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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반려견과의 불편한 식사

LA 한인타운에서 가끔 찾는 식당에서 우연히 ‘불편한 식사’를 했다.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일 점심 시간이라 붐비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손님이 강아지를 데려왔다. 맹견은 아니었지만 키가 큰 종이라 작은 식당 내부에서 모든 손님들이 보게 됐다. 하얀 털에 귀여운 짓이라도 하는지 연신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 큰 강아지가 식당 종업원에게 안기기도 하고, 여기저기 냄새도 맡으면서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됐다. 강아지의 털이 여기저기 날렸지만 친절했던 종업원은 이내 그대로 쟁반을 들고 테이블에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것인지 불편했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려서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신기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충직하고 순수하고 바보처럼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를 보노라면 큰 즐거움과 기쁨이 앞섰다. 잠도 같이 자고 음식도 나눠먹으면서 연대를 나눈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은 다르지 않나.   조그만 강아지를 캥거루 새끼처럼 가슴에 품거나, 이동용 가방에 넣었다고 해도 결국엔 마찬가지다. 일부 견주들은 식당 음식을 몰래 강아지들에게 먹이거나, 물을 먹이게 종이컵을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지나친 행동이다.   식당 업주가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한다. 보건국에서도 이를 심각한 위반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수백 달러의 벌금에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견들의 식당 출입은 두 가지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먼저 보조견 또는 서비스 동물(Service Dog)일 경우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시각 장애인 또는 정신 건강과 치료를 위해 법적으로 허용한 경우다. 이 조건에 해당해도 동물의 식당 내 음식물 섭취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식당 자체가 개방되어 있는 경우다. 해당 업소와 패티오 공간이 애완견 또는 동물에게 허용된 공간이라는 것을 미리 고지하고 있다면 입장이 가능하다. 이렇게 애완견을 허용하더라도 테이블 위나 의자 또는 식기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들은 식당문이 아닌 패티오에 따로 마련된 입구를 이용해 출입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도 종업원들은 패티오의 개와 접촉할 수 없다. 귀엽다고 쓰다듬거나 껴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해당 식당을 이용한다면,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애완견들과 고양이들을 손님으로 보는 애견카페 같은 식당들도 생겨나고 있다.   LA와 OC 한인타운 주요 한식당들은 위생 규정을 이유로 애완견들의 입장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식당 입구에 고지하고 있다. 아예 밖에 묶어 놓도록 한다든지 차에 두고 오라는 메시지가 담기기도 한다.   고급 식당이건 그렇지 않은 식당이건 손님들의 위생과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만큼 타인들의 위생과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손님을 받기 위해서 모른 척 강아지 출입을 눈감아 주는 업주나 종업원들의 태도도 문제다. 누군가 신고를 한다면 티켓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혹시 방문한 식당에서 애완견을 보게 된다면 귀엽다고 만지지 말고, 규정에 따르라는 조언부터 해줘야 좋은 견주가 아닐까.   애완견을 키우면서 오랜 시간 함께 하자는 약속만큼이나, 타인에게 배려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람들 사이에서의 약속도 지켰으면 한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반려견과 불편 고급 식당이건 식당 종업원 강아지 출입

2025.05.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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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예약도 마비”…사회보장국 개편에 시니어들 생활비 못 받아

