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ization Meditation, 시각화 명상’! 당신에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명상법이다. 이 명상은 심안(心眼, 마음의 눈)을 활용한다. 꿈과 다른 점은 멘탈 이미지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점. 꿈과 같은 점은 명상을 하는 동안에 청각, 촉각, 후각 같은 감각이 의외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명상은 꿈처럼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고의적으로 피하는 설정이 있을 뿐. 멘탈 이미지의 해상도는 오로지 당신의 집중력에 달렸다. 나는 열 살 때 처음으로 대천해수욕장에 간 기억이 입때껏 고스란히 살아있다. 평생 처음 보는 광활한 수평선, 철석이는 파도 소리, 살에 와 닿는 바닷바람의 감촉과 소금 냄새 속에서 경이롭고 편안했다. 시각, 후각, 촉각, 그리고 총체적 체험을 되살리는 순간 영락없이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명상이 끝나고 나면 온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당신도 이런 기억을 되살려 보라.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다르다, 하는 계산적 추리를 벗어나서. 지금으로부터 6, 7천년 전, 인류에 무당(巫堂)이라는 직업이 처음 생겨났을 때쯤에 시각화 명상이 성행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문헌상으로는 기원전 1500년경 힌두교, 1000년경 유대교, 600년경 중국의 도교, 현대 불교의 명상수행, 그리고 가장 최근 197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미국식 명상법이 거론된다. 예컨대, 인류의 올림픽 역사상 금메달을 가장 많이 획득한 미국인 Michael Phelps (1985~)의 ‘머릿속으로 하는 수영연습’ 즉 ‘image training’도 시각화 명상과 많이 닮았다. 그는 자신이 올림픽 경기에서 수영하는 일거수일투족의 이미지를 규칙적으로 상상하는 훈련을 쌓았다. 인간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확연하게 분별하지 못한다는 특성이 있고 바로 이것을 그가 십분 활용한 것이다. 같은 연유에서 당신과 나도 본능적으로 현실처럼 생생한 꿈을 꾸며 시각화 명상을 연마해왔는지도 모르지. ‘Mindful Meditation,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명상법은 시각적 이미지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염두(念頭)에 두다, 유념(留念)하다’라는 뜻의 ‘mindful’이라는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고민을 많이 한 티가 나는 우리말 번역, ‘마음챙김’! ‘챙기다’는 참견(參見)한다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발음상 ‘아기’가 ‘애기’로, ‘아비’가 ‘애비’로 변했듯, 참견이 ‘챔견’으로, ‘참기름’의 방언이 ‘챙기름’이듯, 참견의 ‘참’이 ‘챙’으로 변한 후 ‘참기다’가 ‘챙기다’로 변했다는 학설이다. ‘-기다’라는 어미는 ‘엉기다’, ‘개기다’, ‘웃기다’, ‘섬기다’에서처럼 어떤 상태가 된다는 의미. ‘참견하다’는 사전에 ①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다. ②어떤 자리에 직접 나아가서 보다, 라고 나와 있다. ①은 부정적이지만 ②는 중립적이라는 점에 유념하시라. 그런 각도에서 ‘마음챙김 명상’은 ‘시각화 명상’에 비하면 참 여유로운 말이다. 나는 시각화 명상으로 숙련된 정신집중의 묘법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중에 얼토당토아니한 연상작용이 일어나더라도 친절하게 넘어가려 한다. 그리고 내 마음 씀씀이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는 뇌 기능의 양면성을 향유하며.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명상법 시각화 명상 마음챙김 명상 meditation 마음챙김
2025.07.08. 17:37
선과 명상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해마다 명상센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으며 명상에 관한 과학적, 의학적 결과가 많이 발표됨으로써 선과 명상이 종교와 관계없이 차차 일반인에게 생활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행을 위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앉아서 하는 좌선도 주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생활 가운데 어떻게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는가가 더욱 주요한 문제가 됩니다. 특히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선심(禪心)을 유지하는가가 큰 관건입니다. 특히 화가 나고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마음을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순간에 평온을 유지하는가에 대해 원불교 정전 ‘무시선법’에 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경계를 당할 때 바로 선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그 ‘방법’을 아는 것이 주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법이 심히 어려운 것 같으나 닦는 법만 자상히 알고 보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망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으며, 주판을 든 점원도 선을 할 수 있고, 정사를 잡은 관리도 선을 할 수 있으며 내왕하면서도 선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선을 할 수 있나니 어찌 구차히 처소를 택하며 동정을 말하리오.” 힘든 경계를 당하는 순간 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대종사께서는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소 길들이기에 비유합니다. “처음으로 선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아니하여 마치 저 소 길들이기와 흡사하나니 잠깐이라도 마음의 고삐를 놓고 보면 곧 도심을 상하게 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행한즉슨 마음이 차차 조숙(調熟)되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지경에 이르나니,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잘 길들지 않는 우리 마음의 소를 다스리는 첫 번째 방법은 집심(執心)입니다. 즉 길들지 않은 우리 마음의 소가 아무 데나 가려고 하거나 게으름을 부릴 때 그 ‘마음의 고삐’를 잘 잡고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그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욕심나는 경계는 다양합니다. 옛 습관에 따라 해야 할 일을 미루려 하거나 습관적으로 남을 판단하려고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려고 하거나 등 우리 마음이 끌리는 욕심 나는 경계는 다양합니다. 대종사 재세시 한 제자가 술을 끊지 못해서 힘들어했습니다. 어느 날 그 제자가 어떤 시골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분이 자기 스스로 “이놈, 이놈” 하고 자기를 크게 책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가 바로 우리의 ‘마음의 고삐’를 추어 잡는 것이여,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를 키울 때 개가 아니해야 할 행동을 할 때 때론 우리가 따끔하게 개를 꾸짖어야 하는 것처럼 -안 그러면 개가 좋지 못한 버릇이 습관화됩니다- 초보 수행자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법에 비추어 꾸짖어 ‘마음의 고삐’를 추어 잡아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주변에서 진정한 충고를 하는 사람이 차차 사라지기에, 특별한 스승님이 계시지 않는 한, 자기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가 자신을 꾸짖고 경책을 하는 것이 아주 주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성장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대종사께서는 특히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명상법 화가 우리 마음 초보 수행자들 대종사 재세시
2023.02.16.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