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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도 한인이고 한인 사회 일원”

80대 시니어가 사업을 시작했다. 돈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용기 있는 도전의 주인공은 ‘한인사회의 어른’으로 불렸던 고 민병수 변호사의 아내 캐롤 민(81) 여사다. 민 여사는 지난 2023년 민 변호사 타계 전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한인 사회와 함께했던 인물이다. 40여 년 전 남편이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를 설립해 무료 변론 활동을 펼치고, LA폭동 때 한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설 때도 늘 옆에 있었다.   민 여사는 피부색은 달라도 자신을 한인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남편은 떠났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민 여사가 시작한 사업은 유아용 침구·의류 제작 업체다. 업체 이름은 ‘민즈윔즈(MinzWhimz)’.     민 여사를 만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근황, 민 변호사와의 추억 등을 들어봤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려서 어머니, 할머니가 옷이나 이불을 만드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 영향인지 항상 새롭고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또 바쁘게 살면서 활력을 얻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과거 유아용 옷이나 침구류를 한두 개씩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었는데 그분들이 사업 아이템을 추천해 주셨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침구류의 경우, 베개와 이불을 만든다. 동물이 주인공인 동화책 하나를 선정해 해당 동물에 맞는 침구류를 디자인한다. 의류로는 상의, 하의, 모자 등을 만들고 있다. 의류의 경우는 동화책의 동물과 상관없이 만들고 있다. 손주를 위해서도 옷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사실 시작한 건 1년 반 정도 됐다. 본격적으로 홍보를 한 건 지난해 11월부터다. 며느리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홍보를 도와주고 있다. 그 전까지는 판매가 대부분 입소문을 통해 이뤄졌다.”   -제품은 어떻게 만드나.   “가내수공업 형태다. 원단을 직접 사 다 집에서 만든다. 원단 구매는 집 근처 업소도 이용하지만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많이 한다. 집에는 재봉틀이 3개나 있다. 제작 속도를 높이고자 재봉틀 2개를 한 번에 돌릴 때도 있는데 가급적이면 급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반응은 괜찮은지.   “생각보다 잘 팔려서 놀랐다. 아직은 지인들과 주변 소개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지인을 통해 연락이 온 한 여성은 바지와 상의 9세트를 사 가기도 했다.”   -사업의 목표가 있나.   “수입이 주목적은 아니다. 내 제품과 비슷한 게 시중에서는 80달러인데 나는 그 절반도 안 되는 35달러 수준에서 판매한다. 이 일이 즐겁고 바쁘게 사는 게 좋아서 하는 것이다. 또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민 변호사님이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지났다.   “아주 그립다. 아직도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고 그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을 들을 때면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가 생전에 클래식 음악을 많이 소개해줬다. 남편과 나는 오페라 아리아곡을 특히 좋아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나 아리아곡은 아니지만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를 즐겨 들었다. 또 남편이 손녀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아주 아쉽다. 남편이 작고할 당시 생후 100일 됐던 손녀가 벌써 2살이 됐다.”   -한인타운엔 자주 오시는지.   “LA 한인타운과 한인 사회 모두 그립다. 사실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 대부분이 한인이다. 그들과 만나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냈던 한인타운이 그립다. 차가 없어서 한동안 한인타운에 가지 못했었는데 지금도 잊지 않고 사람들이 불러줘서 감사하다.”   -기억에 남는 한인 사회의 일은.   “1992년의 LA폭동이다. 당시 라 브레아에 살았었다. 한인타운에서 난 불길이 집에서도 보였다. 남편을 비롯해 한인 변호사 11명이 피해 업주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남편과 한인 변호사들이 한인 피해자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며 최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인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가 정말 크다. 많은 것에 고맙고 나 스스로 한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한인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와 남편을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한인 사회가 남편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민즈 윔즈 문의 :[email protected]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한인 일원 한인 사회 한인 피해자들 민병수 변호사

2025.02.0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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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시의회 고 민병수 변호사 평생업적상 전달

