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종종 사랑보다 침묵을 상속한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 유예된 책임, 전달되지 못한 애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의 구조가 된다. '센티멘탈 밸류'는 바로 그 침묵이 어떻게 예술의 언어로 변환되고, 다시 가족 관계를 잠식하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영화다. 노르웨이 출신의 요아킴 트리에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가족 내 아버지와 딸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드러내고 화해를 제시하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이해받지 못한 사랑이 남긴 감정의 잔여물, 제목이 암시하는 바로 그 '감정적 가치(Sentimental Value)'를 조심스럽게 해부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재회가 있다. 그러나 이 재회는 회복을 전제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다시 모인 아버지와 두 딸은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전혀 다른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오래전 가족이 살던 저택은 이 어긋남을 시각화하는 장소다. 아버지에게 이 집은 예술가로서의 출발점이자 한때의 명성과 실패를 소환하는 장소인 반면, 딸들에게 이 공간은 부재와 회피, 설명되지 않은 상처가 겹겹이 쌓인 기억의 저장소다. 같은 공간을 두고도 서로 다른 감정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 가족이 공유해온 시간이 결코 동일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트리에는 이 불일치를 설명하거나 중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신뢰하는 것은 해명이나 진술이 아니라, 그 어긋남이 지속되는 상태 그 자체다. 주인공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가드)는 한때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영화감독이다. 그의 부재는 의도적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딸들의 성장기에 깊은 공백을 남겼다. 두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와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터 릴레아스)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공백을 견뎌왔다. 노라는 분노와 거부로, 아그네스는 중재와 유보로 그 시간을 통과했다. 이들의 차이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상처를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관점에 있다. 구스타브가 제안하는 자전적 영화는 이 가족의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시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과거를 다시 호출하고 소유하려는 또 하나의 행위다. 그는 딸 노라에게 주연을 맡아달라고 요청하지만, 노라는 이 제안을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요구로 받아들인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가족의 고통을 재현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고통은 언제 예술이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시 상처받아도 되는가. 트리에 감독은 대물림된 트라우마를 극적인 폭발이나 갈등의 분출로 처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고성이 거의 없다. 대신 어긋난 질문과 엇갈린 대답, 말해졌으나 도달하지 못한 문장들이 반복된다. 인물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하거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받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예술은 치유이자 폭력이다. 트리에는 이 모순을 끝내 해결하지 않는다. 연출은 철저히 절제돼 있다. 트리에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음악이나 편집을 동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장면일수록 음악은 사라지고, 카메라는 고정된다. 인물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연출은 한 발 물러선다. 그 결과 관객은 감정을 ‘전달받는’ 대신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가 조용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소모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엔딩 크레딧 이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결을 끝까지 존중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정서적 밀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특히 구스타브를 연기한 스카스가드의 연기는 죄책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그 부인의 실패를 미세한 균열로 표현한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방어하지만, 그 방어는 완벽하지 않다. 이성적인 언어 사이로 감정이 새어 나오는 순간들이 축적되며 인물은 선과 악으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딸들의 연기 역시 전통적인 성장 서사를 거부한다. 노라는 피해를 입은 인물이 반드시 용서나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대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끝까지 유지한다. 아그네스 또한 명확한 치유자나 중재자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들은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의 과정에 머무는 인물들이다. '센티멘탈 밸류’는 3월 열리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최다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작품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연기상 부문에서는 수상 가능성이 높다. 구스타브 역은 오스카 연기상에 최적화된 캐릭터다. 죄책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물, 말은 이성적이지만 감정은 계속 새는 상태, 선과 악이 명확하지 않은 회색 인물 구스타브를 연기한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절제 연기의 표본을 보여준다. 딸 노라 역 역시 오스카가 선호하는 캐릭터다. 피해를 입은 인물이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 전통적으로 화해의 과정을 거쳐 성장하고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구조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최근의 연기상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레나테 레인스베의 수상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센티멘탈 밸류’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혼자 튀는 명연기가 없다. 