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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공격성이 인간관계 근저 구성

자크 라캉은 '유아기'에 거울을 보면서 자기의 조각난 이미지를 합성하고, 그것을 '자아'로 간주하면서 산다고 한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는 유아가 성장하고 뇌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내부에 '자아'가 형성되어 외부에서 자기 이미지를 인지한다고 한다.     반면에 라캉의 주장은 내부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구조가 아니라 외부에서 비친 자기를 '자아'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라캉은 이것을 '소외(疏外)'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인간은 외부 이미지에 자기를 의탁하고 그것을 자기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정신분석가 무카이 마사아키(向井雅明.78)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트라우마 성 신경증 즉, 전쟁 등으로 심적 스트레스를 입은 사람이 그것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나 고뇌에 가득 찬 그 환자에게 쾌락 원리로써 그것을 불식시키려 시도했으나 환자는 치료가 부정적으로 되면서 증상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분석가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치료의 방향과 역행해 나가며 분석을 중단하려고까지 했다.     이러한 현상을 통하여 프로이트는 쾌락 원리의 깊숙한 곳에 더 근본적인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을 '죽음 충동'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그는 인간의 심적 메커니즘을 '죽음'을 나타내는 '타나토스'와 '생'을 나타내는 '에로스' 사이의 상반된 두 충동에서 일어나는 투쟁이라고 가정하고, 주체적 메커니즘을 생각했다.     반면에 라캉은 '죽음 충동'에 대해서 '거울단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며, 절단된 신체의 이미지에서 발생하는 공격성으로 해석했다.     즉, 자아의 본질은 언제나 "나인가, 타자인가" 사이에서 전제적인 신체 이미지를 둘러싼 투쟁이며, 인간관계의 근저는 이러한 공격성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그러나 '상징계'로 이동하면서 그곳의 자아와 타자는 나르시시즘적 관계에 있으며 '쾌락 원리'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한다.   죽음 충동을 현실계(실재계)와 연계하면서 '쾌락 원리'란 심적 메커니즘에서 항상 에너지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메커니즘으로, 에너지가 증대하면 그것을 처음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말한다고 한다. 즉, 프로이트의 사상을 그대로 채용하면서 죽음 충동은 충동으로 끝나는 것으로 매듭을 짓는다.     무카이 마사아키에 따르면, '충동'이란 흥분의 일종으로 여겨지는데, 생리적 흥분의 경우, 성욕의 욕구가 충족되면 가라앉는 일시적인 데 비해, 충동은 '항상성'으로 작용하는 압력으로써 제로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충동의 목적은 충동의 충족이다.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어머니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오이디푸스 적 모자 관계가 생긴다고 한다. 즉, 요구의 만족으로 아이는 어머니의 팔루스(성기) 위치에 놓이고,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는 일체화된 완전한 대타자(the Big Other)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한다.     대타자의 일체화된 완전성이 유지 되는 한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는 근친상간 구조를 벗어날수 없기에, 라캉은 주체의 탄생을 위해 반드시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봤다.   충동의 목적에는 이와 같은 근친상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프로이트는 충동의 목적을 성적인 개념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충동의 만족은 근친상간적 욕망의 만족을 가져오고 아이를 '전 오이디푸스기(preoedipal phase)'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충동의 만족은 '거절'되어야 한다고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인 '구조인류학'에서 친족 기본단위의 본원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성격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예외 없이 지켜지고 있는 근친상간 금지의 직접적 결과라고 했다.     즉, 친족 구조는 단적으로 근친상간을 금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류가 무의식적으로 근친상간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과의 결혼 풍습이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인간관계 공격성 근친상간 금지 죽음 충동 근친상간 구조

2026.01.2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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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사유재산이 공격성 유발' 안 믿어

