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방부는 최근 군 장병들의 급여를 최대 20%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식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데이비드 맥귄티 국방부 장관실은 “이번 투자는 전체 CAF(캐나다군) 보상 체계 기준으로 약 20% 증액에 해당한다”며, “스트레스 직군에 대한 보너스, 초급 군인에 대한 초봉 인상, 전반적인 급여 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군인 급여 체계가 직군, 계급, 파견 여부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실제로 모든 장병이 20% 인상을 받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캐나다 국제문제연구소의 샬롯 뒤발-랑투안은 “전면적인 급여 인상이라기보다는 ‘특수수당’ 혹은 보상 패키지 조정 가능성이 크다”며, “명확한 계획 없이 발표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직 국방부 옴부즈맨 게리 월본 역시 “급여 인상에 관한 국방부의 발표 내용이 모호하며, 급여 인상이 수당이나 주기적 혜택 형태일 수도 있어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월본은 “군 내부 기대치와 발표 간 괴리가 크면, 또다시 허탈감만 커질 수 있다”며, “급여 외에도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간 물가 차이를 반영한 기본급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캐나다군은 기술직, 물류, 의료진, 항공 조종사 등 일부 특수 직군에서 인력 부족을 겪고 있으며, 민간 대비 급여 경쟁력도 낮은 편이다. 앤드루 레슬리 전 중장은 “지난 10년간 정부는 군을 홀대해왔다”며, “이번 인상안은 늦었지만 반가운 조치”라고 평했다. 또, “이번엔 모든 군인이 실질적으로 20% 인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엘 리바르 피셰 국방협회(CDA) 대표 또한 “군의 구인•유지 문제 해결을 위해 급여 인상은 필요조건”이라며, “다만 주거 환경 개선, 장비 확충, 훈련 예산 확보 등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부 기지에서는 음용수 부족, 곰팡이, 60년 이상 된 노후 주택 문제까지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장병 복지와 사기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마크 카니 총리는 최근 총선에서 군 재건 및 보수 강화를 공약했고, 2025 회계연도 국방 예산에 90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나토 방위비 지출 기준 충족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국방부는 1만3천여 명에 달하는 병력 부족 해소를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급여 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행안과 시기는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다. 임영택 기자 [email protected]캐나다 군인 급여 인상 캐나다 국방부 캐나다 국제문제연구소
2025.06.27. 6:58
롱비치에서 자기 집 마당 정원 가꾸기 작업을 하던 퇴역 군인이 갱단이 쏜 빗나간 총탄에 맞아 숨졌다. 롱비치 경찰서에 따르면 51세의 마리오 모랄레스-모레노는 지난 4일 오후 6시 45분쯤 이스트 61번가 600블록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또 다른 남성은 하체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웃들은 모레노가 총에 맞았을 때 자기 집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 모레노가 총격의 표적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총격 사건이 갱단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롱비치 경찰은 지난 10일 갱단 관련 총격 사건 관련된 남성 4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롱비치, 벨플라워, 인디오 시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며, 용의자 체포 과정에서 총기들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용의자 4명은 10일 총기 혐의와 함께 살인 및 음모 혐의로 각각 1건, 살인 미수 혐의로 4건씩 기소되었다. 롱비치 법원은 이들을 보석금 없이 구금시키고, 4월25일에 인정심리를 열기로 결정했다. "갱단 관련 폭력은 우리 도시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으며, 이 냉혹한 범죄 행위는 모레노 씨 가족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라고 LBPD의 월리 헤비시 서장은 말했습니다. 모레노의 친구이자 이웃인 크리스티 와이펠스는 가족을 대신해 모레노를 "항상 다른 사람을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노스 롱비치 지역의 터줏대감"이라고 소개하며 고펀드미(GoFundMe) 페이지를 개설했다. 모레노의 아내와 아들, 딸이 유가족이다. 10일 현재 15,000달러 이상이 모금되었다. 제보: 전화 562-570-7244 익명 제보: 전화 800-222-TIPS 또는 웹사이트 www.LACrimeStoppers.org 박준한 기자 [[email protected]]퇴역 군인 퇴역 군인 롱비치 경찰서 롱비치 벨플라워
2024.04.11. 14:28
