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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8년만의 스푸트니크 모멘트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미국은 이를 단순한 기술 성취로 보지 않고, 자국 교육과 과학 체계의 실패이자 전략적 이념적 위협으로 받아들여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역사는 이를 ‘스푸트니크 모멘트’라 기록한다.   미국의 대응은 전례 없이 신속하고 체계적이었다. 과학, 기술, 수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과 투자가 이어졌다. 불과 1년 만에 항공우주국(NASA), 국방고등연구 계획국(DARPA)을 신설했고, 국방교육법을 제정해 과학 교육을 강화했다.     첫 유인 우주비행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을 시작해, 결국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성공했다. 동시에 국가과학재단(NSF) 예산을 3배로 증액해 연구 개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과의 본격적인 과학 경쟁 속에서, 미국의 과학 정책은 과거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초 과학 연구비를 대폭 삭감하고, 공공 연구 기관을 폐쇄했으며, 외국인 연구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국력은 인재, 국방력, 경제력의 조화에서 나온다. 특히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등 핵심 인재의 유출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의 과학 정책이 흔들리면서 연구 현장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권위있는 학술지 네이처(Nature)의 2025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75% 이상이 해외 이주를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 통계를 보면 과학계의 위기는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 대학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NSF는 예산이 56% 삭감되고 직원의 10%가 해고됐다. 의학과 생명과학 연구를 이끄는 국립보건원(NIH)도 예산이 40% 줄면서 1000명 이상의 감축 조치가 이뤄졌다. 불과 8개월 사이, 두 기관에서 3000~4000건의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이 밖에도, 환경보호청(EPA), NASA 과학임무부(SMD), 국립해양대기청(NOAA), 에너지부(DOE), 미국지질조사국(USG),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주요 기관들의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또한, 지난달에는 단백질 합성(mRNA) 기술을 이용한 22개의 백신 연구 계약이 취소됐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라 미래 기술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결정이다.   학자들은 과거 어느 국가도 이처럼 빠르고 조직적으로 자국의 핵심 경쟁 우위를 스스로 허물은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반면, 중국은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연구 개발비를 18배 늘렸다고 중국전문가포럼(CSF)이 분석했다. 그 결과, 여러 과학 분야에서 논문 영향력과 특허 수에서 이미 미국을 크게 추월했다.   미국의 과학 패권은 1945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절정에 달했다. 과학 투자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창의성과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전략 자산이다.     지금 미국은 ‘제 2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가 인공지능(AI)에 쏟는 지원만큼 과학에도 과감히 투자하고, 인재 유치와 기초연구 지원을 확대한다면 과학 혁신은 되살아나 미국의 미래를 다시 밝힐 것이다. 혁신은 인류를 전진시키며, 국가의 미래는 과학에 달려 있다. 레지나 정 / LA독자기고 스푸트니크 모멘트 스푸트니크 모멘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과학자 의사

2025.09.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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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시니어 모멘트

노인네들은 겸손하다. 남의 도움을 받고 싶은 본능적 몸가짐이다. 애써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등허리가 굽어지는 모습이 마치 무슨 용서라도 구하는 태도다. 노인네들은 공손하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고 싶다. 같은 말을 앉은 자리에서 되풀이하거나 전에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뜸을 들이며 쉼표 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 그, 왜, 저’, 하는 간투사로언어 공간을 메꾸는 사이에 상대방이 몸을 꼰다.   나이를 먹을수록 옛날을 회고하는 것이다. ‘그때가 좋았어’,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은 현재보다 과거가 좋았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가난과 곤혹에 시달리던 시절을 회상하며 웃기도 하고 ‘개고생’ 하던 군대생활을 떠올리고 무릎을 치며 공감한다. 그때는 좋고 지금은 나쁘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현실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두뇌활동은 과학적 객관을 인지하는 능력과 더불어, 니체가 지적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감성적 주관이 활개 치는 기능을 겸비한다. 이 두 작용을 조종하는 지렛대가 기억(memory)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메모리는 쇠퇴하는 법. 심하게는 치매에 이르지만 경미한 경우에 “아, 내가 깜빡했네,” 하며 상대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미국인들은 이런 경우를 ‘senior moment’라 부른다.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가 오래되면 기능이 부실해지는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senior’는 13세기 라틴어로 ‘old, 늙었다’라는 뜻이었다가 15세기에 ‘고위급’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변했다. 1938년에 ‘senior citizen’이라는 듣기 좋은 표현이 처음 나왔다는 기록이다.       우리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달갑잖은 버릇은 스스로의 두뇌활동을 자극하는 습관일지도 몰라. 육체운동, 반복적으로 조깅하거나 헬스클럽에 가는 습관이 몸에 좋은 것처럼 두뇌 운동, 했던 말을 또 하거나 기억을 되살리는 습관이 두뇌건강에 좋다는 버젓한 이론일 수도 있어.   정적을 깨며 자기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진짜 두뇌 운동이다. 가만히 앉아서 상상으로 조깅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소리 없이 하는 생각 또한 말이 안 되지. 말이 많은 노인네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두뇌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습관을 용허한다.   이들이 가진 것은 과거일 뿐이라는 극단적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옛날의 멋진 추억이 엊그제 5박 6일 크루즈 관광 여행에서 성능 좋은 셀카 사진보다 훨씬 더 즐겁고 풍요롭다.   골수에 박힌 관습, 꼰대스러운 가치관 등등,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며 고개를 떨구는 ‘과거애착증’은 외로운 중독현상이다. 현재는 도통 이해하기 힘들고 미래는 전혀 예측하기 어려워서 과거에만 연연하는 우리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딱하다.   연말이 다가오는 세상이 소란스럽다. 시끌벅적한 2023년 12월 하순 맨해튼 거리. 종교적 축제라는 의미 외에 한해가 저무는 아쉬움을 행동으로 발산시키는 집단심리다. 몇몇 노인네들이 젊은 행인들에게 떠밀리듯 걸어간다.   당신과 나는 알고 있다. 해가 바뀔수록 우리의 남은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는 사실을. 두려움을 제어하며 외로움을 달래려고 많은 관광객이 맨해튼에 엄청나게 모여든다. 구세군 벨을 딸랑거리며 모금자가 신명 나게 춤을 춘다. 군중에 섞여 거리의 소음을 공유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망각하는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시니어 모멘트 시니어 모멘트 두뇌 운동 senior citizen

2023.12.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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