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방부 처리사 이필권(72)씨. 지난 20년간 그가 다룬 시신은 1만여구에 달한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르듯 시신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이란다.
이씨의 손을 거친 시신 가운데 미소 짓고 있던 사람은 단 두명이었다.
80대 한인 할머니와 미국인 할머니다. 이씨는 둘의 표정을 '반가사유상'에 비교했다. 죽는 순간까지 행복해 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온화한 평상심이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시신이 말해주는 셈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死)를 다루다 보니 별다른 느낌이 없을 법도 하지만 그도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다. 동창의 시신을 처리할 때다.
"옛날 추억도 생각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묘지에 안장될 때까지 계속 마음이 아프죠." 하루를 사는 것은 추억을 쌓는 일이고 그 추억과의 단절은 슬프다.
삶이 싫다며 자살을 선택한 사람의 시신과 삶을 연장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 사람의 시신을 볼 때는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7세 청년의 시신이 들어왔습니다. 그 옆엔 생명 연장을 위해 심장수술을 하다 기력이 다 떨어져 사망한 80대 할아버지의 시신이 있었고요.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때로는 검시소에서 시신의 장기가 엉망진창이 되어 온다. 이씨는 그것을 가지런히 배열하고 정성을 다해 꿰맨다. 그리고 오일이 포함된 특수 화장품을 사용해 화장을 한다. 시신은 건조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한 사람인 경우 주사바늘 구멍까지 찾아내야 한다. 그 구멍 사이로 체액이나 피가 새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총상으로 구멍이 난 시신 같은 경우에는 특수 재질 왁스로 메운다. 시신 당 작업 시간은 3시간이 넘는다.
이씨는 한국에서 약사였다. 성균관대학 약대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졸업했다. 보건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1970년대 중반 나은 삶을 위해 미국을 택했고 희소성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했다.
죽음과 '함께 사는' 이씨에게 사(死)의 의미는 자연현상이고 끝이 아닌 완성이다. 스피드가 중시되는 이 세상에 살다보면 주변의 진정한 가치는 그저 스쳐간다. 우리가 죽음 앞에 엄숙해 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바로 진정한 삶의 가치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속도가 정지된 순간의 숭고함.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인생은 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조급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누구나 세상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