된 자신의 딸을 태우고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차안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데 이어 이틀 뒤 북가주 폴섬시에서도 조셉 한씨가 칼을 든 채 경찰에 저항하다 경관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의 과잉진압의 논란이 야기됐고 한인들은 서명운동으로 참을 수 없었던 화를 표출했다. 5월에는 한국에서 변고가 들려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뉴스를 접한 한인들은 분노의 대상은 달랐겠지만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이는 희생양을 찾으려한 정부를 탓했고 어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무책임하다 했다. 하반기에도 한인들을 화나게 한 사건들은 계속됐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놓고 밝혀지지 않고 있는 진실들도 그 틈바구니에 있다. 하지만 가장 울분을 토했던 사건은 12월에 발생한 두 한인의 죽음이다. LA외곽 베니스 지역에서 임신부 강은희(38)가 정신병력이 있는 흑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피살됐다. 용의자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말라는 강씨의 애원이나 범행을 발견한 목격자의 만류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체포됐지만 정신병세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는 실형을 면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두고 댈러스에서는 '도우넛 천사'가 강도의 총에 스러졌다. 숨진 정기선(46)씨는 산타 모자를 쓰고 가난한 이웃 아이들에게 도우넛을 무료로 나눠주곤 했다. 성실한 남편이고 두딸의 멋진 아빠였다. 강도들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올해를 사흘 남겨놓고 굳이 아픈 노여움을 되새김질 하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해서다. 삶과 늙어감 아픔과 죽음 그리고 기쁨을 각인하고 싶은 것 처럼. 그래서 분노는 일회용품 처럼 버리는 감정의 쓰레기가 아니라 끝을 지켜보고 잊지 말아야 하는 숙제다. 정구현 기자

2009.12.28. 20:37

[생로병사喜로애락-5] 20년차 베테랑 김동헌 조리장 "한식 세계화가 나의 기쁨"

인생의 즐거움은 '오감(五感) 만족'이다. 요리는 그 오감을 통합.충족시킨다. 눈으로 보는 맛 요리하는 소리의 맛 냄새의 맛 혀를 자극시키는 맛 재료의 질감. 요리사는 '희(喜)'의 지휘자인 셈이다. 한국 쉐라톤 워커힐 호텔 한정식 레스토랑 '온달'을 이끌었던 20년차 베테랑 조리장 김동헌(43)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그의 음식솜씨에 감탄했다. 청와대도 그의 텃밭이었다. 김 조리장은 외국인들이 한식맛에 푹 빠진 모습을 볼 때 요리사로서 '희'를 느낀다고 한다. 골프 선수의 홀인원 순간이 그가 비교하는 기쁨지수.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가을 미국행을 자청했다. 노는 물을 확 바꾼 것이다. 한국땅에서 한식 맛을 본 외국인들의 모습 속에 한식 세계화의 가능성을 엿봤고 기회의 땅 미국에서 한식 세계화를 뿌리내려 기쁠 '희'를 극대화 시킨다는 청사진이다. 그가 선택한 곳은 LA 윌셔 그랜드 호텔 한식당 '서울정'.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모여산다는 입지적 조건에 상징적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이전까지 단 한번도 미국땅을 밟아본 적 없었다. 가족은 '한식 세계화'에 꽂힌 그를 말릴 순 없었다. 다른 동료들은 40대에 사서 고생할 필요있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겐 잔소리일 뿐이었다. 김 조리장은 자신의 월급 가운데 일정액을 실력 증진을 위해 재투자한다. 주말이면 가방 안에 수첩과 사진기를 챙겨 LA 인근 지역 레스토랑을 돌며 각 나라의 고유 음식들을 맛보고 사진을 찍는다. 새로운 '희(喜)'를 찾기 위해서다. 주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홀에 나가 타인종 손님에게 직접 맛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첩에 꼼꼼히 적는다. 영어학원도 등록했다. 불혹이 넘는 나이에 처음 배우는 영어라 쉽게 늘진 않지만 꿈을 위해선 멈출 수 없다. "몇 십년전 스시가 처음 미국에 왔을때 사람들은 미개인이라며 비난했죠. 날생선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미국땅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캘리포니아롤로 현지화됐고 아보카도 오이 맛살 등 미국식에 맞는 재료 사용이 대성공을 거뒀죠." 그는 스시에 대적할 음식으로 비빔밥을 꼽는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간단히 세트 메뉴를 고르듯 비빔밥도 패스트푸드화가 가능하다. 물론 건강식으로 말이다. 이를 위한 아이디어도 살짝 공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재료를 한국식 나물로만 고집하지 말고 아보카도 치즈 등 현지화에 맞게 바꿔주는 것. 밥에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추가하는 것이다. 고추장의 맵기 정도도 다양해야 한다. "타인종이 한식을 먹는 모습이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닌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 가장 큰 '희'를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목표를 갖고 하나하나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은 행복하다. 즐거움은 꿈을 갖는 것이다. 박상우 기자 [email protected]