누구 하나 감정을 과시하지 않고, 서로의 리듬을 침범하지 않으며, 침묵을 함께 유지한다. 영화 전체의 톤을 완성시키는 연기, 연기를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연기, 화려하지 않지만 아카데미가 가장 신뢰하는 연기 유형이다. 영화는 곳곳에 코믹한 순간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유머는 비극을 상쇄하지도, 희망을 선언하지도 않는다. 어떤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종료되지도 않는다. 남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 그럼에도 계속되는 시간이다. 영화는 그 과정이 남긴 감정의 흔적에 집중한다. 예술영화의 사유적 밀도와 멜로드라마의 감정적 울림을 결합하되,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센티멘탈 밸류’가 던지는 질문은 사랑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가에 대한 것이다. 침묵이 남긴 유산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는, 이제 각자의 몫이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잠식 관계 가족 관계 연기상 부문 오스카 연기상
2026.02.11. 21:04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자신의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근무하던 여직원 버지니아 주프레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이미 20년 전에 관계를 끊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에어포스 원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엡스타인과 수십 년간 지속된 관계를 끊은 이유와 방법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으며 2019년 구금 중 사망했다. 당국에서는 그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결론냈다. 주프레는 엡스타인 성범죄를 폭로했던 피해자 중의 한명이다. 2016년 주프레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10대 청소년 시절인 2000년 트럼프 소유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여름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했었다. 당시 스파 탈의실에서 근무했는데 엡스타인 측근 기슬레인 맥스웰이 그에게 접근해와 돈과 여행경비 등으로 유혹해 성착취 범죄 희생양이 됐다. 맥스웰은 주프레에게 마사지를 하면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다고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엡스타인 일당은 주프레를 성폭행했다. 가해자 중에는 앤드루 영국 왕자 등도 포함돼 있었다. 맥스웰은 미성년자 성매매 조직 운영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주프레는 지난 4월 호주의 자택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아버지는 타살을 주장하는 등 아직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주프레가 우리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악관이 이달초 엡스타인 관련 문건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양 진영 지지자들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공개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해명도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엡스타인 관계 엡스타인 성범죄 엡스타인 측근 엡스타인 일당
2025.07.30. 10:43
‘요새’는 ‘요사이’의 준말이다. 이제까지의 매우 짧은 동안이란 의미다. ‘그새’란 말도 있다. ‘그사이’가 줄어든 것으로, 조금 멀어진 어느 때부터 다른 어느 때까지의 매우 짧은 동안을 이른다. 밤이 지나는 동안을 일컫는 ‘밤새’도 마찬가지다. ‘밤사이’가 줄어들었다. 이들 단어의 ‘새’는 모두 ‘사이’를 줄여 쓴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지금 바로’를 이르는 말로 ‘금새’가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곧을 뜻하는 ‘금(今)’과 사이가 줄어든 말인 ‘새’가 결합한 구조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금새 광고 효과가 나타났다” “입소문이 금새 퍼졌다”와 같이 흔히 사용한다.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말 ‘새’에 이끌려 ‘금새’로 쓰기 쉽지만 모두 ‘금세’로 바루어야 한다. 의미상으로도 ‘바로 지금의 사이’가 돼 말이 안 된다. ‘금새’는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물건의 값 또는 물건 값의 비싸고 싼 정도를 나타낸다. “금새만 잘 쳐 주면 당장 이곳에 넘기겠습니다”처럼 쓰인다. 시간과 관계있는 말은 ‘금세’다. 바로 지금이라는 뜻의 한자어 ‘금시(今時)’에 조사 ‘에’가 붙은 ‘금시에’가 줄어든 말이다. “금세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금세 피로해졌다”와 같이 쓰인다. 무엇이 줄어든 말인지를 알면 헷갈릴 이유가 없다.우리말 바루기 관계 금새 광고 이들 단어
2024.08.28. 19:34
한류가 뜨고 있다. 처음에 K Pop, K Drama, K Food, K Beauty, 한글, 한국문학, 이제 냉동 김밥, 냉동 잡채, 냉동 떡볶이, 그다음은? 무척 궁금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다. 우리 같이 1970년대에 이민 온 일 세대는 각자 분야에서 많은 고생과 설움을 참아낸 결과 오늘을 맞게 되었다. 그동안 미국 사회에 적응하고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앞만 보고 질주했던 우리 2세 3세들이 우리 조국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놀랐다. 그동안 그들이 표현은 못 했지만, 그들 또한 자라면서 그들의 정체성 확립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들이 잘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 일세들의 어깨가 우쭐한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2세 3세들이 그들 정체성의 뿌리인 모국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아이들이 7살, 9살쯤 되었을까. 동계올림픽 경기를 함께 보고 있었다. 아이스 스케이팅 종목에서 미국과 한국이 최종결승전을 겨루게 되었다. 한창 경기가 무르익어 가던 중에 환호성의 타이밍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한 내가 “얘들아, 너희는 누구를 응원하니?” 하고 물으니 어리둥절해 하던 표정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당연히 미국이지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이었다. 이제는 오히려 딸아이한테 한국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딸아이는 인권변호사이다. 