지난주 한국 언론에 한 여성이 휴가 나온 군인을 감동시킨 사연이 소개됐다. 휴가를 나온 병사가 점심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모르는 여성이 이 군인의 밥값을 먼저 지불했다는 내용이었다. 식당 주인의 말을 들은 병사가 곧바로 쫓아나가 감사 인사를 했더니 그 여성은 웃으면서 “군인이셔서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병사는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행을 받으니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제게 평생 기억에 남을 선물을 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단다. “남은 기간 군인다움을 유지하고 전역 이후엔 예비군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는 다짐도 했다. 필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필자가 속한 ‘6·25참전유공자회’는 매년 6월이 되면 LA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 40사단과 함께 6·25기념식을 한다. 한 번은 우리 일행이 부대로 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 근처 커피점에 들렸다. 제복을 입은 우리 일행이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옆자리에 있던 여성이 우리를 보더니 “어떤 분들이냐”고 물었다. 그 여성은 자녀 두 명과 함께 온 엄마였다. 우리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라고 했더니 그 여성은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군 복무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우리가 마실 커피를 사 들고 다시 왔다. 그러면서 본인의 시아버지도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며 자기는 시아버지를 뵌 적은 없지만 그의 훌륭한 군 복무를 기억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미 육군 40사단은 6·25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됐던 부대다. 그리고 경기도 ‘가평전투’에서 중공군과 맞서 싸워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휴전 후에는 부대 장병들이 기금을 모아 가평고등학교를 설립하고 그 후에도 계속 지원을 했다. 40사단은 지금도 가평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보내는 등 ‘한국사랑’이 특별한 부대다. 오래전 필자가 현역복무 당시 미국 군사학교에 1년간 유학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주말 동료 한 명과 함께 군복을 착용한 채 카메라를 메고 뉴저지에서 뉴욕 시내로 관광을 나갔다. 그러다 밤 9시쯤 출발하는 막차를 타려고 줄 끝에 서서 기다렸지만 바로 우리 앞에서 정원이 다 차버렸다. 직원은 환불을 해 주며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고 했다. 황당하기 그지없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다른 직원이 다가오더니 “ 당신들 군인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렇다고 했더니 “곧 버스 한 대가 나오니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두 명이 버스 한 대를 대절해 가는 셈이 되었다. 그때 군복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6·25전쟁 후 대한민국이 일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다수 군인이 국가에 대한 ‘충성’, 즉 위국헌신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3년 휴전 이후에도 북한의 많은 도발로 우리 군의 희생은 끊이지 않았다. 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 때 12명이 전사했고 2002년 연평해전 때는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46명이 전사한 2010년 천안함 폭침,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다친 연평도 포격 도발, 장교와 부사관 2명이 다리를 잃은 2015년 DMZ 목함 지뢰 도발 등이 이어졌다. 이들의 희생 없이 우리의 일상은 존재할 수 없었다.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할 때 군복 입은 청년들의 모습이 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군인은 우리 가족, 친구, 이웃이고 이들의 희생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것은 진실이다. 국민의 작은 감사 표시로도 군인들의 사기는 충천한다. 국가가 군인을 기억하고 그들의 헌신에 감사하는 국민이 있는 한 안보에 이상은 없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군인 기간 군인답 한국전쟁 참전용사 대다수 군인
2024.01.23. 20:10
군인을 존중하고 예우해야 강국이 된다 / 나는 해병대에서 5년을 보냈다.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국가전략기동부대다. 해병대는 다른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소수정예를 의미하는 ‘작지만 강한 해병대’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해병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팔각모로 상징된다. 붉은 명찰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약동하는 젊음을 의미하며, 글자색인 황색은 땀과 인내를 의미한다. 소위로 임관되어 처음 배속 받은 곳은 포항 제 1상륙사단 11연대였다. 병과가 포병이었기 때문에 가끔 야외로 포사격훈련을 나갔다. 일선부대 근무를 하면서 나는 선배들로부터 6.25전쟁 때 해병대가 피땀 흘려 쌓아올린 ‘상승해병’신화를 들었다. 그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도솔산 전투다. 