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다. 편안하고 시원한 운동복을 골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달리게 된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는지 문밖 공기 탓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 90도가 넘는 햇볕이 살갗에 닿으면 벌에 쏘인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14마일 연습 목표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 연습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져 보고 싶은 충동이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는 다독임이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아스팔트의 단단함에 무딘 내 발이 압력으로 느끼는 무게를 실감하면서 속도를 내본다. 고개를 들어 눈을 찡그리고 눈 부신 해를 마주한다. 쉼없이 앞으로 나가는데도 해는 여전히 그 자리다. 조금 더 속도를 내본다. 심박 수가 오르면서 귓속으로 심장의 박동 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한걸음 내밀 때마다 해는 조금씩 내 뒤로 멀어진다. 마치 내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내 발과 내 리듬으로 이제 내 발을 감싸는 땅의 촉감이 제법 익숙해진다. 앞서 난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지나간 걸까 누가 지나간 걸까 여러 모양의 발자국들이 뒤섞여 이 길이 커다란 판화 같다. 흙 위에 오롯이 남은 개의 발자국에 속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본다. 나의 발자국은 선명하지 않다. 이 개는 얼마나 힘차게 발을 내디뎌서 이렇게 또렷한 발자국을 남긴 걸까. 시원한 공기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저 좋아서 달리는 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이 몽글몽글하다. 머물러 있는 건지 떠다니는 건지 소리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자기만의 것들이 보인다. 매미들의 요란한 합창의 계절이다. 정확하게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울어댄다. 조용한 숲 공원에서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 덩달아 가까이에 있는 매미들이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장단을 맞춰가며 자기들의 있음을 과시하는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는 데다 90도 이상의 기온이 한 달 이상 계속되어 공원 잔디밭은 노랗고 밟으면 잔디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들도 목이 말랐는지 이파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날씨가 화창하고 무덥지 않으면 개와 같이 산책하는 무리가 많은데 더운 날씨에는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 산 중턱에 나무 그늘로 가려지지 않은 땅에서 살고 있던 지렁이가 모두 길가로 기어 나와서 죽어있다. 땅속이 뜨거우니까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길바닥은 더 뜨거워 죽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에서 생식하는 많은 생물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졸졸졸 흐르던 냇가도 메말라 흐르는 물 양옆으로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이 가득 차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고 물안개를 날리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냇가 주변으로 작은 꽃과 풀들은 예쁘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설사 이름이 없더라도 변함없이 청초하다. 그저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움튼 작은 생명이 이리 고울까. 이리저리 뒤엉켜 자라나는 것들은 그 나름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무렇게나 빛 따라 비 따라 자라고 피어난 꽃들의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며 다시 달린다.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내 발을 품어주는 흙과 내 등을 쓰다듬는 햇살을 응원 삼아 달리기는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개똥에도 너그러워지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벌레에도 애정이 생긴다. 뛰다 잠깐 멈춰 서서 보게 되는 작고 다정한 것들에 마음을 쏟으며 충만함을 가득 느낀다.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다정 공원 잔디밭 달리기 연습 나무 그늘로
2025.09.11. 18:57
일요일 아침이다. 편안하고 시원한 운동복을 골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달리게 된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는지 문밖 공기 탓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 90도가 넘는 햇볕이 살갗에 닿으면 벌에 쏘인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14마일 연습 목표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 연습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져 보고 싶은 충동이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는 다독임이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아스팔트의 단단함에 무딘 내 발이 압력으로 느끼는 무게를 실감하면서 속도를 내본다. 고개를 들어 눈을 찡그리고 눈 부신 해를 마주한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데도 해는 여전히 그 자리다.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심박 수가 오르면서 귓속으로 심장의 박동 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한걸음 내밀 때마다 해는 조금씩 내 뒤로 멀어진다. 마치 내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내 발과 내 리듬으로 이제 내 발을 감싸는 땅의 촉감이 제법 익숙해진다. 앞서 난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지나간 걸까 누가 지나간 걸까 여러 모양의 발자국들이 뒤섞여 이 길이 커다란 판화 같다. 흙 위에 오롯이 남은 개의 발자국에 속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본다. 나의 발자국은 선명하지 않다. 이 개는 얼마나 힘차게 발을 내디뎌서 이렇게 또렷한 발자국을 남긴 걸까. 시원한 공기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저 좋아서 달리는 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이 몽글몽글하다. 머물러 있는 건지 떠다니는 건지 소리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자기만의 것들이 보인다. 매미들의 요란한 합창의 계절이다. 정확하게 7월 초부터8월 말까지 울어댄다. 조용한 숲 공원에서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 덩달아 가까이에 있는 매미들이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장단을 맞춰가며 자기들의 있음을 과시하는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는 데다 90도 이상의 기온이 한 달 이상 계속되어 공원 잔디밭은 노랗고 밟으면 잔디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들도 목이 말랐는지 이파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날씨가 화창하고 무덥지 않으면 개와 같이 산책하는 무리가 많은데 더운 날씨에는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 산 중턱에 나무 그늘로 가려지지 않은 땅에서 살고 있던 지렁이가 모두 길가로 기어 나와서 죽어있다. 