2019년에 출판된 ‘H 마트에서 울다’를 딸아이가 먼저 읽고 나는 2023년도에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물으니 ‘깊이가 없다’였다. 어쩜 나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 ‘깊이’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한국인의 DNA를 찾던 중에 김주혜 작가의 ‘Beasts of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로 번역된 책을 읽었다. 이 책 내용은 한국이라는 작은 땅의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써 내려 간 장편의 역사 대하소설이다.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듣고 자라면서 한국의 역사를 배웠고 역사 속의 전쟁, 기아, 자연 파괴를 겪은 야수들이 어떻게 그 거친 삶을 견뎌왔는가, 책 제목에 걸맞게 작은 땅의 야수들인 우리 선조들은 그 힘든 시대(1917~1964)를 우정, 사랑, 정의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고전분투하며 독립 국가로서 주권을 찾았다. 나는 우리 선조들을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고 부르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만이 가진 특징, 왜 한국이 이렇게 우수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H 마트에서 울다’에서는 한국 음식의 마력을, ‘파친고’에서는 4대에 걸친 한 가족사의 거친 삶과 여정을 그리고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는 한민족의 역사 중 가장 격동의 시기였던 1917에서 1964년까지를 얼마나 힘들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한 역사 소설이다. 지구본에서 보는 한국은 너무나도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우수성은 지금 한 겹씩 서서히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난 앞으로 우리 2세 3세 중에 오늘날 한국을 빛내는 이들의 DNA를 분석하여 왜 한국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지를 해명하는 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의 장점은 높은 IQ, 근면, 성실, 섬세함과 우아함, 은근과 끈기, 인내심과 인정이 많고 손재주가 뛰어나다. IMF 이후 최 단시간에 최대의 경제부국을 이룬 국가, IT 최강대국을 이룬 무제한 두뇌 자원이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얼마 전 UAE에서 사르자 국제 도서전이 열렸다. 여기 참가한 한국관의 주제는 ‘Unlimited imagination’ ‘Impossible is possible’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회적 변화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한국의 국위 선양은 모든 한국인에 달려있다. 조국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해준 만큼 우리 또한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함께 고민해 보자.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화학반응 관계 우리 한국인 오늘날 한국 한국 음식
2024.03.08. 17:37
그룹 사이즈가 12명 이상으로 커지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의 진행이 힘들어진다. ‘대화’는 그룹 멤버들 사이에 오가는 말, 또는 그룹 리더가 그룹에게 하는 말로 이루어진다. 16명이 극장식 좌석배열로 앉아있다. 깊이 있는 대화의 장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몇몇 적극적인 성격의 환자가 강의를 도와줄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인간관계’라는 제목으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노려왔다. 걸핏하면 주먹다짐할 뿐더러 서로 깊게 미워하는 관계에 쉽게 빠지는 불안하고 다정다감한 여러 환자가 내게 동기의식을 부추긴 점도 있다. ‘관계, relationship’의 예를 들어 봐라. 성미 괄괄한 한 환자가 숨 가쁘게 대답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같이하고 섹스를 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아, 누구나 쉽게 알아듣는 남녀관계 말고 다른 인간관계는 없는지. 아무도 가족관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상하다. 친구 관계는 어떠냐.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당황스럽다. 병동 안에서 같이 지내는데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없느냐, 하고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은 자기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를테면 “I hate myself! 나는 나를 미워한다!”고 말했거나 생각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손들어 봐라. 대여섯이 대뜸 손을 든다. 나를 미워하는 내가 있고, 내게서 미움을 받는 내가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렇다. 내가 하나인 것 같지만 나는 둘이다. 나를 점검하는 내가 있고, 점검을 받는 내가 있다. 자아심리학, ‘Ego Psychology’에서 ‘자기관찰, self-observation’이라 일컫는 컨셉이다. 사람이 붐비는 식당 안에 붙은 표지, ‘물은 셀프입니다’에서처럼 말이 이상하지만, 자기관찰도 셀프다. 힘겨워도 혼자 하라는 뜻이다. ‘self-observation’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같은 뜻으로 성찰(省察)이라는 말이 있다. ‘반성(反省),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 할 때의 살필 省, 그리고 경찰(警察)의 ‘살필 察’! 이 처치 곤란한 한자어는 뼈아픈 반성을 한 후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서 소정의 벌을 받는 정경을 연상시킨다. ‘I love myself!’라고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는 환자는 손을 들어보아라. 누군가 “That’s narcissism! 그건 나르시시즘입니다!” 하며 세차게 소리친다. “I am patting myself on the back, 내 등을 스스로 쓰다듬어줍니다.” 하는 마음도 나르시시즘이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에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겠다는 게 뭐가 나쁜가. 자신을 증오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이 험난한 시대에 내가 나를 격려하지 않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이웃을 사랑하라, 살생하지 말아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따위는 하나같이 ‘남들’과의 관계를 위한 교훈이다. 나와 나 자신의 관계는 대관절 어쩌라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도중에 ‘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금언이 떠오른다. 영국의 한 정치가가 1698년에 처음 발언했다는 기록이 있는 이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 격언이었다 한다. 그리고 1757년,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 투실투실한 얼굴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새삼스레 세상에 다시 전파한 이 명언이 왜 이리 뇌리에 사무치는 것인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관계 관계 relationship 친구 관계 그룹 사이즈
