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글자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문자의 기원에 관하여 세종실록 25년 12월의 내용이나 정인지 서문, 최만리의 상소를 보면 옛 전자를 모방(模倣)하였다고 되어있어서 어찌 보면 결론은 간단해 보인다. (字倣古篆) 이 말대로라면 전자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의 해석을 두고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신하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모방한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글의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한 지나친 주장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하들이 당시에 전자를 알고 있고, 한글과 전자의 유사성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글과 전자가 비슷하지 않았다면 ‘자방고전’이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다. 다른 주장은 ‘방(倣)’을 닮았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두 글자가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하되, 모방한 것이 아니라 닮았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이 주장도 실은 한글의 독창성에 무게를 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방(倣)이라는 한자의 의미에는 다른 것을 본떴다는 의미도 있고, 닮았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방에는 ‘의거하다, 의지하다’ 등의 의미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자방고전의 의미를 ‘글자는 옛 전자를 참고하였다’ 정도로 보려고 한다. 전자와 글자 모양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드는 방식이나 운용하는 방식이 전자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여 단순화된 글자이지만,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을 상형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발음기관을 상형화하면서 글자의 모양은 옛 전자를 참고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최만리도 상소에서 한글이 옛글자를 참고한 것은 맞지만 그 운용이 전혀 다르기에 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이다. 사실 한글은 옛 전자만 참고한 것이 아니다. 세종은 수많은 언어와 문자를 보고, 공부하고, 연구한 후에 훈민정음을 창조한 것이다. 훈민정음에 대해 다양한 기원의 주장이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자면 훈민정음이 다양한 문자를 참고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의 창제가 독창적인 점도 분명하다. 니은이 기역을 반대 방향으로 쓴 것은 명백해 보이지만 혀뿌리가 입천장에 닿은 모습을 상형화한 기역과, 혀끝이 잇몸에 닿은 모습을 상형화한 니은의 창제 원리는 명확히 다르다. 입의 모양을 입 구(口)의 글자 모양으로 쓴 것은 참조로 보이나, 미음이 입술소리를 나타내는 것은 명백한 창의성이다. 이는 이의 모양을 시옷으로 쓰는 과정도 유사하다. 이 치(齒)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시옷이 치음을 나타내는 것은 창의적 발상이다. 모음의 경우도 기존의 문자 체계를 참고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분류를 천지인으로 설명하였다는 점은 놀라운 발상이며, 우리 음운체계에 관한 과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와 아는 하늘을 ‘땅의 위’와 ‘사람의 오른쪽’에 둠으로써 밝음을 나타내고, 우와 어는 하늘을 ‘땅의 아래’, ‘사람의 왼쪽’에 둠으로써 어두움을 나타내고 있다. 글자를 새로 만들 때, 기존의 문자를 참고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 기존의 문자와는 형태적으로 전혀 닮지 않은 문자를 만드는 것이 좋은가? 아니 가능하기는 한가? 기본적으로 한글의 기원을 논할 때는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훈민정음은 기존의 문자 체계에 관한 연구와 우리말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학문적 객관성과 창의성이 동시에 담겨있는 문자가 바로 한글인 셈이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글 기원 한글 창제 사실 한글 글자 모양
2025.07.27. 18:10
장마철이면 태풍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지난번 집중호우로 비닐하우스가 전부 절딴이 났는데…” “인삼밭이랑 고추밭이 완전히 절단이 나 버려서 막막하죠” “태풍으로 또 피해를 보면 올해 농사는 다 결단이 나는 거지” 등과 같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토로한다. 이들의 우려 속에 눈에 걸리는 표현이 있다. ‘절딴이 났는데’ ‘절단이 나’ ‘결단이 나는’은 잘못된 표현이다. 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 도무지 손쓸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은 ‘결딴’이다. ‘결딴이 났는데’ ‘결딴이 나’ ‘결딴이 나는’으로 고쳐야 한다. “경제가 결딴이 날 지경이다”처럼 살림이 망해 거덜 난 상태를 일컬을 때도 ‘결딴’이라고 해야 바르다. ‘절딴’은 사전에 없는 말이다. “회오리바람에 항아리가 죄다 쓰러져 절딴이 났다”와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글자 모양이 비슷해 헷갈릴 수 있으나 ‘결딴’으로 고쳐야 의미가 통한다. ‘결딴’을 ‘절단’으로 잘못 표현할 때도 왕왕 있다. ‘절단’은 자르거나 베어서 끊는 것을 뜻한다. ‘결단’ 역시 [결딴]으로 소리가 나서인지 엉뚱한 곳에 쓸 때가 있다. ‘결단’은 결정적인 판단을 하거나 단정을 내린다는 의미다. ‘절딴이 나다’ ‘절단이 나다’ ‘결단이 나다’는 모두 ‘결딴이 나다’로 표현해야 바르다. 무엇을 자르거나 끊을 때는 ‘절단’,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때는 ‘결단’, 망가지거나 거덜 나는 것을 이를 때는 ‘결딴’을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쓰임새 결딴 결딴 결단 글자 모양 올해 농사
