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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病사희로애락-3] 희망으로 이겨낸 '절망의 병'

Los Angeles

2009.12.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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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잇따라 사고로 잃은 임수경씨
아픔딛고 치열한 삶 살며 자아 되찾아
'병'(病)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병'에는 삶에 대한 희망과 죽음의 공포가 공존한다. 가장 무서운 병은 발병하면서부터 회생 의지를 꺾어버리는 병이다.

바로 절망이다. 절망 세포가 순식간에 희망 세포를 삼켜버리고 나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식물인간'이 돼 버린다.

LA한인타운에서 부동산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는 임수경(57.리맥스 트라이시티 소속)씨. 소위 '멀티-밀리언 달러 클럽'에 속해 있는 잘 나가는 에이전트다. 남가주이화여대총동문회에서 4년째 회장과 이사장을 연임하면서 동문들의 화합을 이끄는 데도 열심이다. 요즘같은 연말에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하루하루를 웃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임씨가 두 아들을 연달아 교통사고로 잃고 그 자신도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96년 2월: 믿을 수 없다. 후배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던 맏아들 우영(18)이가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갔다. 하늘이 무너졌다. 어떤 말로도 이 슬픔을 표현할 수가 없다.

#97년 1월: 둘째 주영(17)이와 새해 첫날 새벽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눈을 뜨자마자 주영이부터 찾았다. 첫째 우영이를 보낸지 첫 기일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남편은 주영이가 다른 병동에 있다고만 했다.

#97년 4월: 석 달간 입원치료가 끝나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주영이 병동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영이의 사망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며칠 밤을 남편과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었다.

#98년 10월: 재활치료가 끝났다. 살아도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몸은 살고 싶었나 보다. 슬픔이 쌓여 절망이 됐다. 신앙의 힘으로도 고통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깨어있기도 잠 들기도 힘들었다.

#99년 11월: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 나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데 모두 죽은 자녀들과의 추억에만 빠져 있다. 위안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슬픔만 더해갔다. 두 번 다시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하늘 나라의 두 아이가 절망에 빠져 있는 엄마의 모습에 슬퍼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희망 세포 한 개가 피어나는 순간이다.

#99년 12월: 용기를 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10년이 넘도록 서랍 안에 넣어뒀던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증을 다시 꺼내들었다. 남편도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제자리에 돌아온 모습이다. 그렇게 두 아들을 가슴 속 한켠 깊은 곳에 묻었다.

#2009년 12월: 치열했던 삶 속에서 '나'라는 자아를 다시 찾았다. 일과 생활 사람의 소중함도 새삼 느껴진다. 얼마 전 아내를 잃었다는 한 남자가 연락을 취해왔다. 희망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며…. 절망을 맛본 사람만이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고 달랬다. 스스로 멈춰놨던 삶의 시계 바늘을 다시 돌리는 순간 마음의 병은 치유되기 시작한다고. 곧 돌아올 두 아들의 기일에는 말해주고 싶다. 엄마 다 나았다고.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 거라고.

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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