2023.07.25. 17:43
워싱턴가정상담소(이사장 오제노)가 2023 봄 특별세미나로 진행되는 ‘이관직 박사와 함께하는 관계의 걸림돌 극복하기’ 두번째 강의가 오는 20일(목) 개최한다. 지난달 1강 주제 ‘왜 나는 관계가 힘들까?’에 이어 이달 개최하는 2강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경계성, 성격장애 이해와 치유방안 - 분노와 공격성’을 주제로 다룬다. 세미나는 대인관계에서 반복되는 여러 성격장애의 원인과 특징들을 살펴보고 관계 유지와 회복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다. 이 박사는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으로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여러 원인들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의: 703-7671-2225 장소: 워싱턴가정상담소 3층 컨퍼런스 룸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걸림돌 관계 관계 유지 자기애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2023.04.05. 14:52
요즘 세대는 길면 부담스러워한다. 그만큼 소비자의 눈길을 빼앗을 시간이 짧아졌다. 요새 다른 영상으로 넘어갈 때 나오는 6초 광고가 대세인 이유다. ‘요새’는 ‘요사이’의 준말이다. 이제까지의 매우 짧은 동안이란 의미다. ‘그새’란 말도 있다. ‘그사이’가 줄어든 것으로, 조금 멀어진 어느 때부터 다른 어느 때까지의 매우 짧은 동안을 이른다. 밤이 지나는 동안을 일컫는 ‘밤새’도 마찬가지다. ‘밤사이’가 줄어들었다. 이들 단어의 ‘새’는 모두 ‘사이’를 줄여 쓴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지금 바로’를 이르는 말로 ‘금새’가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바로, 곧을 뜻하는 ‘금(今)’과 사이가 줄어든 말인 ‘새’가 결합한 구조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금새 광고 효과가 나타났다” “입소문이 금새 퍼졌다”와 같이 흔히 사용한다.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말 ‘새’에 이끌려 ‘금새’로 쓰기 쉽지만 모두 ‘금세’로 바루어야 한다. 의미상으로도 ‘바로 지금의 사이’가 돼 말이 안 된다. ‘금새’는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물건의 값 또는 물건 값의 비싸고 싼 정도를 나타낸다. “금새만 잘 쳐 주면 당장 이곳에 넘기겠습니다”처럼 쓰인다. 시간과 관계있는 말은 ‘금세’다. 우리말 바루기 관계 금새 광고 이들 단어
2023.03.28. 18:37
“한인 여성 최초로 이런 영예를 안게 돼 정말 놀랐고, 또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3일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먼털 솔로(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을 수상한 한인 2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46)는 수상자로 호명됐을 때를 떠올리며 “이런 영예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무대로) 달려갔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이 이번 앨범(수상작)에 있는 모든 작곡가를 전면에 등장시킬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흥분된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작품은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 음반이다. 신종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진행한 동명의 온라인 공연 시리즈에 바탕을 둔 앨범이다. 제니퍼 고는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20명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짧은 바이올린 독주곡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해 4월부터는 자신의 집에서 작곡가들의 신곡을 연주해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8월에는 이렇게 모인 40곡으로 정식 앨범을 선보였다. 그는 “코로나19는 모든 공연을 중단시켰고, 예술가들을 재정적으로 어렵게 했다. ‘얼론 투게더’는 이 유행병에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의 음악가들을 돕는 일”이라면서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 음악 단체 ‘아르코 컬래버러티브(ARCO Collaborative)’를 통해 작곡가들을 후원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의 음악가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제니퍼 고는 11세 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두각을 드러냈고,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에 올랐다. 1995년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 유망주에게 주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았다. 오벌린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2018년부터 뉴욕 매네스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의 의미를 묻자 그는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왔다. 이는 제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유일한 방법이 음악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표현하려는 것에 반응한다는 뜻이다. ‘얼론 투게더’와 같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은 세상을 관찰하고 귀를 기울여 반응한 것”이라고 했다. 제니퍼 고는 그래미상 수상 후 첫 라이브 공연을 오는 12일과 14일 갖는다. 12일엔 UC샌타바버러에 있는 아츠&렉처스(Art‘s&Lectures)에서, 14일은 UCLA에 있는 아트 퍼포먼스 센터(Center for the Art of Performance)에서 열린다. 제너퍼 고는 “청중들 속에서 많은 한인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는 다음 작업으로 6·25 전쟁 때 월남한 후 미국에 이민해 교수가 된 어머니와 미국 내 소수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음악극을 준비 중이다.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는 그는 “어머니를 기리는 작품을 만들게 돼 너무 기쁘다.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이 경험한 것이 작품에 담길 예정이다. 클래식 음악계 소수자의 경험을 탐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음악 관계 클래식 음악계 커티스 음악원 음악 유망주
2022.04.08.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