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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바다 갈매기

동트는 새벽   은빛으로 일렁이는 모래사장   바다 갈매기   외 다리로 서 있거나   동그마니 앉아   분홍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석상처럼 고요합니다   우주의 무한한 평화   하얗게 하얗게 내려앉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날개 치는 소리   홀로 빛나는…       잠시 잠깐 새가 되고 싶었던   그 이른 새벽의     겨울 바다 이춘희 / 시인문예마당 갈매기 겨울 바다

2025.06.05. 18:53

[글마당] 바다 갈매기

동트는 새벽   은빛으로 일렁이는 모래사장   바다 갈매기   외 다리로 서 있거나   동그마니 앉아   분홍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석상처럼 고요합니다.   우주의 무한한 평화   하얗게 하얗게 내려앉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날개 치는 소리   홀로 빛나는….       잠시 잠깐 새가 되고 싶었던   그 이른 새벽의     겨울 바다 이춘희 / 시인글마당 갈매기 겨울 바다

2025.05.01. 17:4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보다 힘이 있고   움직이는 것이   정지된 것보다 강하다       부드러운 싹이 동토를 뚫고   가느다란 뿌리가   바위를 무너트린다       강한 바람은   옷을 여미게 하지만   부드러운 햇살은   겉옷을 벗게 한다       움켜쥔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외압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자율이다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새는   날갯짓의 수고보다   바람에 기대어 날기에   두려움이란 힘을 빼고   나를 맡기면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경계를 긋거나   담을 세우지 말라   이것들은 돌아서 당신을 가두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언어를 빼앗기게 된다      어떤 강한 말보다   조용한 문필의 힘이 강하다   그리고 명사보다 동사가 강하다   그리하여 명명되지 않은 시간에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는   바람에 기대어 긴 날개를 펴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새       미시간 호수를 산책하다 여러 무리의 새들을 보았다. 하얀 깃털이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부풀어 있다. 바다 갈매기도 보이고 작은 물새도 간혹 눈에 띄었다. 모래 위 세 갈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덩치가 꽤 큰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호수 가까이 날다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를 보면서 두 발로 디딘 땅을 떠나 결코 날 수 없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수면 위 높은 하늘로 날아간 새는 한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편안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나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걷고 있냐고.    독서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깜한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 몇 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속에 나왔던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를 기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새는 힘겹게 싸운다. 마침내 나를 감싸고 있는 알, 세상을 벗어나 신에게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갯짓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고와 노력도 이와 같지 않은가.     바보 갈매기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바보 갈매기의 이름은 알바트로스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새는 타조이지만 타조는 날 수 없는 새이기에 세상에서 날 수 있는 짐승 중에 가장 큰 것은 단연 알바트로스이다.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3미터가 넘는다. 길고 폭이 좁은 날개를 편 채 바다 표면에 생기는 풍속 차를 이용해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서도 어느 새보다 더 멀리 날고 더 높이 오른다. 커다란 날개로 미끄러질 듯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단 한 개의 알을 낳아 암수 교대로 알을 품는다. 새끼는 성장이 느리지만 수명은 30년 이상이나 산다. 한 마리의 짝과 평생 어울려 다니는 독특한 생태가 특이하다. 아마도 함께 기대어 하늘을 나는 데에는 한 마리의 짝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알바트로스가 지상에 내려앉으면 큰 날개가 오히려 장애가 되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일단 하늘에 오르면 폭풍우 속에서도 가공할 만한 용기와 담력으로 고도의 추진력과 힘을 얻어 속도와 높낮이를 자율 하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볼 때 시련과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삶은 그 속에서 견디며 단련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시련과 폭풍우 속에서도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 더 높이 더 멀리 역경을 헤치며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새 알바트로스처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알바트로스 갈매기 바보새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바다 갈매기

2024.09.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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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갈매기의 꿈