사회보장국(SSA) 인력 축소로 인한 서비스 차질로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시니어와 장애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정부 효율부(DOGE)’의 자문하에 단행된 SSA 구조조정으로 행정적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LA타임스는 약 15분이면 끝났던 전화 상담이 이제는 아예 연결조차 되지 않아 종일 전화를 붙들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9일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시니어와 장애인들은 건강에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SSA는 전체 인력의 12%에 해당하는 7000명을 감원하고, 10개 지역 본부를 4곳으로 통합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SSA는 “과다한 조직 규모를 줄이기 위한 개편”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장에서는 서비스 질이 후퇴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온라인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은 오류가 잦고 QR 코드로 접속해도 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LA에서 시니어를 위한 무료 진료·의료 지원 단체를 운영 중인 게보르크 아지안 대표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시니어들이 온라인 로그인조차 못 해 생활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면 서비스는 사라졌고, 예약은 몇 달 후에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9일 정오쯤 둘러본 LA 한인타운 내(윌셔 불러바드와 윌튼 플레이스) SSA 사무실 앞에도 3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SSA 사무실을 방문한 김모(LA·71) 씨는 “올해부터 SSA 방문이 예약제로 바뀌면서 정해진 시간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편리했다”며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인력 감축 탓인지 예약을 해도 대기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장애인 권익 단체 연합체인 AAPD(미국 장애인 협회)를 비롯한 일부 단체들은 트럼프 대통령, 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  리랜드 두덱 SSA 국장 대행을 상대로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소장에서 “불과 9주 만에 기관의 핵심 기능을 붕괴시켰으며, 수백만 명의 수혜자가 필수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AAPD의 마리아 타운 대표는 “트럼프 취임 전에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고, 2023년에는 약 3만 명이 사회보장장애보험(SSDI) 승인을 기다리다가 숨졌다”며 “지금은 신규 신청자뿐 아니라 기존 수혜자조차 서비스 접근이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SSA 홍보실 측은 X(구 트위터) 등을 통해 “전화 대기 시간이 길고, 웹사이트 운영에 일부 문제가 있지만 이는 현 정부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슈”라며 “대면 서비스 직원들은 해고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민 서비스 강화를 위해 비핵심 업무를 줄이고 직원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3월 SSA가 발표한 온라인 신분 확인 의무화 정책도 스마트폰이나 이메일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들에게는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SSA는 종이 수표 발급의 중단도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 의료계에서는 실제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효율성만 강조해 벌어지고 있는 사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응급의학 전문의 스티븐 카니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예산에 낭비가 있다는 건 누구나 동의하지만, 도려낼 땐 칼이 아니라 섬세한 메스를 써야 한다”며 “시니어들의 디지털 접근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불편 장애인 서비스 장애인 협회 장애인 권익

2025.04.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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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여행의 불편함은 재미다