루이 알튀세르는 소수의 인간이 역사의 주체나 역사 발전의 주동자가 아니라 다수의 굶주린 민중이 역사를 변화 발전시킨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적 구조주의자였다. 그러나 헤겔이나 라이프니츠의 사상과는 차별된다. 이전에 헤겔은 역사는 개인의 능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론에 따른다고 했다. 이것이 절대주의요, 세계주의라 했다. 즉, 신(神)이 정해놓은 세계 질서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했다. 라이프니츠도 그의 예정조화설(豫定調和說)에서 세상의 질서는 이미 신에 의해서 전체의 조화가 정해져 있는 것이므로 개인의 노력으로 생긴 역사가 아니라고 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모든 이데올로기의 주체로서 구체적인 개인을 구성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들로 변형시킨 것이다. '주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언어와 대중매체는 주체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데올로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고 행위를 하는 방식을 사회현실과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내면화함으로써 사회의 지배가치나 행위 양식에 무의식적으로 편입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을 보는 눈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이데올로기가 상정한 구조 속에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주관성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무의식적이란 것이며, 특정 개인들에 의해 체험되는 방식이 아니라고 한다. 이데올로기의 본질적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구조를 통해서 가능하고, 주체란 자율적이고 자기충족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 주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개인을 포섭할 때 쓰는 수법이 '이데올로기'에 의한 '주체 확립'이다. 이것은 집단을 대상으로 규정짓기 때문에 개인의 개별적인 주체란 있을 수 없다. 사회 구조주의의 정수(精髓)를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은 결국 '사유재산제도'를 허락하면서 시작되고, 개인 재산의 소유는 개인에게 힘을 부여하고, 이웃을 학대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이 사라지면, 재화의 '공동 소유'를 통해 모두에게 향유되고, 인간 사이의 '적의'와 '증오'는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즉, 아무도 타인을 자기의 적으로 볼 이유가 없고, 모든 사람이 필요한 노동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니 '지상 낙원'이라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들이고, 틀린 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인간은 심리학적으로 '공격 성향'을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즉, '소유물(사유재산)'이 '공격성'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공격성은 이미 소유물이 극히 부족했던 원시시대부터 무제한에 가깝게 세력을 떨쳤고, 유아는 이미 애정 관계에서 '공격 욕동'이 생겨서 다른 유아를 공격한다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즉, 남에게 지기 싫고, 재물을 더 갖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허물면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설령 이루어지더라도 그들의 장래가 밝은지는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가령, 이미 사회주의를 경험한 구소련이나 북한의 사례를 보더라도 독재자가 나타나서 인민들을 착취하고,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실제로 굶어 죽는 상태로 만들었으니, 이걸 과연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는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되묻고 있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사유재산 공격성 공격성 유발 이데올로기적 국가 역사 발전

2026.01.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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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콘텐트 노출 많아져…아동 공격성 증가 문제 대책 시급

 미디어 콘텐트의 폭력성과 아동의 공격성 간의 상관 연구는 심리학계에서 꽤 오래된 연구 주제다. 연구에 따르면, TV나 영화로 접하는 폭력물을 비롯해 과격한 콘텐트로 구성된 컴퓨터,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의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치며 이를 반증하는 연구는 아직 없다.   미국의 경우,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개인의 총기 소지 권리 제한을 촉구하는 강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책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증가하는 총기 사고와 그 결과로서 다수의 무고한 생명의 희생은 이미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된 듯하다. 더 큰 우려는 폭력형 범죄의 증가와 맞물려 아이들의 공격적 성향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에 있으며, 이는 어느 특정 국가에 국한된다기보다 많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최근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넷플릭스라는 대형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국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필자도 해당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었다. 드라마의 타이틀이 주는 느낌과는 상반되게,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소재의 드라마였다.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준의 잔인한 장면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처음 한두 편을 볼 때 느꼈던 충격과 공포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게 아닌가. 드라마 초반부에 그토록 잔인하게 느꼈던 장면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덜 잔인하게 다가왔다. 내 감각(sensation)과 지각(perception)이 무뎌지는 경험이었다. 이를 적용하면, 대중매체의 폭력성이 아이들의 공격성을 어떻게 증가시키는지 이해하기 쉽다.   인간의 감각과 지각 능력은 장시간에 걸쳐 동일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습관화(habituation) 및 둔감화(desensitization)를 경험한다.   즉, 같은 내용과 강도의 폭력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덜 매력적이다. 따라서, 동일한 수준이거나 더 큰 재미와 흥분을 경험하려면, 폭력성과 자극성의 강도가 증가해야 하는데, 이는 더욱 폭력적인 콘텐트를 찾게 하는 이유다. 아직 인지적·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은 폭력물이 수반하는 유해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인식한다 할지라도, 그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다. 제작자들이 어른들의 재미와 볼거리, 그리고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아내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콘텐트가 아이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보았을까. 물론 ‘18세 미만 시청 불가’라는 연령 제한을 두었다 한다. 문제는 이것의 실효성이다. 아이들이 보기로 작정하면,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전자 기기를 통해 충분히 볼 수 있는 통로가 많은 곳에 뚫려 있지 않은가.   참 어려운 문제다. 대중성과 상업성을 추구하는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에게 아이들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라고 하면,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거나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폭력성이 농후한 대중문화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며 자라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더 큰 사회 문제를 야기하면, 그때 가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해당 드라마의 폭력성에 대해 경고하고, 아이들의 시청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 중이라 한다. 우리도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문의:[email protected]   김현경 / 호튼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콘텐트 공격성 콘텐트 노출 폭력성과 자극성 아동 공격성

2022.01.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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