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달의 날을 보내고
추석이 지났습니다. 추석이 지났으니 앞으로 가을이 깊어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작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 점점 그저 휴일로만 여겨지는 듯하여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번 추석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추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더 잘 보내면 좋겠습니다. 추석은 이름에서 어떤 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은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니 가을에 맞이하는 명절입니다. 그런데 저녁 석(夕)이 들어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가을이면서 달이 중요한 날이라는 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추석을 달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정확히는 가을 저녁 보름달의 날입니다. 한가위의 어원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가장 큰 보름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석과 비교할 수 있는 날로는 설날이 있습니다. 설날도 사실 이름만 봐도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설은 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년을 우리는 한 해라고 합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때이기 때문에 설은 해의 의미를 갖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설이 나이를 나타낼 때는 ‘살’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옛말에서 설과 살은 같은 어원의 말입니다. 몇 살이냐는 말은 몇 설이 지났느냐는 뜻입니다. 태어난 지 몇 해가 되었냐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이라고 한다면 생일이 지난 것이 아니라, 설이 지난 수를 세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설날은 해의 날이고, 추석은 달의 날입니다. 해의 날과 달의 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해는 밝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침이 되면 그래서 우리는 새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해가 뜰 무렵을 새벽이라고도 하죠. 모두 해와 관련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해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새해 일출을 보고 소망을 빌기도 하지만, 평상시에 해를 보고 소원을 비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에게 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민족은 설날보다는 추석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예전에 보면 설에는 고향에 못 가더라도 추석에는 꼭 가려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은 설보다는 추석이었습니다. 아마도 추석이 가을에 있는 것도 이유가 될 겁니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추수(秋收)라는 말 자체에도 가을이 이미 들어있습니다. 우리말에도 ‘가을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추수하다의 의미입니다. 가을은 추수의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당연히 넉넉한 시간입니다. 또한 추수는 감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추수라는 말 뒤에 감사라는 말이 붙는 예가 많습니다. 추석은 다른 말로 하자면 추수 감사절인 셈입니다. 추수를 하면 감사해야 할 사람 또는 대상이 생각납니다. 신이나 조상, 부모와 친척, 친구 등 감사해야 할 대상도 많습니다. 넉넉하기에 나누어야 합니다. 지금도 설보다는 추석에 훨씬 더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감사의 선물을 나누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추석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물을 나누는 날이기 바랍니다. 고마움을 전달하는데 물질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추석은 달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해보다 달이 좋습니다. 물론 태양의 역할이 크지요. 밝은 시간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은 어두운 거리를 비추어 주고,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게 합니다. 추석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그리움을 나누고, 더 많은 고마움을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에 있으면, 추석이 더욱 아련할 겁니다. 추석이 미국에서도 밤길을 비추는 고마움으로, 소원을 비는 날로, 감사의 날로, 축복의 날로 기억하고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맛있는 송편도 서로 나누면서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번 추석 가을 저녁 설날도 사실
2025.10.12.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