2009.12.24. 20:08

[생로병死희로애락-4] 시신방부 처리사 이필권씨 "삶처럼 마지막 표정도 가지각색"

누구나 죽는다. 아쉽고 억울하고 허망하고 미련이 남지만 공평하다. 시신 방부 처리사 이필권(72)씨. 지난 20년간 그가 다룬 시신은 1만여구에 달한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르듯 시신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이란다. 이씨의 손을 거친 시신 가운데 미소 짓고 있던 사람은 단 두명이었다. 80대 한인 할머니와 미국인 할머니다. 이씨는 둘의 표정을 '반가사유상'에 비교했다. 죽는 순간까지 행복해 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온화한 평상심이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시신이 말해주는 셈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死)를 다루다 보니 별다른 느낌이 없을 법도 하지만 그도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다. 동창의 시신을 처리할 때다. "옛날 추억도 생각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묘지에 안장될 때까지 계속 마음이 아프죠." 하루를 사는 것은 추억을 쌓는 일이고 그 추억과의 단절은 슬프다. 삶이 싫다며 자살을 선택한 사람의 시신과 삶을 연장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 사람의 시신을 볼 때는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7세 청년의 시신이 들어왔습니다. 그 옆엔 생명 연장을 위해 심장수술을 하다 기력이 다 떨어져 사망한 80대 할아버지의 시신이 있었고요.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때로는 검시소에서 시신의 장기가 엉망진창이 되어 온다. 이씨는 그것을 가지런히 배열하고 정성을 다해 꿰맨다. 그리고 오일이 포함된 특수 화장품을 사용해 화장을 한다. 시신은 건조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한 사람인 경우 주사바늘 구멍까지 찾아내야 한다. 그 구멍 사이로 체액이나 피가 새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총상으로 구멍이 난 시신 같은 경우에는 특수 재질 왁스로 메운다. 시신 당 작업 시간은 3시간이 넘는다. 이씨는 한국에서 약사였다. 성균관대학 약대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졸업했다. 보건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1970년대 중반 나은 삶을 위해 미국을 택했고 희소성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했다. 죽음과 '함께 사는' 이씨에게 사(死)의 의미는 자연현상이고 끝이 아닌 완성이다. 스피드가 중시되는 이 세상에 살다보면 주변의 진정한 가치는 그저 스쳐간다. 우리가 죽음 앞에 엄숙해 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바로 진정한 삶의 가치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속도가 정지된 순간의 숭고함.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인생은 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조급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누구나 세상을 뜬다. 박상우 기자

2009.12.22. 19:25

[생로病사희로애락-3] 희망으로 이겨낸 '절망의 병'

