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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식의 융자 이야기] 왕이 돼버린 은행

Washington DC

2010.02.1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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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mier Funding Group
한참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날개를 달았던 시기의 일이다. 브로커업무를 하면서도 은행 이름을 다 알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은행이 생겨났다. 매일 사무실을 찾아오는 은행직원들도 달랐으며 매일 새로운 은행직원이 자신의 은행소개에 열을 올렸다. 이 시기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융자를 승인해 줄테니 신청만 해달라는 은행도 많았다. 융자승인의 다리역할을 하는 필자와 같은 브로커들에게는 다시는 오기 힘든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은행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이렇게 완벽하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브로커와 직접업무를 하는 은행직원들은 아직도 융자실적을 올려야하기 때문에 태도에 변함이 없다. 문제는 융자승인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너무 당당해진 기세.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서류라 할지라도 그 직원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필요한 서류가 된다.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라 해도 그 직원이 특정 서류를 요구하게 되면 그 서류 없이는 승인이 불가능하다.

융자업무의 특성상 한 건의 융자승인을 받아내려면 한 명의 심사직원만이 그 건을 담당하게 된다. 자신의 파일을 검토하는 직원이 성격이 어떠한지, 그날의 컨디션이 어떤지에 따라 융자승인이 날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중간역할을 하는 브로커나 브로커와 업무를 하는 은행직원은 그 심사직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조심조심한다.

숏세일이나 융자재조정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상하게 은행들의 팩스나 이메일은 한번 보내서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도 못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못 받았다고 하면 그 이상 말을 하려 하지도 않는다. 팩스나 이메일을 보내면 은행 측에서 받아서 접수되는데 또 며칠 이상이 걸린다. 그렇다 보니 서류 한번 보내려면 보통 일주일 정도를 아무일도 못하고 허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숏세일이나 재조정 심사를 위한 서류분실을 당연한 사례로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해 불만을 말하면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의 미국내의 주택시장의 급격한 몰락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어떻게든지 융자를 승인해주려 했던 은행들도, 이를 이용해서 무리하게 융자를 받아냈던 브로커들도, 그리고 무리한 줄 알면서도 일단 융자받아서 집을 구입했던 구입자들도 모두 잘못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은행 자신이었다는 것을 벌써 잊어버렸나 보다. 또한 지금 마치 죄인취급을 받는 주택소유자들은 그 당시 은행이 고개 숙여 찾아 다니던 고객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하다.

물론 숏세일이나 재조정의 업무를 담당하는 은행직원 입장에서는 아직 완벽하게 은행시스템도 없고, 정확한 승인기준도 없으며 업무는 밀리고 직원의 손은 부족하고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든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를 들어 고객의 집을 담보로 왕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불성실한 태도의 은행직원들로 인하여 집이 차압되거나 차압위기에 처해있어도 고객들은 어디에 하소연 할 때도 없다.

신규고객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물론 은행들이 좋아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고객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이나 진행이 빠르다. 하지만 조금의 문제라도 있다면, 특히 고정된 수입이 없는 개인사업자들이나 크레딧 점수가 조금 미달이 되는 경우에는 태도가 돌변한다. 서류상으로 모든 걸 증명한다 해도 이것저것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집을 구입할 경우 정해진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굉장히 절차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틀먼트 전날 느닷없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요구되는 서류를 요구하기도 하고, 그 시점에서 보여줄 수 없는 서류들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 이렇게 닥친 위기는 모두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이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도 모두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모기지를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되는 고객들이 왠지 다 지불하는 게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조정이나 숏세일을 시도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정말 어떠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객에게 마음 상하는 대우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의: 703-994-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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