 'LA 한인 커뮤니티의 대부' 고 민병수 변호사를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LA시의회에서 진행됐다.  LA시의회는 31일 오전 10시 시의회장에서 고 민병수 변호사의 업적과 활동을 소개하고 공로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또 미망인 캐롤 민 여사를 초대해 평생업적상을 전달했다.   이날 행사는 헤더 허트 시의원(10지구)과 존 이 시의원(12지구)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특히 이 시의원은 이날 행사를 위해 밸리 지역에서 진행한 다른 행사를 서둘러 마치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의원은 시의회장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리더였던 민병수 변호사를 LA시의회에 소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그의 커뮤니티를 사랑하는 마음과 활동이 후손에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 여사는 "남편은 한인 이민 선조들의 이름을 딴 공립학교를 3곳이나 세우고 미주 한인의 날이 제정되도록 기여하는 등 많은 일을 해왔다"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기쁘다. 그는 비록 이곳에 없지만 LA시의 발전을 누구보다 바라고 함께 할 것"이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고 민병수 변호사와 함께 학교이름 명명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알렉스 차 한인축제재단 이사장, 홍연아씨, 선거구재조정 캠페인을 함께 한 지미 채씨를 비롯해 초등학교 제자, 1세 및 2세 한인 등 20여명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평생업적상 la시의회 민병수 변호사 한인 커뮤니티 한인축제재단 이사장

2024.05.3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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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민병수 변호사 ‘평생업적상’

한인 커뮤니티 봉사에 앞장섰던 고 민병수(사진) 변호사의 1주기를 앞두고 LA시의회가 고인의 유가족에게 평생업적상을 전달한다.   LA시의회는 아태 문화유산의 달인 5월을 맞아 오늘(31일) 오전 10시 시의회장에서 고 민병수 변호사의 업적을 알리고 공로를 기리는 행사를 갖는다. 이날 행사에서는 미망인 캐롤 민 여사가 유가족을 대표해 참석해 평생업적상을 전달받는다.   고 민병수 변호사는 LA 지역에 한인 이민 선조들의 이름을 딴 공립학교를 3곳이나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연방과 캘리포니아 주 정부 및 로컬 정부에서 매년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선포하는 데 앞장섰다. 또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한미연합회(KAC), 한미변호사협회(KABA) 등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평생업적상 게시판 민병수 변호사 한인 커뮤니티 한인 이민

2024.05.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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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고 민병수 변호사의 미완성 프로젝트