땅속이 뜨거우니까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길바닥은 더 뜨거워 죽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에서 생식하는 많은 생물도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지나가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졸졸졸 흐르던 냇가도 메말라 흐르는 물 양옆으로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이 가득 차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고 물안개를 날리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냇가 주변으로 작은 꽃과 풀들은 예쁘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설사 이름이 없더라도 변함없이 청초하다. 그저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움튼 작은 생명이 이리 고울까. 이리저리 뒤엉켜 자라나는 것들은 그 나름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무렇게나 빛 따라 비 따라 자라고 피어난 꽃들의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며 다시 달린다.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내 발을 품어주는 흙과 내 등을 쓰다듬는 햇살을 응원 삼아 달리기는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개똥에도 너그러워지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벌레에도 애정이 생긴다. 뛰다 잠깐 멈춰 서서 보게 되는 작고 다정한 것들에 마음을 쏟으며 충만함을 가득 느낀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다정 공원 잔디밭 달리기 연습 나무 그늘로
2025.08.26. 17:27
오늘 아침에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둘째 딸 아이가 자기 생일날 우리 집까지 뛰어올 거라는 결심을 밝혔을 때 나도 함께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어제부터 달리기 연습에 들어갔다. 두 집 사이의 거리를 계산해 보니 대충 22km가 넘었다. 장거리 달리기 경험이 거의 없는, 그것도 60 중반에 접어든 내가 뛰겠다고 결정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은 하고 보리라는 마음으로 러닝머신 위에 섰다. 오늘은 시속 5.2마일로 시작해서 조금씩 속도를 올려서 달리기를 멈출 때는 시속 6.2마일이었다. 뛰는 중에 엉덩이가 조금 불편해 멈출까 하다가 참고 뛰었다. 뛰다 보니 그 불편함은 사라졌다. 그런데 러닝머신의 계기판을 바라보던 시선이 한순간 앞의 거울로 옮겨 갔다. 거기에 아무 표정이 없는 한 사람이 보였다. 불현듯 ‘나는 이 새벽에 왜 달리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목적은 바로 딸에게 내 사랑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면 달리는 행위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면서 ‘딸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라는 질문을 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달리는 동안 거울을 보며 미소를 연습했다. 그런데 미소를 짓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 입술을 위아래로, 그리고 좌우로 1cm를 움직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를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입 주변의 근육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의식적으로 애를 쓰지 않으면 미소를 짓는 일이 어렵다. 오늘 아침에 아내와 나는 둘째네 집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운전하고 가는 내내 나는 미소를 연습할 것이다. 마음을 다해 연습한 아빠의 미소를 딸에게 선물할 것이다. 김학선·자유기고가독자 마당 미소 달리기 연습 장거리 달리기 동안 거울
2022.03.29. 19:21
오늘 아침에는 등 운동과 스쿼트를 마치고 러닝 머신 위에 올랐다. 둘째 딸 아이가 자기 생일날 우리 집까지 뛰어올 거라는 결심을 우리에게 밝혔을 때 나도 함께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어제부터 달리기 연습에 들어갔다. 두 집 사이의 거리를 계산해 보니 대충 22km가 넘었다. 우리가 말하는 하프마라톤(Half Marathon)의 거리가 살짝 넘는 거리다. 군대에서 완전 군장을 하고 10km를 뛴 이후, 작년 3월에 우리 동네에서 열리는 달리기 대회에서 얼떨결에 아이들과 5Km를 뛴 것이 내 인생에서 먼 거리를 달린 유일한 경우였다. 장거리 달리기 경험이 거의 없는, 그것도 60 중반에 접어든 내가 10km의 두 배가 훌쩍 넘어가는 거리를 뛰겠다고 점심(마음에 점을 찍음)한 것은 제법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나간 성급한 결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은 하고 보리라는 마음으로 어제부터 러닝 머신 위에 서게 되었다. 오늘은 시속 5.2마일로 시작해서 조금씩 속도를 올려서 달리기를 멈출 때는 시속 6.2마일이었다. 가끔심박 수를 체크해보았는데 최고가 132였다. 내 나이를 고려해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치여서 마음이 놓였다. 42분 30초 동안 4마일(6.4 km)의 거리를 뛰었다. 뛰기 전에 스쿼트를 했는데 좀 무리를 했는지 달리기를 시작할 때 왼쪽 엉덩이가 조금 불편해서 멈출까 하다가 참고 뛰었다. 뛰다 보니 그 불편함은 사라지고 뭔가 상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러닝 머신의 계기판을 바라보던 시선이 한순간 앞의 거울로 옮겨 갔다. 거기에 아무 표정이 없는 한 사람이 보였다. 불현듯 ‘나는 이 새벽에 왜 달리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목적은 바로 딸에게 내 사랑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면 달리는 행위 자체가 그저 달리기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면서 ‘딸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으로 마음이 담긴 미소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달리는 동안 거울을 보며 미소를 연습했다. 그런데 미소를 짓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 입술을 위아래로, 그리고 좌우로 1cm를 움직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를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입 주변의 근육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의식적으로 애를 쓰지 않으면 미소를 짓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 중 하나가 입술이 상하좌우로 열리는 1cm임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 아침에 아내와 나는 둘째네 집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운전하고 가는 내내 나는 미소를 연습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서 연습한 아빠의 미소를 딸에게 아낌없이 내어 줄 것이다. 김학선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미소 명함 장거리 달리기 달리기 연습 달리기 대회
2022.03.27.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