갈매기의 꿈    하늘 별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제일 늦게 나온 푸른 별 하나   새들의 무리에게, 붉은 저녁노을에게, 발길을 돌리는 지친 어깨에게, 슬픔과 눈물의 세레나데에게, 뜨겁고 깊은 그루터기에게, 서성이는 걸음 뒤안길에게, 작고 푸른 점 안의 슬픔들에게    춤출 수 있는 흥을 끌어내며 어루만지는 당신의 카타르시스 푸른 별에 살고 있는 우리 위대한 것을 말하지 전에 피 흘리고 땅을 정복한 역사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한낱 먼지일 뿐을 말하고 미시간 호수, 출렁이는 파도일 뿐 시야를 떠난 주저앉는 것들의 얇아진 생채기뿐임을 말하고 서쪽 하늘 피어날 작고 푸른 별 향한 힘찬 날갯짓임을 말하고   Lawrence와 Pulaski 사우스웨스트 코너 3층 건물. 그 옥상은 한 무더기 새들의 집이다. 종종 그곳을 지나갈 때 하늘을 덮는 새들의 무희를 볼 수 있다. 앞장선 한 마리 새를 쫓아 어마 무시한 그룹의 새떼가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간다. 길 건너로 낮게 날아가다 방향을 틀어 북쪽 먼 곳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내 제 집으로 돌아와 빌딩의 옥상 근처를 난다. 늦게 발동이 걸린 다른 새 떼가 옥상을 떠나 비행을 시작한다. 하늘엔 먼저 비행을 즐기고 있는 그룹과 어우러져 두 군락의 새떼가 하늘을 겹치며 난다. 빵가루를 뿌려 주었는지 그 많은 새들이 한꺼번에 날갯짓을 퍼득이며 건물 건너 Walgreen 파킹랏을 가득 메운다. 주위에 사람들이 지나가도 잠깐 자리를 옮길 뿐 먹이를 먹는데 여념이 없다. 마치 비둘기들의 천국 같다.   지난 몇 개월 미시간 호수를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예쁜 등대도 만나기도 하고 노을 지는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밀려오는 파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찬 바람에 몸이 들썩이기도 하였다. 비 내리는 호수의 적막함에 꿈같은 아득함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눈 내리는 호수는 어느 다른 행성의 모습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다. 이제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반전은 있었다. 인적이 끊긴 해변에 갈매기의 무리가 모여 도닥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깃털을 부풀리며 한가로이 망중한을 즐기는 그곳은 또한 그들만의 천국임에 틀림없다.     Chopin의 Waltz of the rain을 들으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찬바람을 등에 지고 넓은 호수를 나는 한 마리 갈매기가 외롭게 보였지만 호기로웠다. 마치 조나단 리빙스턴을 보는듯 하였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갈매기 이름이다. 조나단에게는 먹는 것보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했다. 단지 먹기 위해서의 비행을 거부하고 먼바다로의 비행을 통해 자유를 추구하였다. 하늘 높이 날아 오른 후 한계속도를 넘어 수직 하강을 시도하기도 했다. 실패하면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그는 고난도 비행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수천 년 동안 우린 물고기 머리 밖에 찾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멀리, 더 오래 날아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조나단은 무리에서 쫓겨났다. 눈 뜨면 무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였다. 그러나 왜 사는가? 왜 나는가? 그것이 조나단의 질문이었고 마침내 그는 그 대답을 찾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조나단이 고민했던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꼭 우리의 삶이 멍하니 바라보았던 새떼의 삶 같아서, 물고기 머리를 찾아 온종일 물가를 서성거리는 갈매기의 삶 같아서 서글퍼지는 오후. 창공을 치고 날아오르는 조나단의 비행에 눈길을 주며 독백처럼 나에게 한마디 한다. “눈이 가르쳐 주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믿지 말아라. 마음의 눈이 가르쳐 주는 것을 믿어라 그러면 비로소 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제일 늦게 나올 푸른 별 하나 떠오를 서쪽 하늘에 힘찬 날갯짓의 조나단 리빙스턴의 모습이 보인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갈매기 새떼가 하늘 조나단 리빙스턴 미시간 호수

2024.01.2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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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갈매기

  ━   갈매기     -이태극 (1913-2003)   햇빛은 다사론데 물결 어이 미쳐 뛰나   뜨락 잠기락하여 바람마저 휘젓다가   푸른 선 아스라 넘어 날라 날라 가고나   온 국민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안감   - 시조연구(1953)     ━   오늘의 시조단을 이룬 넉넉한 품     고시조를 집대성하고 현대시조를 이론과 작품으로 체계화한 월하 이태극의 데뷔작이다. 선생이 박병순, 한춘섭과 함께 엮은 『한국시조큰사전』(1985. 을지출판공사)에는 이 작품을 1952년 5월, 영도에서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전까지 선생은 서울대와 이화여대, 동덕여대에 출강하며 시조의 이론 연구에 몰두해오다가 6·25 동란을 맞아 40대 부산 피난 시절에 직접 시조를 창작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선생은 이 작품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의 광풍을 슬퍼하며 아스라한 평화를 그리고 있다. 따뜻한 봄, 거친 물결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의 모습을 중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봄은 또 어찌 이리 넘기기가 힘든 것인가?   선생의 작품들은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시조의 전통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인 자수율에 따른 율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선생은 1960년 하한주, 조종현, 김광수와 더불어 ‘시조문학’을 창간, 현대시조의 재목들을 배출해 오늘의 시조단을 이루게 했다. 선생은 넉넉한 품으로 시조를 가르치셨다.   오늘날 평단에서 필봉을 드날리고 있는 이숭원 교수가 그의 외아들이다. 3회 추천완료제이던 1960년대와 70년대, 선생은 나를 4회 만에 천료(薦了) 시키셨다. 그만큼 오랜 훈도(薰陶)를 받았으니 나의 복이었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갈매기 창간 현대시조 고향인 선생 월하 이태극