여행이란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문화와 생활에서 탈출하여 낯선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여행지에 가면 음식 문화의 차이나 생활 관습 등에서 오는 생소함으로 인해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다. 사실은 그 불편함 역시 새로운 경험이다. 이것은 여행의 또 다른 유익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은 내 인생에서 경험의 폭을 넓혀주고 편견의 벽을 허물어 준다. ‘집 나서면 고생’이다 라는 말이 우리 속담에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속담에는 ‘집을 나서보지 않은 사람은 편견의 덩어리다’라는 말이 있다. 또는 ‘귀한 자녀일수록 여행을 보내라’는 말도 있다.   내 인생에서 첫 비행기를 탄 경험은 40여 년 전 20대 초반 김포발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다. 식사 시간에 앞 테이블을 펴는 것조차 새로웠다. 촌스런 내 행동이 들킬까 옆 사람의 행동을 살짝 살짝 봐가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뒤편 좌석에서 갑자기 “팽!” 하고 코 푸는 소리가 났다.   ‘누가 식사 시간에 이렇게 몰상식하게 더러운 소리를 내며 코를 풀었나’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소리가 난 뒷자리에는 전혀 경망스럽게 보이지 않는 노랑머리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참 교양 없게 자랐나 보군’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또 다른 옆에서 “패엥!” 하고 소리가 났다. 더 큰 소리였다. 이번에는 코 큰 신사양반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코를 푼 것이다.   ‘허 참! 이들은 왜 이리 교양 머리 없이 이럴까?’ 생각하며 역시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이런 데서 표시가 나는가보다고 혼자 착각을 하며 미국으로의 첫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1988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이탈리아 중부 페루지아라는 도시의 한 대학에서 수업을 받을 때였다. 겨울철 습도가 높고 몹시 추웠던 첫해 콧물 감기로 고생을 했었다. 주기적으로 흘러내리는 이 콧물을 주체할 길이 없어 소리 내지 못하고 훌쩍거리며 될 수 있으면 남들에게 실례가 안 되게 하려고 콧물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아뿔싸! 그런데 이 미세한(나한테는) 훌쩍이는 소리에 왜들 이렇게 민감한지 20여 명의 클래스에 모든 급우들과 강의중이던 교수님까지 놀라는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수업을 마친 후 한 친구에게 왜들 그렇게 나를 쳐다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깔깔대고 한참을 웃어대더니 “너 그 더러운 콧물 들이마시고도 너하고 키스하는 애 있니?”하고 묻는 거였다.     나중에 보니 아프리카인이나 유럽인, 중동인 모두가 콧물은 힘차게 소리를 내서라도 풀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만 그 소리가 실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콧물 훌쩍이는 게 얼마나 미개한 짓이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을 하면 얼굴이 후끈거리는 것 같다. 콧물은 풀어 내야 깨끗한 것이 맞다.   불가리아에서의 일이다. 버스로 단체 관광객들을 인솔할 때였다. 호텔에 도착할 시간쯤 되었을 때 앞에 호텔이 하나 나타났다. 버스기사에게 저 앞에 보이는 호텔이 우리가 묵을 호텔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앞으로 끄덕이면서 “네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손님들에게 저 앞에 보이는 호텔이 우리가 가는 호텔이고 이제 곧 내려야 하니 준비하자고 안내 방송을 했다.     그런데 버스는 그 호텔 앞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버스 기사에게 저 호텔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역시 “네네” 라고 대답했다. 불가리아에서는 No가 ‘Ne’이였던 것이다. 고개도 앞으로 끄덕이면 부정의 답이란다.     이 혼란스러움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리라.   엘리베이터가 너무 작다느니 침대를 만들다가 말았다느니 이런 사소한 불편을 감수하는 여행은 경험 폭을 넓혀 주고 편견의 폭을 줄여 준다. 여행을 할 때는 익숙한 것, 내 입맛에 맞는 먹어본 음식, 익숙한 곳만을 찾아다니지 말고 생소한 곳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재미일 것이다. 남봉규 / 미래 관광 대표열린광장 여행 불편 첫해 콧물 이탈리아 속담 식사 시간

