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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달리면서 만나는 다정한 것들

New York

2025.08.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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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다. 편안하고 시원한 운동복을 골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달리게 된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는지 문밖 공기 탓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빠르게 움직인다. 90도가 넘는 햇볕이 살갗에 닿으면 벌에 쏘인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14마일 연습 목표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 연습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져 보고 싶은 충동이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는 다독임이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아스팔트의 단단함에 무딘 내 발이 압력으로 느끼는 무게를 실감하면서 속도를 내본다.  
 
고개를 들어 눈을 찡그리고 눈 부신 해를 마주한다. 쉼 없이 앞으로 나가는데도 해는 여전히 그 자리다.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심박 수가 오르면서 귓속으로 심장의 박동 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한걸음 내밀 때마다 해는 조금씩 내 뒤로 멀어진다. 마치 내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내 발과 내 리듬으로 이제 내 발을 감싸는 땅의 촉감이 제법 익숙해진다. 앞서 난 발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지나간 걸까 누가 지나간 걸까 여러 모양의 발자국들이 뒤섞여 이 길이 커다란 판화 같다. 흙 위에 오롯이 남은 개의 발자국에 속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본다. 나의 발자국은 선명하지 않다. 이 개는 얼마나 힘차게 발을 내디뎌서 이렇게 또렷한 발자국을 남긴 걸까.  
 
시원한 공기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저 좋아서 달리는 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이 몽글몽글하다. 머물러 있는 건지 떠다니는 건지 소리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이 그저 그렇게 자기만의 것들이 보인다.
 
매미들의 요란한 합창의 계절이다. 정확하게 7월 초부터8월 말까지 울어댄다. 조용한 숲 공원에서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 덩달아 가까이에 있는 매미들이 한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장단을 맞춰가며 자기들의 있음을 과시하는 것 같다. 비가 내리지 않는 데다 90도 이상의 기온이 한 달 이상 계속되어 공원 잔디밭은 노랗고 밟으면 잔디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들도 목이 말랐는지 이파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날씨가 화창하고 무덥지 않으면 개와 같이 산책하는 무리가 많은데 더운 날씨에는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 산 중턱에 나무 그늘로 가려지지 않은 땅에서 살고 있던 지렁이가 모두 길가로 기어 나와서 죽어있다. 땅속이 뜨거우니까 밖으로 기어 나왔는데 길바닥은 더 뜨거워 죽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에서 생식하는 많은 생물도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지나가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졸졸졸 흐르던 냇가도 메말라 흐르는 물 양옆으로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이 가득 차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고 물안개를 날리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냇가 주변으로 작은 꽃과 풀들은 예쁘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설사 이름이 없더라도 변함없이 청초하다. 그저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움튼 작은 생명이 이리 고울까. 이리저리 뒤엉켜 자라나는 것들은 그 나름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무렇게나 빛 따라 비 따라 자라고 피어난 꽃들의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며 다시 달린다.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내 발을 품어주는 흙과 내 등을 쓰다듬는 햇살을 응원 삼아 달리기는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개똥에도 너그러워지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벌레에도 애정이 생긴다. 뛰다 잠깐 멈춰 서서 보게 되는 작고 다정한 것들에 마음을 쏟으며 충만함을 가득 느낀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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