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계올림픽은 특별히 눈물 많았던 올림픽으로 기억된다. 한눈팔지 않고 평생을 한 목표로 달려온 젊은 인생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의 눈물 '피겨 여제'로 등극한 김연아의 눈물과 '안되는 것에 도전하는게 너무 슬펐다'는 이규혁의 눈물이었다. 성공과 실패라는 두 상극의 단어를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눈물이었다.
요즘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올림픽이 끝나자 이규혁의 존재를 이미 잊은 듯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김연아에 맞추고 있다. 이미 한국 CF계는 김연아가 있는 CF와 김연아가 없는 CF로 반분되다 시피했다. 미완성의 트리플 엑셀을 완성시켜 4년뒤에 다시한번 올림픽에 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 인기를 등에 업고 연예인이 될 것인가? 지난 1990년대 세계 탁구계를 주름잡았던 중국의 '덩야핑'이 유망한 정치인이된 것 처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인가로 연일 김연아의 이야기를 쏟아놓고 있다.
사람이 인정하는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메달의 색깔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열심히 일해 곱절을 남긴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은 칭찬을 받는다. 하나님의 성공의 기준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는 달리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만 남기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그 집안에 태어나거나 부모역시 자식을 선택해서 자식을 얻지 않았다.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 가운데 부모의 DNA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출발부터 하나님이 정해주신 한계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인간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위대하게"라는 메시지는 21세기의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캐치 프레이즈이다. 받은 달란트를 무시하고 꿈과 비전을 찾아 몽환에 젖어 살아가는 '돈키호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다. 밟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단단히 딛고 인생의 '하프타임'에 대한 작전을 새롭게 세워가야 한다.
# 100302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