'병'(病)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병'에는 삶에 대한 희망과 죽음의 공포가 공존한다. 가장 무서운 병은 발병하면서부터 회생 의지를 꺾어버리는 병이다. 바로 절망이다. 절망 세포가 순식간에 희망 세포를 삼켜버리고 나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식물인간'이 돼 버린다. LA한인타운에서 부동산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는 임수경(57.리맥스 트라이시티 소속)씨. 소위 '멀티-밀리언 달러 클럽'에 속해 있는 잘 나가는 에이전트다. 남가주이화여대총동문회에서 4년째 회장과 이사장을 연임하면서 동문들의 화합을 이끄는 데도 열심이다. 요즘같은 연말에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하루하루를 웃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임씨가 두 아들을 연달아 교통사고로 잃고 그 자신도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96년 2월: 믿을 수 없다. 후배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던 맏아들 우영(18)이가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갔다. 하늘이 무너졌다. 어떤 말로도 이 슬픔을 표현할 수가 없다. #97년 1월: 둘째 주영(17)이와 새해 첫날 새벽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눈을 뜨자마자 주영이부터 찾았다. 첫째 우영이를 보낸지 첫 기일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남편은 주영이가 다른 병동에 있다고만 했다. #97년 4월: 석 달간 입원치료가 끝나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주영이 병동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영이의 사망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며칠 밤을 남편과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었다. #98년 10월: 재활치료가 끝났다. 살아도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몸은 살고 싶었나 보다. 슬픔이 쌓여 절망이 됐다. 신앙의 힘으로도 고통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깨어있기도 잠 들기도 힘들었다. #99년 11월: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 나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데 모두 죽은 자녀들과의 추억에만 빠져 있다. 위안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슬픔만 더해갔다. 두 번 다시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하늘 나라의 두 아이가 절망에 빠져 있는 엄마의 모습에 슬퍼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희망 세포 한 개가 피어나는 순간이다. #99년 12월: 용기를 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10년이 넘도록 서랍 안에 넣어뒀던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증을 다시 꺼내들었다. 남편도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제자리에 돌아온 모습이다. 그렇게 두 아들을 가슴 속 한켠 깊은 곳에 묻었다. #2009년 12월: 치열했던 삶 속에서 '나'라는 자아를 다시 찾았다. 일과 생활 사람의 소중함도 새삼 느껴진다. 얼마 전 아내를 잃었다는 한 남자가 연락을 취해왔다. 희망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며…. 절망을 맛본 사람만이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고 달랬다. 스스로 멈춰놨던 삶의 시계 바늘을 다시 돌리는 순간 마음의 병은 치유되기 시작한다고. 곧 돌아올 두 아들의 기일에는 말해주고 싶다. 엄마 다 나았다고.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 거라고. 서우석 기자

2009.12.18. 20:32

[생老병사희로애락-2] "의료혜택 줄어···" 늘어나는 주름살

살아간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다. '노(老)'는 인생 그 자체다. LA한인타운 패스트푸드점 어디를 들어가도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한인 노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곳에는 우리와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담겨있다. 14일 오전 6가의 한 햄버거 집. 김동철(80) 할아버지와 김영순(77) 할머니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마주 앉은 노부부의 향취는 커피향보다 더 진하다. "늙은 마누라하고 여기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최고야. 세상 뭐 별거 있나 난 마누라가 있어서 행운아야. 요즘은 마누라한테 꼼짝 못하고 쥐어 살지만…" 할머니가 "쓸데 없는 소리는"하고 눈을 흘겼지만 잔 미소가 남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동반자'라는 것을 일깨운다. 젊은 날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부와 명예는 노부부의 평온한 영혼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같은 날 웨스턴가 패스트푸드점 바깥에는 80대 후반 노인이 간이의자를 펴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손에는 아직 오전인데도 심하게 꼬깃꼬깃해져 얼마나 봤을 지 모를 신문 한 부가 쥐어져 있다. "이게 다 외로워서 그런 겁니다. 자식들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무료함에 다 거리로 나오시는 거죠. 개중에는 남편 아내와 사별한 노인이나 가족들이 찾아오지 않는 독거노인도 많아요." 버몬트가의 또 다른 패스트푸드점. 70대 한인 노인 세 명이 커피 석 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고 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인근 노인아파트에 살면서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만난다는 이들의 대화 화두는 '노인 정책과 건강'이다. 방경수(75)씨는 "예전에는 매월 1인당 900달러이던 웰페어가 올해부터 700달러로 뚝 떨어지면서 사는 데 부담이 크다"면서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메디캘 등 정부 의료혜택이 축소된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무료로 치료를 받던 혜택이 많은 부분 사라지면서 올해부터 병원비 걱정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 케빈 최(78)씨도 "그나마 우리는 노인아파트에 입주해 그럭저럭 살아나가는 편"이라면서 "주변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 심적인 두려움이 커지는데 의료 혜택은 줄어들기만 해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전했다. 세 노인의 커피 속에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말벗과 건강'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방씨와 최씨는 자신들의 고충은 자식들에 비할 게 못 된다면서 걱정했다. 앞으로도 넘어지고 주저앉을 일이 많을텐데 잘 견뎌낼 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내 새끼들'이다. 노인은 '삶의 역사'고 그들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다. 삶의 중요한 가치는 '반려자 말 벗 건강 자식'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노(老)'가 일깨워 준다. 서우석 기자