2025.04.0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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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친절은 불편을 동반한다

동네 헬스클럽에 사람이 붐빈다. 매서운 아침 추위에도 운동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수영장 줌바 클래스가 시작되는지, 라커룸에 덩치가 커다란 중년 여자들이 가득하다. 락커 룸은 만남의 장소다. ‘딸 식구들과 할리데이 같이 지냈어.’ ‘크루즈 다녀왔어.’ ‘체크 업 갔더니 닥터가 어쩌꾸저저꾸….’   수영장 벽에 그려진 빨간 문어가 나를 반긴다. 그 옆에 그려진 연두색 거북이가 웃고 있다. 나는 배영을 좋아한다. 배영은 누워서 가므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딴생각하고 마냥 가다가 레인 끝에 있는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꽝 부딪쳤다. 얼마나 아팠는지 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끝나기 2m 전에 공중에 쳐진 깃발을 주시한다. 수십 개의 자잘한 깃발이 한 줄로 늘어져 있다. 이 지점을 지나면 두 팔을 머리 뒤로 뻗치고 천천히 들어간다. 두 손에 벽이 닿는 순간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지난해 어느 날, 배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깃발을 지나고 끝까지 거의 왔다. 곧 뒤로 뻗친 팔에 단단한 콘크리트가 만져지겠지. 그런데 갑자기 흐물거리는 것이 내 머리에 닿았다. 나는 놀라서 허우적거리며 몸을 뒤집었다. 똑바로 서서 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내 머리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오시는 분이다.     “네가 머리 부딪힐까 봐 걱정돼서….” 그분이 말했다. 나는 팔을 뒤로 뻗치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며칠 후, 노인은 또 벽에 손을 대고 계셨다. 나는 다시 한번 중심을 잃었고, 의아함이 밀려왔다. 분명히 괜찮다고 말했는데… 노인들은 항상 걱정이 많지 않나. 내가 말한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이자.     오늘은 연휴에 찐 살을 빼기 위해서 그런지 레인마다 두 사람이 들어가 있다. 물개처럼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레인의 폭은 2m 정도다. 원래 혼자 하면 제일 좋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한 사람이 1m 정도 차지하면 두 사람은 같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다. 돌아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머뭇거리며 잠시 서 있었다. 누가 나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 찬 바람에 나왔는데, 돌아가기에는 억울하다. 답답한 마음으로 사방으로 튀는 물거품을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물속에 있던 어떤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기 레인에 들어오겠냐고 묻는다. 세 사람이라서 타원형으로 돌아야 한다고 한다. 세 명이 한 레인에서 도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특히 나는 천천히 하므로, 뒤에 오는 사람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얼른 답했다. 고맙다고 들어가겠다고.     두 여자와 거리를 살피면서 레인을 돌기 시작했다. 나 같으면 들어오라고 했을까? 절대로 안 했을 것 같다. 먼저 차지한 것에 만족하면서 멋쩍게 서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내 수영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날이 매우 찼다. 수영장 물은 더욱 따뜻했다. 나는 먼저 보드를 잡고 몸을 풀었다. 자유형이 제일 숨이 차다. 몇 바퀴를 돌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남자가 관람석에 앉아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모른 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제 받은 친절이 생각났다. 감격하면서 감사했던 것도….   “제가 5분 후에 나가니 이 레인을 쓰세요.” 마음속 갈등과는 다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젊은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의 새해 희망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절도 자꾸 연습하면 몸에 밴 습관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를 잡아주던 배려심 많던 할아버지가 요즘 보이지 않는다. 자녀 집에 방문 중인가? 혹시 아프신가? 아니면 노인 홈에라도 들어가셨나? 뜬금없이 그분이 생각났다. 나는 라커룸으로 향하면서 수영장을 둘러보았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친절 불편 마음속 갈등 중년 여자들 연두색 거북이