2025.07.15. 18:35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철없이 함부로 덤비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룻강아지’는 며칠 된 강아지일까? 글자 모양으로 봐서는 태어난 지 하루가 된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루+강아지’ 형태에서 ‘하루’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면 ‘하룻강아지’가 되니 이러한 확신을 준다. 그러나 태어난 지 하루가 된 강아지라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룻강아지’는 날짜를 세는 ‘하루’와는 관계가 없다.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말이다. 즉 ‘하릅+강아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릅’은 짐승의 나이를 셀 때 사용하는 말로, 나이가 한 살 된 소·말·개 등을 이르는 낱말이다. 한 살 된 강아지가 ‘하릅강아지’고 이것이 변해 ‘하룻강아지’가 됐다. 그러니까 ‘하룻강아지’는 하루가 아니라 한 살짜리 강아지다. 하릅망아지·하릅송아지·하릅비둘기 등도 하릅강아지처럼 한 살짜리 동물을 일컫는 말이다. 짐승의 나이를 셀 때 사용하는 말로는 ‘하릅’ 외에 ‘두릅’ ‘사릅’ ‘나릅’ 등이 있다. 각각 두 살, 세 살, 네 살을 가리킨다. 정리하면 ‘하룻강아지’는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가 아니라 한 살짜리 강아지다. 우리말 바루기 하룻강아지 글자 모양 살짜리 동물
2024.02.27. 18:26
“이거 띵언이네요.” 지인의 SNS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앞뒤로 이어진 그들의 대화를 읽지 않은 상황이라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했다. 줄임말을 잘 쓰는 밀레니얼 세대의 신조어 특성에 맞춰 의미를 짐작해봤다. ‘띵’의 국어사전 풀이는 ‘울리듯 아프고 정신이 흐릿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띵언은 머리가 아프고 정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헛소리’가 아닐까. 상대가 한 말이 대꾸할 가치도 없이 들릴 때 ‘이거 띵언이네’라고 한다면 제격일 것 같다. 그런데 정반대다. 띵언은 ‘명언’이라는 의미의 인터넷 신조어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한글 서체를 키울수록 잘 이해되는 부분인데 ‘명’의 생김이 ‘띵’과 비슷하다고 해서 쓰이게 된 표현이다. ‘ㄸ’과 ‘ㅣ’의 조합을 ‘며’로 보는 것이다. 응용하면 명곡은 ‘띵곡’, 명작은 ‘띵작’이 된다. 글자의 생김을 이용한 비슷한 표현으로는 반려견을 부를 때 사용하는 ‘댕댕이(멍멍이)’가 있다. 또 ‘대박’ 대신 쓰는 ‘머박’이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밀레니얼 세대의 신조어와 은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아름답고 소중한 한글을 파괴한다는 이유다. 하물며 ‘띵’ 같은 신조어는 한글의 과학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글자 모양, 발음기관의 모양을 딴 자음과 세계의 근간인 천지인(天地人) 3재(才)를 본뜬 모음의 제자 원리를 건드렸다. 그런데 ‘띵’이나 ‘댕’은 의미가 나쁜 것도, 용례가 나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어감이 귀여워서 무겁고 딱딱한 대화를 친근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신조어 홍수 속에서 한글의 변형은 과연 어디까지 이해될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서정민 /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신조어 홍수 신조어 특성 글자 모양
2022.10.24. 18:10
“지난번 집중호우로 작물 재배가 절딴이 났는데…” “강풍으로 또 피해를 보면 올해 농사는 다 결단이 나는 거지” 등과 같은 표현이 있다. 여기서 ‘절딴’이나 ‘결단’은 잘못 쓴 표현이다. 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 도무지 손쓸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은 ‘결딴’이다. ‘결딴이 났는데’ ‘결딴이 나는’으로 고쳐야 한다. “경제가 결딴이 날 지경이다”처럼 살림이 망해 거덜 난 상태를 일컬을 때도 ‘결딴’이라고 해야 바르다. ‘절딴’은 사전에 없는 말이다. “회오리바람에 항아리가 죄다 쓰러져 절딴이 났다”와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글자 모양이 비슷해 헷갈릴 수 있으나 ‘결딴’으로 고쳐야 의미가 통한다. ‘절딴이 나다’ ‘절단이 나다’ ‘결단이 나다’는 모두 ‘결딴이 나다’로 표현해야 바르다. 무엇을 자르거나 끊을 때는 ‘절단’,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때는 ‘결단’, 망가지거나 거덜 나는 것을 이를 때는 ‘결딴’을 사용한다. ‘절단’ ‘결단’ ‘결딴’ 등은 뜻이 있는 바른 말이지만 ‘절딴’이라는 단어는 없다. 우리말 바루기 절단 결단 절단 결단 작물 재배 글자 모양
2022.01.24.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