고 민병수 변호사에 대한 첫 기억은 묘지가 시작이다. LA한인타운 인근 워싱턴 불러바드에 있는 ‘안젤루스 로즈데일 묘지’가 기억의 장소다.   민 변호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몇몇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한인 이민 선조들이 묻혀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주한인재단이라는 이름의 비영리재단을 세우고 ‘미주 한인의 날’ 제정에 성공한 민 변호사가 생각해 낸 또 다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민 변호사와 함께 한 일행들은 그가 늘 ‘친구’라고 부르던 한인 1.5세와 2세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LA통합교육구에서 커뮤니티 담당관으로 일하던 홍연아씨와 알렉스·마가렛 차 변호사 부부, 베렌도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존 공, 윌튼플레이스 초등학교 교사였던 린지 이, 그 외에 애나 정, 안드레아 나, 토니 등이다.     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달려오는 ‘친구’들의 빈 속을 위해 민 변호사는 늘 삶은 달걀과 구운 고구마 등을 챙겨왔다. 그리고 정오가 될 때까지 함께 쭈그려 앉아 묘비명을 확인하고 한인 이름을 찾으면 위치를 기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들은 그렇게 일제 강점기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동지회의 이순기씨와 김영옥 대령 부모의 묘지 등을 찾아냈다. 이순기씨는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새미 리 박사와 한인 첫 여성 교육자인 메리 손 여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또 그동안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한인 독립유공자들의 묘비를 발견해 그들의 유해가 한국 현충원으로 옮겨지는 길을 마련했다.   민 변호사가 로즈데일 묘지에 그렇게 공을 들인 건 그곳에 묻혀 있는 한인 선조들 때문이다. 민 변호사는 늘 이민 초창기 인종차별로 인해 죽어서도 갈 곳이 없던 한인들을 유일하게 받아주던 로즈데일에 있는 한인 선조들을 후손들이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곤 했다.   대한인국민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곳에는 280여 명의 한인 선조들이 잠들어있다. 앞에 언급된 인물들 외에 재미한인사약 상·중의 저자 노재연, 강익두, 김관유, 김중수 목사, 마춘봉, 박리근, 윌리 송, 멕시코에 이민을 갔다가 미국으로 온 후 100세 장수를 누린 선우 로사, 임준기 목사 등이 있다.   민 변호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민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자세히 남기려 애를 썼다. 그는 종종 “이야기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인 선조들의 이야기가 곧 한인 이민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20년을 맞은 한인 이민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곧 한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누가 상상했겠는가. 1세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 한인 후손도 반드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날을 보지 못하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인 선조들이 묻힌 위치를 기록한 묘지 지도를 남기는 이 프로젝트는 간단한 것 같았지만 끝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넓은 곳에 묻혀 있는 한인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주말마다 묘지에 가서 말 그대로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하는 탓에 1세들의 참여는 미미했다. 그런데도 민 변호사는 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꾸준히 혼자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민 변호사가 고인이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지난 1일 별세한 민 변호사의 추모예배가 남가주새누리교회에서 지난 10일 진행됐다. 유족과 친지를 제외하면 한인 조문객은 1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항상 앞장서 봉사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의 업적과 공로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큰 이별이었다.     그의 희망과 비전이 실현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민 변호사는 떠났지만 그의 바람대로 한인 사회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 속에서 잊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프로젝트 민병수 한인 이민사 민병수 변호사 변호사 부부