2025.01.14. 20:24

[‘열쇠 구멍’으로 본 한인타운] 불경기라는데…‘불편한’ 호황

LA 한인타운은 역설의 공간이다. ‘옛것’과 ‘새것’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열쇠집도 마찬가지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접점을 이루는 현장이다. 그곳엔 생기가 돈다. ‘열쇠’에는 한인타운의 사연이 얽혀 있다. 열쇠공은 타운의 생기를 경험하고, 타운이 안고 있는 숙제를 동시에 체감하는 직업이다.   LA 내 차량 절도는 계속 증가하고, 주택 관련 범죄 역시 늘고 있다. 자연스레 도어락을 강화하길 원하는 수요 역시 많아지고 있다.   최근 버몬트 애비뉴의 가보락스미스(이하 가보열쇠)를 찾아가 봤다. 불경기는 가보열쇠와는 무관하다. 열쇠에 대한 수요는 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년 차 열쇠공 이강윤(70) 사장의 시선으로 LA 한인타운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춰봤다.   “위이이잉” 오후 3시, 열쇠 복사기 톱날 돌아가는 소리가 버몬트 애비뉴 상가를 가득 채운다. 출장을 나간 이강윤(70) 가보열쇠 사장이 비운 자리는 아내 이정희(65) 씨가 대신 지켰다.   열쇠고리를 구입하러 온 한인 2세부터 차고 리모컨 수리를 맡기러 온 중년 여성까지 이곳에는 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열쇠 2개를 복사하는데 100달러 지폐를 내밀던 한 할아버지는 가보열쇠의 단골이란다.   LA 한인타운의 열쇠 수요는 많다. 아내 이 씨는 “LA는 머무르다 떠나는 도시”라고 말했다.   굳이 고급 기술을 주택에 접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는 최근 공론화되고 있는 ‘캘리포니아 엑소더스(California Exodus·캘리포니아 대탈출)’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부푼 꿈을 안고 발을 들인 도시에 좌절을 겪고 가주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을 일컫는다. 특히 이민자들에겐 정착 여부도 불투명한 마당에 수백 달러를 들여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할 필요가 없을터다.   “빨리 좀 와주세요!”   열쇠집에 있다 보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열쇠를 깜빡하고 집을 나와 이 사장을 찾는 한인들의 요청이다. 열쇠를 집안에 둔 채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든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열쇠가 없는 경우도 있다. 부엌에 가스 불을 켜고 나온 경우는 긴박감이 더해진다. 책임감과 분초를 다투는 신속함을 갖추는 게 열쇠공이 갖춰야 할 자질이라고 이 사장이 믿는 이유다.    이 사장은 “출장 문의 전화에 신속하게 답하고 최대한 빨리 현장에 도착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열쇠고리를 도난당해 소유하던 차량도 잃고 집조차 들어갈 수 없는 여성 손님도 있었다고 했다. 이 사장 입장에서는 이럴 땐 비용을 청구하기조차 난처하다.   고속도로 손실 데이터 연구소(HLDI)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도난 보험 청구는 2020~2023년 사이 무려 1000% 증가했다. 비단 현대·기아차에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지난해 LA 내 차량 절도는 20년래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주택 무단침입도 마찬가지다. 올림픽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2581건의 주택 범죄가 발생했다. 2019년(2125건)과 비교하면 20% 이상 폭증한 수준이다.   ‘집안(가)의 보물(보)’을 봉인하는 게 이 사장의 일이다.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을 마주할 때면 그의 마음에도 금이 간다. 특히 팬데믹 사태 때 열쇠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빈집털이가 만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업주가 없는 틈을 타 사업체에 무단침입 등의 범죄가 급증했다. 업주들은 문단속을 보다 철저히 해야 했다.   고객의 발길도 끊겼다. 매출이 급감하자 업주가 바뀌는 일이 즐비했다. 자연스레 도어락을 교체하거나 강화하는 수요가 증가했다. 이 사장은 “모두의 형편이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았다”며 “기분이 좋지 않은 수입이었다”고 말했다. 독거노인들의 문을 따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파트 관리인이 다급하게 출장을 문의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쓰러진 한인 시니어 임차인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이 사장이 문을 따고 들어갔다. 하반신을 가눌 수 없는 한 노인이 엎어져 있었다. 이 사장은 말없이 몸을 눕혀 드리고, 물을 가져다줬다. 한인사회 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독거노인들의 단면이다.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한 선배의 말에 미국행 짐을 챙겼다. 2005년에는 기대를 안고 정착한 뉴욕에서 델리집을 차렸다. 녹록지 않았다. 곧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해 실패의 쓴맛을 봤다. 사업장을 정리하고 LA로 온 건 2010년이었다.   당시 가보열쇠를 운영하던 박봉춘 전 사장이 이 씨를 좋게 봤다. 손재주가 남다르고 성실한 게 눈에 들어 적합한 후계자로 낙점했다. 2012년, 그렇게 가보열쇠를 이어받았다. 열쇠집이 이 사장 인생의 문을 다시 연 셈이다.   이 사장에게 열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열쇠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지만 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열쇠공이 되려면 LA시, LA경찰국(LAPD) 등을 통해 반드시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문을 여는 도구인 열쇠는 적합한 사람에 의해 다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오후 8시. 상가 업주들이 하나둘씩 가게 불을 끄고 이 사장에게 인사를 건넨다. 가보열쇠도 문을 닫는 시간이다.   LA 한인타운은 젊음과 무르익음이 조화를 이루는 동네다. 이민 1세대는 타운의 기반을 다졌고, 한류는 젊은 층을 끌어들였다. 젊은 층이 거리를 메우자 타운도 덩달아 젊어진다. 신규 커피숍은 낮을 더 바쁘게, 현란한 술집과 클럽은 한인타운의 밤을 밝힌다.   촌스러움은 신선함으로 대체됐다. 대체될 수 없는 산물도 있다. 아날로그 열쇠가 그렇다.   사람 사는 동네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인타운에 여전히 생기가 도는 이유다. 서재선 기자 [email protected]‘열쇠 구멍’으로 본 한인타운 불경기 불편 가보열쇠 사장 이하 가보열쇠 la 한인타운

2024.11.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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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룩하고 불편한 속, 차(茶)로 다스린다

