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늦은 여름이면 미동부 해안의 끝자락 뉴욕 허드슨강의 계곡과 연결된 허드슨 캐년에 참치 무리들이 먹이볼을 찾아온다. 오징어, 고등어, 멸치 등의 먹이볼이 형성되어 참치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원래 미동부 해안은 어획량이 풍부하고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는 바다로 참치 철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많은 낚시꾼이 모여든다. 참치 무리가 언제 나타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물의 흐름과 온도를 수시로 측정하며 그들의 이동상태를 점검한다. 모두가 큰 기대를 하고 먼 길을 떠난다. 각자 기호에 맞는 장비와 자기만의 노하우를 준비한다. 한밤중의 무리를 기대하고 떠나는 팀과 낮과 저녁노을의 시간대를 선호하는 팀들이 있다. 지난해는 상황이 너무 좋았지만 올해는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오늘은 26명이 롱아일랜드 프리포트에서 출발하는 선박에 올랐다. 모두 반가운 꾼들의 만남이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 승선했다. 거의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이지만 그래도 예측할 수 없었다. 푸짐한 음식과 다양한 음료수를 즐기며 바늘을 매는 사람, 지깅과 파핑, 기타 등등 만반의 준비도 해야 되고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기 때문에 밤새도록 새우잠이라도 자야 한다. 일행 중에 두 젊은 남자가 자리가 없어서 서성거리며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나의 자리 일부분을 서슴없이 양보했다. 그들의 복장과 준비물을 살펴보니 초보자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전부가 새것들로 무장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낚시도 참치도 처음이란다. 문득 떠오른 미국인들의 속담 ‘Beginner is winner’란 말이 생각났다. 네가 오늘의 승자가 될 거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선박은 밤새도록 대서양을 흔들며 어둠 속 깊은 곳에 도착했다. 모두가 승자의 꿈을 꾸었다. 선장과 승무원의 지시를 따라 칠흑의 밤 밝은 조명의 불을 밝힌다. 한밤중 허드슨 캐년의 촛불들이 여기저기에 나름대로 행운의 자리를 잡고 닻을 내리고 고등어, 오징어, 정어리, 넙치 등의 미끼를 내린다. 현장의 산 오징어를 잡아서 사용하면 훌륭한 미끼다. 선장의 안내 방송(참치의 위치, 깊이 등)에 따라서 바늘을 내리고 밤을 새운다. 오늘 밤은 참치의 입질이 없었다. 때로는 대형 상어가 물고 늘어지는 싸움과 황새치들을 잡는 긴 싸움이 있고 특히 하늘을 향해 날듯이 물 밖으로튀어나오는 모습은 장관이며, 특별손님으로 찾아오는 참다랑어, 눈다랑어는 모두 초대형으로 100파운에서 1000파운드가 넘는데 규정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특히 참다랑어는 선박에 사람 수 관계없이 한 마리만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생선 미식가들의 기호품이다. 오늘은 미끼, 지깅, 파핑, 드리핑 방법을 총동원했다. 마지막으로 저인망 상선을 따라가면서 바늘을 물 위로 띄우며 쫓아가는 방법(작은 생선들이 그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참치가 따라가며 먹는다)으로 바늘과 미끼를 흘린다. 저인망선의 뒤를 따르며 많이들 잡는다. 한데 오늘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순간 “Fish on”이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물고 늘어진 15여 분 동안의 줄당기기 힘자랑이 끝나고 드디어 무척이나 큰 황다랑어를 갑판 위로 올렸다. 25명은 모두 그와 참치를 보며 부러워했다. 참치는 최후의 마침표로 꼬리로 갑판을 때리며 대서양과의 하직을 고했다. 바로 그 젊은 두 사람이었다. ‘Beginner is winner’란 말이 적중했다. 그는 매우 흥분되어 기분이 최고로 상승하여 기쁨의 악수를 하며 나의 말이 맞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고 오늘의 승자는 결정되어 25명은 허공 속에 대서양의 바람을 접었다. 회항 길에 모두 한판 승부를 승복하고 항구에 도착했는데 26명의 손은 빈손이 아니었다. 그는 혼자 독식을 하지 않고 26조각으로 다듬어 한 조각씩 모든 손에 쥐여 주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젊은이의 미덕이 대서양의 바람을 더욱더 훈훈하게 했다.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간 아름다운 바다의 노숙자들이었다. 오광운 / 시인열린광장 조각 미덕 낚시도 참치도 오징어 고등어 고등어 오징어
2026.02.10. 20:53
웨애앵~ 로봇 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했나보다. 온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 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나랑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 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얘는 나를 미워할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래도 말없이 순종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좌회전하세요”라고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하세요. 유턴하세요.” 또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했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은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서 온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친 후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 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침묵 미덕 감정 표현 도로 안방 빅데이터 기반
2023.08.22. 21:01
웨애앵~ 로봇 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했나보다. 온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 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나랑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 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얘는 나를 미워할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래도 말없이 순종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좌회전하세요”라고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하세요. 유턴하세요.” 또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했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은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서 온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친 후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 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침묵 미덕 감정 표현 도로 안방 빅데이터 기반
2023.08.20. 18:00
치과에 갈 때마다 치과 선생님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 하신다. 당연히 치아의 건강과 스트레스는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문제는 마치 “그 쉬운 걸 왜 못하세요”라는 듯한 뉘앙스다. 가벼운 인사 겸해서 하시는 말인 줄 알기 때문에 불쾌한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들 스트레스받고 싶어 받나요”라며 속으로 볼멘소리가 올라오곤 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행복의 첩경임을 늘 강조해 오면서도 어떻게 마음을 비우는가에 대한 안내가 없다면, “비워야 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하는 독자들의 볼멘소리를 필자 역시 듣게 될지 모를 일이다. 명상이나 염불 외에 보다 현실적인 방법들을 소개해본다. 첫째,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불가에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의 능력 밖의 일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이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응원하는 팀이 지면 그날은 분해서 잠을 못 잘 만큼 학창시절에 농구를 좋아했다. 속을 끓인다고 승부가 바뀔 리가 없다. 5년 전 동남아시아 불교 유적 답사 중 소매치기를 당했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해외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뿐이었다. 마음을 끓인다고 소매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아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인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대치(代置) 공부다. 작년에 원불교 신문사에서 교리 관련 칼럼 요청이 있었다. 현재 맡고 있는 훈련원 건축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어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어 수락했다. 최소한 칼럼을 준비하고 쓰는 동안만큼은 훈련원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러한 정신의 휴식은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맑은 정신으로 훈련원 일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떤 일에 집중하는 것은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아 잡념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내가 하는 일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훈련원 건축을 하다 보면 사업 허가나 도로포장 등을 위해 이웃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평소 왕래가 없던 이웃에겐 거절을 당해도 서운한 마음이 덜하지만, 작년 추수감사절에 와인을 선물했던 이웃이 거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와인까지 선물했는데도 불구하고 허락을 안 해주다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선행이 오히려 큰 죄업을 짓게 되는 경우’이고, 불가에서 무상보시(無相布施·베풀었다는 관념과 상이 없는 것)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모두가 은혜이니 보은하는 것은 당연하고, 인과로 보면 베푸는 것과 갚는 것이 둘이 아니다. 필자같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때로는 정신, 육신, 물질로 보시할 경우가 생긴다. 보시할 때, 은혜를 베푼 후에 관념과 상을 놓으려 하기보다 은혜에 보답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마음은 비우면 편안해지고 밝아진다. 불교 공부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결코 과언이 아니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 교무·원불교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미덕 훈련원 걱정 훈련원 건축 원불교 신문사
2022.08.29.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