2023.06.1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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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버팀목 떠났다

한인사회의 버팀목이 떠났다. 지난 1일 별세한 고 민병수 변호사의 추모 예배가 지난 10일 오전 10시 LA의 남가주새누리교회에서 엄수됐다.   이날 추모예배는 김영완 LA 총영사를 비롯해 강석희 연방조달청 북서부지부 총괄행정관, 박병철 에베레스트트레이딩사 회장, 태미정 류, 앤 박 판사,  류영욱 한인커뮤니티변호사협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을 시작으로 ‘주기도문’ 피아노 연주, 조가 등으로 진행된 추모예배는 지난 60여년간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애쓰며 일했던 활동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선행 등을 알리는 시간으로 꽉 채워졌다.   예배를 집전한 제임스 이 목사는 “민병수 변호사는 내가 젊은 시절 저지른 실수로 법률 도움을 받아야 했을 때 옆에서 도움을 주고 새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라며 “이렇게 고인의 떠나는 길을 함께 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자신의 간증을 들려줬다.   김영완 총영사는 추모사에서 “민병수 변호사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나침반이었다. 살아계시는 동안 한인들의 권익 보호와 정치력 성장을 위해 앞장서셨던 시민 운동가이자 우리 모두의 변호사였다”며 애도했다.   전 한미민주당협회장이자 변호사인 해나 김씨는 조사에서 “고인은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를 도와야 한다며 누구보다 2세에게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시간을 할애하셨던 분”이라며 “무엇보다 4·29 LA폭동이 발생했을 때는 몇몇 커뮤니티 변호사들과 함께 사재를 털어 미주한인법률재단을 설립하고 폭동 피해자를 위해 무료 변론을 하셨을 만큼 커뮤니티를 사랑하시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전했다.   강석희 총괄행정관은 “민병수 변호사는 미국에 도착한 이후 오늘까지 한인사회를 위해서 그의 모든 정열을 바치시며 평생을 헌신하신 진정한 이 시대의 어른이자 선구자”라고 고인과의 이별에 안타까워했다.   이어 “지난 25년간 나의 정치 역정에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으로 지극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 “2004년 처음 어바인 시의원에 출마했을 때도 장거리를 운전하고 오셔서 함께 홍보물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유세를 도와주셨다. 그분의 진정성을 믿고 유권자들이 투표해준 덕분에 어바인의 첫 아시안 시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가주의 첫 한인 여성 판사인 태미 정 류 판사는 “민병수 변호사는 언제 어디서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마다치 않았다. 그분의 추천과 지지로 많은 정치인과 법조인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조객들 "봉사 몸소 보여준 분"     그레이스 유 변호사는 "그분은 봉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걸 가르쳐주신 분이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후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아버지인 고 민희식 초대 LA 총영사를 따라 가족과 함께 LA에 왔다. 197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한인으로는 세 번째, 남가주에서는 두 번째 변호사로 합격한 후 48년간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한인 커뮤니티의 대들보이자 맏형 역할을 마다치 않던 그는 1983년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를 설립했으며, 현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의 전신인 한인청소년센터(KYC) 이사(1975~83년)로 있으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LA카운티 산하 법률위원회 첫 한인 커미셔너(1983~87년)이기도 했으며, LA폭동 이후에는 한미법률재단(KALAF) 회장을 맡아 폭동 피해 업주들을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 미주 한인의 날 제정과 한인타운 내 찰스 김 초등학교(2006년), 김영옥중학교(2009년), 새미리초등학교(2013년) 이름 명명에 앞장섰다. 또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 초대 회장( 2010년), 애국동지회 고문(2013년)을 역임하며 한인 사회에 공헌했다.     한편 고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화장됐으며 장지가 결정되는 대로 묻힐 예정이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민병수 변호사 민병수 변호사 커뮤니티 변호사들 이날 추모예배