인생의 즐거움 중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없다.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튼튼한 위가 필수인데 스트레스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의 소화와 위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지 오래다. 식사를 제때 못해서, 과식을 반복해서, 또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능력은 나날이 떨어진다.     속이 쓰리고 아플 때, 답답하고 더부룩할 때 마시면 위가 편안해지는 차가 있다.     'GC 내츄럴'의 '에보디아'는 양한방 통합 의학 박사와 의학 전문가들이 다양한 연구 및 임상 경험을 통해 개발한 천연 위 건강 차다. 자연의 약초를 발효 후 주성분만을 추출하여 농축한 100% 자연 유래 생약 성분의 과학 한방 약초 영양제. 소화기가 허약하고 냉증으로 인한 복통에 유효하며, 만성 위장염, 위산과다, 위궤양 등에 효과가 빠르다.     또한 소화불량에 복용하면 위장 기능을 조절하고 소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에보디아와 함께 항균성에 우수한 황금, 비장과 위를 보호하는 작약, 만성 위장염에 진정 효과가 뛰어난 복령 등 약초와 함께 배합해 그 효과는 배로 좋아졌다.     복용법 또한 간단하다. 속이 불편할 때 따뜻한 물에 타서 차로 즐기면 된다. 공복에 마시면 효과가 더 뛰어나다. 에보디아 1박스(20개)는 중앙일보 '핫딜'에서 60달러에 절찬 판매되고 있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핫딜 불편

2024.08.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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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것이다’ 투는 불편하다

아는 사람이 책을 냈다. 그는 책에서 ‘것이다’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것이다’는 문장에서 몇 가지 기능을 한다. “담배는 해로운 것이다.” ‘담배는 해롭다’를 이렇게 쓰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것이다’는 강조하면서 설명한다.     다음 같은 문장에서 더 확연히 드러난다.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것이다.” ‘것이다’가 있어 왜 울었는지가 선명하다. 그렇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울었다”처럼 썼다. 뭐가 더 나을까. 그런 건 없다.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다. 선택은 자유다.   “아픔은 다 잊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짐작이고 예상이다. ‘것이다’는 ‘추측’을 나타낼 때도 흔하게 쓰인다. ‘것이다’가 들어간 이런 문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아픔은 다 잊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한다.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할 것이다.” 이는 지시하는 것처럼 읽힌다. ‘것이다’는 지시나 명령, 훈계의 뜻을 전하기도 한다. 그럴 의도가 없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권유’하면 된다.   ‘것이다’가 지나친 문장이 곳곳에 있다. ‘타당하다’는 걸 밝히는 상황에서 “다수결로 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면 늘어진다. “다수결로 정하는 게 타당하다”로 하면 된다. 우리말 바루기 불편 명령 훈계