2023.01.26. 20:03

[문화산책] 갈매기의 꿈, 다시 한 번

글 쓰는 데 필요해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다시 읽고는 깜짝 놀라는 일이 가끔 있다. 옛날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읽게 된다. 연륜 탓일까?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의 ‘갈매기의 꿈’도 그렇게 새로 읽은 책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라는 호기심이 일어, 책장을 한참 뒤져 한구석에서 겨우 찾아냈다. 내가 가진 책은 1970년에 처음 발간된 영문판과 1975년에 나온 한글 번역판이다.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읽어가노라니 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의 화면들도 되살아났다.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를 배경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힘찬 날개짓….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구절도 가슴을 찌른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꿈을 펼치기는커녕, 먹이를 구하기 위해 초라한 ‘생계형 글쟁이’가 되어, 감히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 꾸역꾸역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도 누추하고 부끄러워, 끊었던 술을 한잔했다. 물론 소시민적 삶의 소소한 행복도 소중하지만, 예술 세계에서 그런 따위의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통할 리 없다.   ‘갈매기의 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으니 다들 읽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전직 비행사였던 작가가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일생을 통해 모든 존재의 초월적 능력을 일깨운 우화형식의 신비주의 소설이다. 우화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비견되기도 한다.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리 비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자신의 행복과 더욱 멋지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저자가 해변을 거닐다가 공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정식으로 출간되어 5년 만에 700만 부가 판매되었고,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 문학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 더 널리 읽히는 불후의 명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한 뒤, 1970년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초판이 정식 출간되었다. (참고로 리처드 바크의 Bach는 현대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같은 철자다.)   이 작품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것은 삶의 숭고한 목적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인간이 가진 무한한 힘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자유를 선택하는 삶의 가치, 인간은 누구나 위대한 가능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메시지….   “꿈이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을까?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도 그렇다.   그나저나, 꿈이 없으면 생명이 아니라는데, 나는 어떤가? 이제 새삼스레 꿈을 찾아 떠나기엔 너무 늦은 걸까? 꿈을 꾸는데 늦은 때란 없다. 있을 수 없다. 그렇다 ‘꿈꾸러기’에는 나이가 없다. 그렇게 믿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갈매기 갈매기 조나단 세계적 베스트셀러 전세계 언어

2022.08.17. 20:24

[문화산책] 갈매기의 꿈, 다시 한 번

글 쓰는 데 필요해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다시 읽고는 깜짝 놀라는 일이 가끔 있다. 옛날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읽게 된다. 연륜 탓일까?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의 ‘갈매기의 꿈’도 그렇게 새로 읽은 책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라는 호기심이 일어, 책장을 한참 뒤져 한구석에서 겨우 찾아냈다. 내가 가진 책은 1970년에 처음 발간된 영문판과 1975년에 나온 한글 번역판이다.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읽어가노라니 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의 화면들도 되살아났다.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를 배경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힘찬 날개짓….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구절도 가슴을 찌른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꿈을 펼치기는커녕, 먹이를 구하기 위해 초라한 ‘생계형 글쟁이’가 되어, 감히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 꾸역꾸역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도 누추하고 부끄러워, 끊었던 술을 한잔했다. 물론 소시민적 삶의 소소한 행복도 소중하지만, 예술 세계에서 그런 따위의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통할 리 없다.   ‘갈매기의 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으니 다들 읽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전직 비행사였던 작가가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일생을 통해 모든 존재의 초월적 능력을 일깨운 우화형식의 신비주의 소설이다. 우화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비견되기도 한다.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리 비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자신의 행복과 더욱 멋지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저자가 해변을 거닐다가 공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정식으로 출간되어 5년 만에 700만 부가 판매되었고,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 문학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 더 널리 읽히는 불후의 명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한 뒤, 1970년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초판이 정식 출간되었다. (참고로 리처드 바크의 Bach는 현대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같은 철자다.)   이 작품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것은 삶의 숭고한 목적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인간이 가진 무한한 힘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자유를 선택하는 삶의 가치, 인간은 누구나 위대한 가능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메시지….   “꿈이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을까?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도 그렇다.   그나저나, 꿈이 없으면 생명이 아니라는데, 나는 어떤가? 이제 새삼스레 꿈을 찾아 떠나기엔 너무 늦은 걸까? 꿈을 꾸는데 늦은 때란 없다. 있을 수 없다. 그렇다 ‘꿈꾸러기’에는 나이가 없다. 그렇게 믿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갈매기 갈매기 조나단 세계적 베스트셀러 전세계 언어

2022.08.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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