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내에서 생기는 불만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더 평등해지려는 욕구에 대한 반작용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갈등이 증폭되면 분열과 폭발, 파멸에까지 이르게 된다. 물은 수평을 이루려 쉼 없이 낮은 곳을 채워간다. 그리고 격차가 큰 곳에선 거센 폭포로 떨어진다. 공기 또한 같은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풍을 만들고 때로는 태풍으로 몰아친다. 인류 역사는 서로 평등해지려는 욕구로 인해 많은 환난 풍파를 겪었다. 이렇게 얻어낸 이상적 공존 방식이 자유민주주의 제도다. 하지만 모두를 정해진 한계 안에 두면 외형적 평등만 가능할 뿐이다. 진정한 평등은 각자 자신을 누르고 낮추려는 높은 도덕성이 더해질 때 자신의 내면에서 완성된다. 신체적 장애는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불편을 덜어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드는 것은 그들도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부상조의 공동선으로 수혜자도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남발되고 있는 ‘장애인 공익소송’은 이런 공동선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는 일부 장애인과 변호사의 과한 욕심이 만들어 낸 부조리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상업 시설물의 경미한 결함을 찾아내, 이를 구실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업 시설은 법으로 정해진 규정에 따라 건축되고 , 당국의 검사 후에 완공 승인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에 결함이 있다면 그 책임 소재는 승인한 당국에 있고, 당연히 소송의 대상도 허가를 내준 곳이어야 한다. 건물주나 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사실 주변에는 장애인이 불편을 겪을 만한 시설이 많다. 그러나 완벽한 곳은 있을 수 없기에 이에 적응하는 것도 삶의 과정이고 방식이다. 많은 사람이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까닭에 세상은 이만큼이라도 평온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윤천모·풀러턴독자마당 공익소송 남발 공익소송 남발 장애인 공익소송 상업 시설물
2026.06.11. 19:52
지난주 한국 언론 기사들에서 ‘종말’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봇물을 이뤘다. 뭔가 해서 읽어보니 미국 시민들이 플로리다주 한 지역에서 사격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연재해, 전염병, 전쟁 등으로 인해 위기가 고조되자 종말과 같은 극단의 상황을 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태평양 건너의 한국 언론이 이런 스토리를 취재했을 리 없다. 출처를 보니 뉴욕타임스다. 쉽게 말해 번역 기사인 셈이다. 한국 언론들의 번역 기사는 ‘찍어내기’식이 많다. 기사 내용을 보면 사실상 문장, 논조, 순서까지 대체로 비슷하다. 흥미성은 차치하고 기사들중 공통적으로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극우 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총기 소유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고 있다는게 뉴욕타임스의 진단이다.’ 진보 진영의 캐런 배스 LA시장,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카말라 해리스까지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마당에 ‘극우의 전유물’이란 용어가 뜬금없다. 뉴욕타임스의 원문 기사를 찾아봤다. 일단 기사를 읽어보면 저런 문장 자체가 없다. 게다가 원문에는 ‘극우’라는 용어도 없다. 뉴욕타임스가 ‘우파(right-wing)’라고 명시한 것을 자의로 ‘극우(far-right)’라고 번역해 보도한 것이다. 물론 기사 전반의 내용을 보면 대개 총기 소유의 권리를 옹호하는 쪽이 보수 진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사격 훈련은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엄밀히 따지면 저 대목은 한국 기자들의 임의적인 번역이다. 맥락도 없이 ‘극우’를 남발하는 시대다. 남발은 사실을 왜곡하고 곡해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데이터 연구 과학자인 데이비드 로자도 박사가 에릭 커프먼 교수(버킹엄 대학)와 함께 ‘뉴스 미디어에서 정치적 극단주의를 나타내는 용어 사용 빈도의 증가’라는 주제로 지난 2022년에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등 54개 뉴스 매체에서 3000만 건 이상의 기사, 칼럼 등을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해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극우’와 ‘극좌’ 용어를 거의 비슷한 비율로 사용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두 언론 모두 극우 용어의 사용이 ‘극좌(far-left)’에 비해 평균 3배 이상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심화했다. 2008~2014년 사이 뉴욕타임스에서는 ‘극우’ 용어 사용이 243%, 워싱턴포스트에서는 359%나 급증했다. 2015~2019년을 보면 각각 260%, 128%씩 더 증가했다. 논문은 극우 용어의 증가 현상이 뉴스 매체들의 편견(prejudice) 및 사회 정의(social justice) 담론과 깊이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언론의 이념적 중심축이 왼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진보 성향의 엘리트들이 언론계로 진입한 것을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뉴스룸 내부의 이념적 불균형이 결국 정치적 극단주의 용어 사용과 관련해 비대칭성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극우 용어의 남발은 뉴스 미디어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반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고 기사 확산을 극대화하면서 작용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지난 3월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는 대표적 공영방송인 PBS와 NPR의 운영진들에게 내내 질타가 쏟아졌다. 팻 팰런 연방 하원의원(공화)이 폴라 커거 PBS 대표에게 “2023년 6~11월 사이 PBS 보도 중 극우와 극좌 용어 사용의 비율이 ‘96:4’인데, 이러한 편향성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커거 대표는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또한 팰런 의원은 NPR 소속 기자들의 유권자 등록 현황도 언급했다. 그는 캐서린 마허 NPR 대표를 향해 “공화당원이 한명도 없는 걸 보니 민주당이 왜 그렇게 당신들을 극렬하게 방어하는지 이해가 된다”며 “민주당의 선전 부서가 됐다”고 다그쳤다. 이토록 편향적인 주류 미디어를 그나마 ‘받아쓰기’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인데, 한국의 언론들은 한 번 더 비틀어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그런 기사에 중독된 독자들이 과연 미국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심각한건 ‘극우’가 아니다. 인간의 인식을 망가뜨리고 있는 언론이 문제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극우 남발 한국 언론들 극우 단체 번역 기사인
2025.04.14.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