2024.06.16. 19:00

스스로 한계 정하지 않았나 돌아보고…불편한 것 시도하면 성장의 기회 열려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을 마다하고 다소 어려워 보이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는 늘 쉽지 않다. 친근한 느낌을 주는 전혀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삶의 방식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종교작가인 닐 도널드월쉬는 “인생은 당신의 안락한 구역의 끝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강인함은 역경의 습격을 무찌르는 영혼의 잠재력이다. 담대한, 자신감, 확신, 인내, 건실함이 모여 강인함을 만든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자   새롭고 두려운 일을 시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작할 때는 불편하다. 시도할 때는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잘할 수 있을지, 혹은 하는 것이 유익할지 확실하지 않게 느껴지며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에 바빠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우선 충분한 정보를 찾아보자. 낯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영을 배우는 것이 두렵다면 낮은 물속에서 놀면서 환경에 친숙해지면서 두려움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며 도전에 성공했을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시도해 보는 것이다.     ▶틀에 박힌 패턴을 깨 보자     내성적인 성격인 사람들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말이 거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먼저 하루에 한 명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를 도전해 볼 수 있다. SAT 공부를 하면서도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절대 만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공부한다. 왜 그럴까? 머리가 나빠서 정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만점을 받을 만큼의 노력을 더 들어야 하는 것이 싫거나 겁이 나는 학생들도 있다. B를 받는 학생들 중에는 그만큼만 노력하기를 원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것이 싫다고 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상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자신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정해 버리는 일은 매우 쉽다. 하지만 이것을 깨고 나올 때 기분 좋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다. 참 희망적이며 기분 좋은 이야기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새로운 일을 하나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가능성보다는 잠재된 위험을 먼저 본다.     ▶실패를 즐길 수 있다면     걸음마를 뗄 때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안전하고 당당하게 걷는 것이 가능할까? 누구나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다시 걸음을 걷기에 가능한 일이다. 심리학자 스나이더는 그의 책 ‘희망의 심리학(the Phychology of Hope)’에서 힘든 순간, 우리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후에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의지력이 가해진다고 했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이전에 난관을 극복한 사람이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성장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도전의 어려움 때문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것은 공포감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들이 겪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시기보다 강렬하다는 사실을 교사와 부모는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될 실패에 대해 우리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므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부모도 도전하자     청소년 재단을 운영하는 필자는 수천 명의 회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십대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디스코드’를 소개받았다. 카카오톡과 같이 여러 사람들이 그룹 방을 만들어 소통할 수 있으며, 사진과 같은 파일 전송도 용이하고, 화상 미팅도 가능한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이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부분 때문에 통신수단으로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배우기에 어려운 것도 없었다. 그전 친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하는 부담에서 오는 거부감이 컸다. 거기다 문제는 나 한 사람 바꾸는 건 쉬운 일이지만 모든 학부모들에게 나가는 공지도 바꿔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 되고 있다. ‘굳이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술도 배우고, 신세대 자녀들이 사용하는 것을 공부하고 함께 익숙해지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배워 나가보자고 권유하고 싶다.     ▶문의: (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한계 불편 심리학자 스나이더 정신적 노력 사춘기 청소년들

2022.07.31. 19:00

[문화 산책] ‘양간도’의 불편한 진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재미 동포사회를 ‘양간도(洋間島)’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만주의 북간도(北間島)에 빗댄 말이다.   양간도? 조국과 서양 사이에 떠있는 섬,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한인사회를 낮잡아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모로 새겨봐야 할 상징적이고 절묘한 비유임을 느낀다. 내키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양간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섬이다, 외로운 섬. 미국땅 한 귀퉁이에 고달프게 떠있는 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여기에도 못 미치고 저기에도 못 미치는 어정쩡한 섬, 그래서 외롭고 고달프고 서러운 양간도 주민이다.   섬 살림은 고달프다. 조국과 미국 사이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끼어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니 늘 긴장해야 한다. 균형이 깨지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아니면 어설픈 미국 사람처럼 일그러지게 된다. 그렇다고 완전한 미국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서럽다.   하지만 서럽다고 주저앉아 한탄이나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양간도를 축복의 섬으로 만드는 일이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양쪽을 이어주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쪽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양쪽을 이어주려면 우선 내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양간도에는 본질적인 ‘불편한 진실’이 한 가지 있다. 한인커뮤니티가 지금처럼 계속 발전을 거듭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이민이 계속 줄어들고, 새로운 이민이 오지 않으니, 한인사회가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고 쇠퇴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유대계처럼 완전히 미국 사회에 녹아들어 살면서 민족적·정신적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지킬 수도 있고, 차이나타운처럼 요란하게 드러내 놓고 개성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일본 커뮤니티와 비슷한 운명일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아무튼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바람직한 방향설정을 위해서는 1세와 2세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화예술도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언어를 다루는 문학이나 연극 같은 분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한글로 된 문학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줄어들 테니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방향전환이 불가피하다. 영어로 쓰든가, 한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작품을 쓰든가….   아마도 영어로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로 쓴 작품도 한국문학인가라는 문제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아무튼 주인공은 당연히 2세, 3세들이다. 당연히 앞날의 계획이나 방향 설정은 2세, 3세들을 주역으로 설정하고 세워야 한다.   2세들에게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이들은 우리 같은 ‘교포’나 ‘재미한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난 미국사람인데도 사회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부모 세대나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정체성과 자신감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없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 2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들을 위해 판을 깔고, 마당을 펼쳐주는 것이 1세들의 의무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양간도 불편 양간도 조국 우리 양간도 재미 동포사회

2022.01.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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