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확실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결정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물론 전에는 "결정하지 않고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의지의 영역이 새로워져 결정하는 내용과 대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 중에 하나가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기회가 있으면 "약한 사람을 돕기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약자를 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돕기로 결정하고 기쁨으로 실천하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자신과 직접 관계된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들이 어려울 때 그들을 돕고 수고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상대가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그가 약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누군가 신체적 사회적 영적인 약자를 사랑으로 도와주고 섬기는 일이 바로 선교 사역이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가운데 하나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누며 섬기는 것이 오히려 뭔가 중요한 것을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뭔가 나누어주려고 선교지를 찾아갈 때 그들이 늘 경험하는 것은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게 된다는 점이다.
하바드의 교수직을 버리고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람이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정신 지체 공동체로 들어갔을 때 그는 "이제 약자에게 뭔가 나누어 주고 잘 도울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가 발견했던 것은 "그들에게 나누어 줄 것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그들에게 배울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진실하게 나누는 일을 실천하면 오히려 많은 것들을 돌려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 백 억대 부자이지만 한 푼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부자가 있다. 사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선교는 풍족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나누는 사역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선교는 희생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정적인 실수이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도 늘 아쉬움과 모자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것을 나누기 시작하라. 나에게 나눌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를 알게 된다.
또한 진정한 만족과 풍요를 체험하는 축복의 길로 나가게 된다.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일시 귀국했을 때 영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로하며 "선교하는 일에 얼마나 수고와 희생이 많았느냐"고 물었다. 그 때 리빙스톤은 "수고라뇨 희생이라뇨 그것은 내게는 특권이었습니다. 희생은 오직 나의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교사역에 참여하면서 "나는 지금 뭔가를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철수하라. 선교는 희생하는 사역이 아니고 아름답고 풍성한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 100302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