한국전쟁 중 도솔산 전투는 원래 미 해병대가 맡았던 전투였다. 도솔산은 강원 양구의 중동부전선에 위치한1148고지로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곳이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도솔산 점령 임무가 갑작스럽게 한국 해병대로 바뀌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 해병대가 도저히 이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며 발을 뺐기 때문이었다. 미 해병대가 도솔산 전투를 포기한 이유는 도솔산이 워낙 험준할 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어하던 북한군이 좁고 가파른 암석지대에 지뢰를 묻고 수류탄과 중화기를 배치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요새화함으로써 이를 공략해야 했던 미 해병대는 처음부터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 해병대가 그런 인명 손실을 내고도 도솔산 전투를 도저히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도솔산 점령 임무는 미 해병대에서 한국 해병대로 바뀌었다. 한국 해병대는 미 해병대와 교대해 도솔산을 점령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누구 할 것 없이 어안이 벙벙했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 해병대가 포기한 도솔산 점령을 화력과 장비가 미군에 비해 월등히 부족한 한국 해병대가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한국 해병대는 결의를 다지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김대식 연대장은 “미 해병대가 못한 일을 기필코 해냄으로써 한국 해병의 기개를 보여주자!”며 움츠려있던 부하 장병들을 다독였다. 1951년 6월 4일 해병대는 공격작전을 개시했다. 해병대는 험준하기로 이름난 도솔산의 가파른 능선 자락을 기어오르며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혈전을 치렀다. 인명 손실이 많은 주간공격이 막히자, 야음을 이용한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특공대원들은 대검 한 자루와 수류탄 두 발을 들고 낮은 포복으로 전진해 목표를 하나씩 공략해 나갔다. 이때 소대장들이 앞장서 지휘했다. 그렇게 견고하기만 하던 북한군의 방어진지도 해병들의 목숨을 건 투혼에 하나둘씩 무너졌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대대장·중대장·소대장들도 총상을 입고 여기저기서 쓰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후송을 거부한 채, 이를 악물고 부대를 지휘했다. 해병대는 도솔산에서 모두 그렇게 싸웠다. 해병대의 도솔산 전투의 승리에 군 수뇌부는 물론이고, 이승만 대통령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과 신현준 해병대사령관이 맨 먼저 달려와 승전 축하와 함께 부대표창을 했다. 도솔산 점령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영웅’들을 격려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부대 표창을 하고 ‘무적해병’이란 친필 휘호를 내린다. 또 이 대통령은 그날 생일을 맞은 공정식 대대장에게 깜짝 이벤트도 마련했다. 헬기로 생일 케이크를 공수해 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된 케이크를 공정식 대대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군대의 존재목적은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군대는 여름철 난로와 같다. 당장 쓸모가 없다고 해서 내팽개쳐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다. 미국인들의 제대군인(Veteran)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예우는 남다르다. 군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두 배도 더 비싼 비행기 좌석을 양보받기도 하며, 군인들에게는 항공사의 우대고객인 1등석 승객조차 밀리는 것이 미국에서 군인들의 위상이다. 수년 전 미국의 한 6·25전쟁 참전용사 장례식에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 화제가 되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서 90세에 별세한 참전용사 헤즈키아 퍼킨스 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런데 건강상 문제로 유족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묘지 측은 장례식 하루 전날 SNS에 특별한 안내문을 올렸다. “젊은 시절 한국을 위해 싸운 미국 군인의 상주 역할을 가족을 대신해 지역주민이 해주길 요청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놀랍게도 장례식날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시민과 함께 여러 전쟁에 참여했던 제대군인들이 제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일부는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장례식에선 군악대의 연주와 오토바이를 선두로 한 추모 차량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퍼킨스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을 일상의 삶 속에서 우대하는 정서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이 공공장소를 찾거나 비행기에 탑승하면 방송으로 알리고 주변 사람들은 기립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 대통령과 장군을 