2023.06.1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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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민병수 변호사 장례식, 10일 오전10시 새누리교회

고 민병수 변호사의 장례식이 오는 10일(토) 오전 10시에 남가주새누리교회 새성전(964 S. Berendo St., LA)에서 진행된다.   고인은 최근 폐렴과 바이러스 감염 증세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병세가 악화해 자택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뜻에 따라 연명 치료를 받지 않고 지난 1일 오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한편 LA한인회(회장 제임스 안)는 1일 “우리 시대 가장 존경하는 큰 어르신이 떠났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한인회는 성명에서 “민 변호사님은 한인 커뮤니티 초창기인 1960년대부터 다양한 한인 단체에서 활동하시며 커뮤니티의 발전과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 오신 민권운동의 대부”라며 “특히 4·29 폭동과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 소녀상 건립, 한인타운 선거구 재조정 등 한인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앞장서며 ‘봉사’가 무엇인지 몸소 후세들에게 가르쳐 주신 우리 시대 큰 스승이었다”고 애도했다.   ▶연락:(213)447-5475, [email protected] 장연화 기자새누리교회 민병수 민병수 변호사 남가주새누리교회 새성전 한인 커뮤니티

2023.06.06. 21:04

[삶과 추억] 고 민병수 변호사…'한인커뮤니티 사랑' 기여와 봉사로 실천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대들보이자 맏형이 떠났다.     1일 오전 향년 90세로 타계한 민병수 변호사는 최근 폐렴과 염증 등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생활을 해왔지만 지난주부터 병세가 악화됐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유족 측은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민 변호사는 초대 교통부 장관이며 LA 1대 총영사였던 민희식(1895~1980년) 선생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3 때인 1948년 LA에 도착한 그는 라번 대학을 졸업해 교사로 일하면서 글렌데일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5년 변호사가 됐다.   한미변호사협회(KABA)를 창설하고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 민주당 대통령 자문위원을 지내는 동안 한인 커뮤니티의 각종 현안을 백악관에 직접 건의했다.     LA폭동이 발생한 1992년 말 민 변호사는 KABA 산하 한인법률권익재단을 통해 피해를 입은 업주들을 대리해 시 정부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2년 만에 마무리된 이 소송은 LA시가 피해 업소당 2만 달러의 손해배상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는데 당시 소송에 끝까지 남아 있던 한인 업주 10명이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러한 결과는 민 변호사와 한인법률권익재단의 노력과 업주들의 지지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LA미주한인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2003년에는 LA시와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와 연방 정부가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 선포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직접 작성한 미주 한인의 날 결의안은 지금도 매년 주 의회와 LA시, LA카운티 의회장에서 낭독되고 있다.     남가주에 한인 이민선조들의 이름을 딴 공립학교가 3곳이나 탄생할 수 있던 것도 그의 공헌이다. 이는 2020년 본지의 특별 시리즈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을 통해 비친 한인사회 이야기를 남긴 그가 유일하게 자랑했던 프로젝트다.   민 변호사는 당시 LA통합교육구(LAUSD)가 학교 신축 붐을 타고 옥스퍼드와 2가에 신축된 초등학교 이름을 ‘찰스 H. 김 초등학교(Charles H. Kim Elementary School)’로 명명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윌셔와 샤토가에 세워진 중학교 이름을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붙인 ‘김영옥 중학교(Young Oak Kim Academy)’로 명명하는 데 성공했다, 또 2013년에는 버몬트와 버질 애비뉴에 세운 의료 매그닛 초등학교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의사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붙인 ‘닥터 새미리 매그닛(Dr. Sammy Lee Magnet)’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의 이름을 딴 초·중·고등학교를 미국에 세우는 건 명실공히 100년 앞을 내다본 교육 프로젝트다. 한인 이름을 명명한 학교가 줄줄이 탄생하자 타 아시안 커뮤니티도 한인 커뮤니티를 부러워했다.   2012년 4개 선거구로 쪼개진 LA한인타운을 단일화하는 캠페인이 진행될 때도 그가 있었다. 당시 암으로 안구를 적출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기였지만 민 변호사는 검은 안대를 착용하고 LA시 공청회에 참가해 단일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발언을 남겼다.   약 50년간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에 있었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해 왔지만 스스로 “다수보다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다”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민 변호사는 2011년 안구 암으로 한쪽 눈을 적출한 후 다른 부위에도 암이 재발해 수차례 걸쳐 큰 수술과 방사선 치료 등을 받으면서도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 활동을 마다치 않았다.     그의 마지막 봉사활동은 지난달 6일 한인변호사협회(KABA)와 LA센트럴라이온스클럽에서 ‘법의 날’을 맞아 한인타운에서 진행하는 무료 법률상담 세미나를 알리는 홍보 활동이었다. 그는 두 달 전쯤 다리에 발생한 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홍보 요청에 아픈 다리를 끌고 참여했을 만큼 한인 커뮤니티를 사랑했다.     유족 측은 장례 일정이 나오는 대로 추후공지할 예정이다.   ▶연락:(213)447-5475 캐롤라인 심, (626)274-8311 캐롤 민     장연화 기자민병수 변호사 민병수 변호사 선거구 필요성 한인 커뮤니티

2023.06.0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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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모두의 변호인 민병수 변호사 타계

