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은 시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다. 지금은 20세다. 그녀의 시 ‘시인 키우기’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작은 시인은 어느새 훌쩍 자라나/ 자신이 꿈꾸는 사랑으로 집을 짓는다/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멋쩍은 내 글짓기 실력으로 건네는 위로/ 온갖 더위에 먹음직스러운 시집이 되어/ 내 집을 지어 준 것도 아닌데/ 리어카 위에 갓 구운 시를 싣고 판매원을 자처한다” 시를 써놓고 그리고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해놓고는 ‘리어카 위에 갓 구운 시를 싣고 판매한다고 했다. 아마 판매의 덕택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금 그녀의 시집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서 인기리에 잘 팔리고 있다.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에 보면, 한국에 시인이 4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 1년에 한 편의 시를 발표할 수 있는 시인은 백 분의 일이될까요?”라고 말했다. 백 분의 일이라는 말은 400명의 시인을 말한다. 이 중에서 200명 정도만 원고료를 받을 거라고 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일 년에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 왜냐면 모든 문예지는, 문예지도 돈을 벌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유명하지 않은 시인들한테는 시를 써달라고 청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인은 발표할 지면이 없으니까,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고 만다. 나부터도 글을 쓰는 이유는, 발표해주는 신문사나 잡지사가 있기 때문이다. 차정은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거꾸로 나는 80세에, 김정기 선생님의 지도 아래, 시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에 나의 시 ‘80에 시공부하다’ 한 토막을 적어본다. “여기는 시 학습교실/ 어느 사람이 묻는다/ 몇 살이요?/ 80/ 늙은 나이에 시 공부는 왜 합니까? 편안하게 사시다가 죽을 채비나 하시는 게 나을 텐데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시공부하니 내 삶이 더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나는 생사윤회와 인과응보를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를 아주 잘 쓴다. 천재시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을 믿는다. 전생에 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으면, 태어날 때 천재시인으로 태어난다. 나는 늙었다. 은퇴했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기에, 지금 시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시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리라고 믿고 있다. 왜 시를 택했는가? 시는 짧아서 쓰기가 쉽고, 읽기가 쉽다. 소설은 너무 길어서 쓰기도 어렵고 또한 읽기도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를 선택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차정은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시에 대한 그리고 시를 쓰는 느낌이나 감정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았다. 차정은이는 젊으니까 시를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팔아야만 하지만’, 나는 늙었기에, 취미로 시를 쓰니까, 팔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르다. 대부분의 나이 먹은 시인들은 자기 돈을 써가면서 시를 쓴다. 왜? 시 쓰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자기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나태주는 말한다. “‘어디 시가 밥 먹여주나?’고 묻는 세상을 향해 영혼의 허기를 채워준다고 답한다.”고 했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시를 쓴다?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리어카 마종기 시인 김정기 선생님 글짓기 실력
2025.09.04. 17:50
은퇴한 후, 치매 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늙었기에, 내 두뇌 또한 늙었다. 두뇌가 늙었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보았다. 이때 바로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가 유행되었다. 시바타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00세에 시집을 발간했다. 그 시집이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렸다. 한국에도 그녀 시집이 번역되어 많이 읽혔다. 시바타를 보고서, 두뇌가 늙었어도 시를 쓰는 데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테의 수기’에서 독일 시인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젊어서 시를 쓴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닌 것이다 (감정이라면 젊었을 때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시는 경험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도시와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한다. 추억이 많아지면 추억 또한 잊혀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말이 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늙어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미국 도서관에 가 보았다. 한국소설이나 수필 책은 수두룩하게 많아도,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시집을 구해서 많이 읽었다. 막상 시를 쓰려고 하니까 전연 써지지 않는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를 쓰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사색(思索)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시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의 천재는 배움 없이 시를 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 쓰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 시 선생을 찾았다. 뉴욕에는 시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2017년, 내 나이 여든. ‘중앙일보 문학 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해서 참여했다. 김정기 선생님을 만났다. 시 작법을 배웠다. 많은 시간을 시 공부에 열중했다. 시라는 게 배운다고 해서 쉽게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 알았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고된 연습을 하는 식으로, 시 또한 매일 써보고 또 써보면서, 고치고 또 고쳐가면서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 나태주는 “산문은 작정하고 쓸 수 있지만, 시는 작정하고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시 자체가 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상(詩想)은 뜬금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떠오른 시상은 금방 없어진다. 없어지기 전에얼른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기억해내기 어렵다. 종이에 적어놓은 시상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수정한 후에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써놓은 시를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좋아할 때까지 혹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시를 고치고 수정한다. 시를 쓰다 보면 짜증도 나고 골치도 아프다. 그런데 다 써놓은 후 완성된 시를 읽어볼 때의 기분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었을 때의 만족감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열린광장 노인 공부 그녀 시집 시인 나태주 김정기 선생님
2025.02.25. 19:52
은퇴한 후, 치매 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늙었기에, 내 두뇌 또한 늙었다. 두뇌가 늙었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보았다. 이때 바로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가 유행되었다. 시바타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00세에 시집을 발간했다. 그 시집이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렸다. 한국에도 그녀 시집이 번역되어 많이 읽혔다. 시바타를 보고서, 두뇌가 늙었어도 시를 쓰는 데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테의 수기’에서 독일 시인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젊어서 시를 쓴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닌 것이다. (감정이라면 젊었을 때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시는 경험인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도시와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한다…. 추억이 많아지면 추억 또한 잊혀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말이 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늙어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미국 도서관에 가 보았다. 한국소설이나 수필 책은 수두룩하게 많아도,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시집을 구해서 많이 읽었다. 막상 시를 쓰려고 하니까 전연 써지지 않는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첫째 시를 쓰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사색(思索)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시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의 천재는 배움 없이 시를 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 쓰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 시 선생을 찾았다. 뉴욕에는 시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2017년, 내 나이 80. ‘중앙일보 문학 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해서 참여했다. 김정기 선생님을 만났다. 시 작법을 배웠다. 많은 시간을 시 공부에 열중했다. 시라는 게 배운다고 해서 쉽게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 알았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고된 연습을 하는 식으로, 시 또한 매일 써보고 또 써보면서, 고치고 또 고쳐가면서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 나태주는 “산문은 작정하고 쓸 수 있지만, 시는 작정하고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시 자체가 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상(詩想)은 뜬금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떠오른 시상은 금방 없어진다. 없어지기 전에 얼른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기억해내기 어렵다. 종이에 적어놓은 시상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수정한 후에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써놓은 시를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좋아할 때까지 혹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시를 고치고 수정한다. 시를 쓰다 보면 짜증도 나고 골치도 아프다. 그런데 다 써놓은 후 완성된 시를 읽어볼 때의 기분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었을 때의 만족감이다. 조성내 / 시인·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노인 공부 그녀 시집 시인 나태주 김정기 선생님
2025.02.20.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