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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한글의 기원

New York

2025.07.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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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 교수

조현용 교수

한글 창제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글자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문자의 기원에 관하여 세종실록 25년 12월의 내용이나 정인지 서문, 최만리의 상소를 보면 옛 전자를 모방(模倣)하였다고 되어있어서 어찌 보면 결론은 간단해 보인다. (字倣古篆) 이 말대로라면 전자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의 해석을 두고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신하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모방한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글의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한 지나친 주장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하들이 당시에 전자를 알고 있고, 한글과 전자의 유사성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글과 전자가 비슷하지 않았다면 ‘자방고전’이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다.
 
다른 주장은 ‘방(倣)’을 닮았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두 글자가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하되, 모방한 것이 아니라 닮았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이 주장도 실은 한글의 독창성에 무게를 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방(倣)이라는 한자의 의미에는 다른 것을 본떴다는 의미도 있고, 닮았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방에는 ‘의거하다, 의지하다’ 등의 의미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자방고전의 의미를 ‘글자는 옛 전자를 참고하였다’ 정도로 보려고 한다. 전자와 글자 모양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만드는 방식이나 운용하는 방식이 전자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여 단순화된 글자이지만,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을 상형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발음기관을 상형화하면서 글자의 모양은 옛 전자를 참고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최만리도 상소에서 한글이 옛글자를 참고한 것은 맞지만 그 운용이 전혀 다르기에 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이다.
 
사실 한글은 옛 전자만 참고한 것이 아니다. 세종은 수많은 언어와 문자를 보고, 공부하고, 연구한 후에 훈민정음을 창조한 것이다. 훈민정음에 대해 다양한 기원의 주장이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자면 훈민정음이 다양한 문자를 참고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의 창제가 독창적인 점도 분명하다. 니은이 기역을 반대 방향으로 쓴 것은 명백해 보이지만 혀뿌리가 입천장에 닿은 모습을 상형화한 기역과, 혀끝이 잇몸에 닿은 모습을 상형화한 니은의 창제 원리는 명확히 다르다. 입의 모양을 입 구(口)의 글자 모양으로 쓴 것은 참조로 보이나, 미음이 입술소리를 나타내는 것은 명백한 창의성이다. 이는 이의 모양을 시옷으로 쓰는 과정도 유사하다. 이 치(齒)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시옷이 치음을 나타내는 것은 창의적 발상이다.
 
모음의 경우도 기존의 문자 체계를 참고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분류를 천지인으로 설명하였다는 점은 놀라운 발상이며, 우리 음운체계에 관한 과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와 아는 하늘을 ‘땅의 위’와 ‘사람의 오른쪽’에 둠으로써 밝음을 나타내고, 우와 어는 하늘을 ‘땅의 아래’, ‘사람의 왼쪽’에 둠으로써 어두움을 나타내고 있다.  
 
글자를 새로 만들 때, 기존의 문자를 참고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 기존의 문자와는 형태적으로 전혀 닮지 않은 문자를 만드는 것이 좋은가? 아니 가능하기는 한가? 기본적으로 한글의 기원을 논할 때는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훈민정음은 기존의 문자 체계에 관한 연구와 우리말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학문적 객관성과 창의성이 동시에 담겨있는 문자가 바로 한글인 셈이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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