2009.12.17. 20:11

[生로병사희로애락-1] 쉘터 생활 모자, 희귀병 엄마는 아들이 '삶의 빛'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도 결국 여덟 자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 한다. 2009년 우리의 삶과 한인사회의 좌표를 생로병사희로애락으로 풀어본다. 캄캄한 어머니 뱃속에서 9개월을 보내야 비로소 삶이 주어진다. 생(生)은 그렇게 어둠에서 출발한다. 이현정(40)씨는 '생'을 맛보지 못했다. 태어나서부터 40년을 어둠의 터널 속에 있다. 가난한 집에서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음식물의 일부가 위가 아닌 기도로 자꾸 넘어가는 희귀병에 시달렸다. 먹지 못하니 살이 찔 일이 없었다. 몸무게 78파운드(35kg). 9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하도 병치레를 하다보니 가족들조차 외면했다. 어렵사리 미국에 와 웨이트레스 등 힘든 일을 했다. 전 남편에게 가정폭력으로 시달리다 버려졌다. 딱 한번 생의 기쁨은 있었다. 아들 이삭을 낳았을 때다. "지금까지 살면서 애기를 낳았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 하지만 그 기쁨이 곧 슬픔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어미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현정씨는 현재 아들 이삭(9)과 함께 '소중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홈리스 쉘터에서 살고 있다. 전에는 지인의 도움으로 더부살이를 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지인도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방 한칸이라도 얻으려면 일을 해야했지만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딱 한번' 생의 기쁨인 아들의 손을 잡고 캄캄한 거리로 나와야 했다. '어둠'에 익숙한 현정씨였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기도에 구멍이 나 있는 현정씨의 울음은 거친 숨이 새는 소리였다. "엄마 울지마 괜찮아." 이삭이 엄마를 위로했다. 이삭이는 밝은 아이다. 애교도 많고 어리광도 잘 부린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엄마에게 뽀뽀세례를 퍼부으며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털어놓는다. 엄마의 어둠을 알고 본능적으로 생의 밝음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은 어른스런 이삭이를 대견하다고 하지만 엄마는 또래답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매일 진통제를 먹어야만 견딜 수 있는 고통에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 아프지 마"라며 품 안에 파고드는 어린 아들을 만질 때면 '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한때는 이삭이의 입양도 생각했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불안한 마음에 좀 더 나은 길을 아들에게 터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삭이가 없다면 전 살아있어도 죽은 몸일 거예요." 어둠은 생을 낳고 생은 어둠과 동행한다. 현정씨 모자는 그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어려운 시절 모두가 어둠 속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 바로 옆에는 생(生)이 있다.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어둠이 없다면 생은 없다. 장열 기자

2009.12.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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