비롯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들에게 먼저 경례를 하며 존경의 뜻을 표한다. 2009년 10월29일 새벽 4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중 전사한 18명의 유해가 비행기에 실려 공군기지로 돌아올 때 새벽 시간임에도 운구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미국이 세계 1위 군사 강국을 장기간 유지하는 비결은 세계 최고 국방비 등 첨단 군사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훈제도와 국민들 사이에 깊이 뿌리를 내린 보훈문화가 미국을 장기간 유일 초강대국으로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군 초급장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학군사관후보생과 사관학교의 중도퇴교자가 늘고 선발경쟁률은 갈수록 내림세다. 이유는 박봉과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이란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더는 ‘애국 페이’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군의 초급장교는 국가안보의 중추다. 국방의 중추가 흔들리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수많은 군인들과 군 복무에 자신의 인생의 일부를 바친 모든 이들이 미국의 군인들처럼 존경과 감사를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날이 대한민국에도 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꽃같은 청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국민의 의무라는 이유로 오롯이 감당한 군인들은 국가와 국민의 감사와 존중을 누림이 마땅하다. 군인을 존중하고 예우할 줄 모르는 나라가 강국이 될 수는 없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김지민 기자군인 존중 한국 해병대 신현준 해병대사령관 도솔산 전투
2023.05.25. 8:04
아태계 문화유산의 달 5월을 맞아 국방부가 공군 예비군으로 근무 중인 한인 부사관의 이력을 자세히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11살 때 미국에 이민 와 공군 현역으로 근무하고 다시 군목과 리크루터로 예비군에 합류한 스티브 곽(사진) 부사관. 현재 AMW(Air Mobility Wing) 349부대 소속인 곽 부사관은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1990년 수송업무를 맡아 공군에 입대했다. 그는 “한국 오산 공군기지에 근무하며 한국의 조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며 “나에게 큰 자양분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제대 후 보훈청에서 수년 동안 동료 전역 군인들을 돕다가 워싱턴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마치지 못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군대 근무 중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던 장병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나서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많은 군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정신병 치유 테크니션으로 알 두다이드 공군기지에 군목으로 파견돼 영적인 지원을 할 수 있어서 보람찼죠.” 곽 부사관은 현재 349부대에 병력을 선발하는 리크루터로 일하고 있다. 트레비스 공군기지 인근의 올라노, 나파, 마린, 소노마 카운티에서 풀타임 리크루팅을 담당하고 있다. 공군 측은 곽 부사관이야말로 훌륭한 아시안 아메리칸의 표본이라고 칭찬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아시안 군인 아시안 군인 아시안 아메리칸 전역 군인들
2023.05.04. 20:46
귀넷 카운티는 지난 11일 오전 로렌스빌에 있는 귀넷정의행정센터에서 2021 베테랑스 데이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귀넷 카운티에 거주하는 참전용사들과 귀넷 행정위원회 커미셔너들, 로날드 L. 존슨 장군 등이 참석했다. 미동남부베트남전쟁참전유공자회(회장 조영준)도 협회 설립 후 처음 참석했다. 커크랜드 카덴 제1지구 커미셔너, 재스퍼 왓킨스 제3지구 커미셔너, 말린 포스크 제4지구 커미셔너는 베테랑의 삶과 헌신을 기억하자고 밝혔다. 포스크 커미셔너는 "한인 참전용사들이 베테랑스 데이 기념 행사에 처음 참석해준 데 고마움을 전한다"면서 "참전용사들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안전을 위해 힘썼고 우리는 그들의 희생에 예를 표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고마움을 전하자"고 말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로날드 L. 존슨 장군(Major General)은 "이 위대한 국가(미국)를 건설하는 데 모든 군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베테랑스 데이는 모든 군인을 기억하는 날"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유는 결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고, 우리는 이 자유의 땅에서 계속해서 횃불을 들고 참전 용사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영준 회장은 행사를 마친 후 "협회 창립 후 귀넷 카운티 행사에 처음 참석한 뜻깊은 날"이라며 "앞으로도 매년 참석해 함께 마음을 나눌 것"이라고 전했다. 배은나 기자군인 헌신 헌신 기억 제4지구 커미셔너 제1지구 커미셔너
2021.11.11.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