‘남가주 한인사회의 어른’ 민병수 변호사가 1일 오전 8시 별세했다. 향년 90세.   민 변호사는 최근 폐렴이 악화해 치료를 받아왔다.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아버지인 고 민희식 초대 LA총영사를 따라 가족과 함께 LA에 왔다. 197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한인으로는 세 번째, 남가주에서는 두 번째 변호사로 합격한 후 48년간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한인 커뮤니티의 대들보이자 맏형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그는 1983년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를 설립했으며, 현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의 전신인 한인청소년센터(KYC) 이사(1975~83년)로 있으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LA카운티 산하 법률위원회 첫 한인 커미셔너(1983~87년)이기도 했으며, LA폭동 이후에는 한미법률재단(KALAF) 회장을 맡아 폭동 피해 업주들을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매년 5월 1일 법의 날을 기해 한인들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을 38년동안 진행해왔다.   2004년 미주 한인의 날 제정과 한인타운 내 찰스 김 초등학교(2006년), 김영옥중학교(2009년), 새미리초등학교(2013년) 이름 명명에 앞장섰다.   또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 초대 회장( 2010년), 애국동지회 고문(2013년)을 역임하며 한인 사회에 공헌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2001년), 재미동포 첫 대한민국 법률대상(2009년), 세계한인검사협회 주최 평생공로상(2018년),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 주최 개척자상(2018년) 등을 수상했다. 관계기사 3면   유족으로는 부인 캐롤 민씨와 장남 크리스 민, 차남 티모시 민씨가 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변호인 민병수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 주최 민병수 변호사 변호인 민병수

2023.06.0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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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수 변호사 구순 축하연

'남가주 한인사회의 어른' 민병수 변호사의 구순 생신 축하연이 지난 5일 용수산에서 친지와 커뮤니티 관계자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민 변호사가 교사 시절 가르친 제자들이 참가해 의미를 더했다. 또 민 변호사가 미주 한인의 날 제정과 한인 학교 이름 명명, LA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 활동 등을 함께 한 타운 관계자들과 세계한인교육자협회(IKEN) 관계자들 외에 마이크 퐁 가주하원의원, 하워드 함 판사 등이 참석했다.   민 변호사가 5학년 때 담임이었다고 밝힌 윌리엄 시아스(54) 변호사는 "민 변호사님은 학생 한명 한명에게 세심하게 신경 써주던 선생님"이라고 기억을 들려줬다.   시아스 변호사는 이어 "오랜만에 찾아가 법대 진학 추천서를 부탁했을 때에도 흔쾌히 써주신 걸 잊지 못한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계셔서 감사하다"며 "선생님의 길을 따라가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인사했다.   이날 행사는 민 변호사와 함께 활동한 1.5세 후배들이 준비하고 박병철 에베레스트 트레이드사 회장이 후원했다. 박 회장은 이날 민 변호사 자서전 발간을 위한 기금모금을 주도해 약 6500여 달러를 모금했다.   박 회장은 "민병수 변호사는 한인 커뮤니티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했다. 그분의 업적을 알리는 자서전이 나와 2세들에게 남겨지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민 변호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는데 많은 분이 기억해 줘 기쁘고 감사하다. 남은 시간도 2~3세들과 커뮤니티를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민병수 변호사 민병수 변호사 변호사 자서전 어른 민병수

2023.03.0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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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수 변호사 '89세 생일'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남가주 한인사회의 어른' 민병수 변호사의 89세 생신 축하 이벤트가 지난 12일 커뮤니티 관계자들과 가족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민 변호사와 함께 한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1.5세 한인들이 구순을 앞두고 마련했다. 행사 장소를 위해 에베레스트 트레이딩사의 박병철 회장이 자택을 오픈했고 민 변호사와 함께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 미주 한인의 날 제정 한인 학교 이름 명명 LA한인타운 선거구단일화 활동 등을 함께 한 타운 관계자들과 앤 박 판사 하워드 함 판사 등 법조인들과 미셸 박 연방하원의원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박 회장은 "민병수 변호사는 커뮤니티의 어른이다. 팬데믹을 건강하게 잘  이겨내주셔서 감사하다. 내년에도 또 후년에도 계속 이 자리에서 만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셸 박 의원은 "그분이 보여주신 커뮤니티 활동과 남겨주신 발자취는 1.5세 2세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저도 그분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가겠다.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민 변호사는 "젊은 친구들이 이런 자리를 준비해줘 민망할 뿐이다. 한인 커뮤니티 활동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커뮤니티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힘이 남아있는 한 계속 도울 것"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장연화 기자민병수 변호사 민병수 변호사 어른 민병수 한인 커뮤니티

2022.03.1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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