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소련 전투기와의 단독 공중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뒀으나 뒤늦게 명예훈장을 받은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100세)이 샌디에이고 지역사회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지난 21일 USS 미드웨이 항공모함 박물관 갑판에서는 윌리엄스 대령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약 200여 명의 참전용사와 군 관계자, 지역인사들이 참석했으며, T-34 훈련기 편대가 상공을 비행하며 그의 공적을 기렸다. 행사에는 대럴 이사 연방하원의원과 토드 글로리아 샌디에이고 시장, 등 주요 인사와 참전용사들이 참석했고 샌디에이고 한인사회에서는 백황기 SD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과 장영길 이사가 참석했다. 윌리엄스는 1952년 11월 한국전쟁 중 항공모함 USS 오리스카니에서 출격해 더 빠르고 기동성이 뛰어난 소련 미그기 7대와 약 35분간 교전을 벌였다. 그는 4대를 격추시키고, 263발의 탄흔을 입은 전투기를 이끌고 무사 귀환하는 기적 같은 생환을 이뤄냈다. 해당 작전은 당시 미.소 간 긴장 고조를 우려해 수십 년간 비밀에 부쳐졌으나, 2000년대 기밀 해제 이후 그의 공로가 재조명됐다.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졌고 대럴 이사 연방하원의원 등이 앞장서 명예훈장 수여를 추진해 왔다. 그 결과 그는 지난 2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명예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날 글로리아 시장은 "20대 청년이 조국을 위해 내린 결단은 상상을 초월 한다"며 '로이스 윌리엄스의 날'을 선포했고 이사 의원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운 진정한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윌리엄스는 "모든 공은 당시 함께 했던 승조원들에게 있다"며 끝까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김영민 기자윌리엄스 한국전 로이스 윌리엄스 윌리엄스 대령 한국전쟁 당시
2026.03.24. 20:59
"목숨 바쳐 지킨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뤄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해군 전투 조종사로 지원해 미국과 한국,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입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Elmer Royce Williams·사진)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이 지난 4일 100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 소련 전투기 7대와 단독 공중전을 벌여 4대를 격추한 기적과 같은 전과의 주인공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공중전을 '항공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했고 윌리엄스 대령은 그 공로로 해군십자훈장, 은성훈장을 수훈했고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 무공훈장을 받았다. 윌리엄스 대령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 사우스 다코타의 작은 마을 윌멋에서 태어났다. 4살 무렵 할머니와 처음 타 본 비행기에 완전히 매료됐고 학창 시절 이글 스카우트 단원으로 활동하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형과 함께 입대를 결심했다. 이후 미네소타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며 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플로리다에서 해군 비행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한국전에 참전해 70여 개 작전에 투입돼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윌리엄스 대령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전쟁에서의 첫 임무를 생생하게 회상했다. 그의 첫 임무는 북한 지역에 폭탄 6개를 투하하는 것이었다. 첫 출격 당시 공포나 불안은 없었다고 했다. 미국 시민으로서 충성 서약을 했고 해군으로서 철저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자유 대한을 방어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본인 능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시 그가 투하한 6개의 폭탄은 북한군에 큰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은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지금의 한국 안보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상황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라는 것. 그는 남한과 북한이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던 만큼 앞으로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가 되어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세상에 이념이 생기고, 그 이념이 도전받을 때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핵무기는 한반도뿐만이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젊은 세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100세 생일을 맞은 노병은 "젊은이들이 '큰 그림에 대한 예측과 전망(High Level Outlook)'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며 "국가가 여러분에게 뭘 해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 정신을 인용했다. 나아가 젊은 시절 도전이 없다면 어떤 성취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엘머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은 지난 5일 발보아 파크에 위치한 항공우주 박물관에서 300여 명의 참전용사들과 함께 100세 생일 파티를 가졌다. 이날 파티에서 그는 해군이 되지 않았더라면 요세미티를 지키는 국립공원 관리인이 되어 마음껏 낚시와 사냥과 하이킹을 즐겼을 것이라는 농담도 더했다. 이날 그는 지난 100년의 세월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결혼 생활이었다며 평생 든든하게 자신의 곁을 지키며 세 아들을 훌륭히 키워준 아내에게 큰 감사를 전했다. 글·사진= 박세나 기자보람 목숨 윌리엄스 대령 한국 정부 로이스 윌리엄스
2025.04.10. 20:17
한국전쟁 당시 해군 조종사로 미그기 4대를 동시에 격추한 전설적인 ‘탑건’이 약 70년 만에 평화의 사도 메달을 받았다. 16일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은 전날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로이스 윌리엄스(해군 대령 예편)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전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권성환 부총영사, 백황기 샌디에이고 한인회장은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과 가족을 만나 한국 정부를 대표해 고마움을 전했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1952년 11월 북한 회령지역에 출몰한 미그기 7대와 조우해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당시 F9F-5를 몰았던 그는 홀로 미그기 4대를 격추해 해군 역사에 전설로 남았다. 그가 기지로 귀환할 당시 기체에는 263개의 총탄 자국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공적은 소련과 긴장확대를 우려한 미국 당국에 의해 기밀로 취급됐고 2002년 미국 정부가 기밀을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그에게 십자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해군 내 최고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인 탑건 초대 교관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폐허였던 서울이 눈부시게 발전해 많이 놀랐다. 그때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해 통일이 안 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LA총영사관 측은 윌리엄스의 활약 등을 알리며 한국 정부에 무공훈장을 건의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윌리엄스 한국전 로이스 윌리엄스 한국전 탑건 한국전쟁 참전용사
2023.02.17.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