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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 접었지만 묘지 봉사는 평생 할 터"

가든그로브에서만 28년 동안 구두 수선공으로 살아온 로마노 김(70)씨가 최근 은퇴했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가든그로브 불러바드, 시카모어 스트리트 교차로의 점포를 정리했다. 가게 문을 닫던 날, 몇몇 단골손님은 선물을 들고 찾아와 이별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김씨는 가든그로브로 오기 전, 어바인에서 보낸 5년을 합쳐 총 33년 동안 구두를 닦고 수선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최근 20년 동안은 열쇠 수리공을 겸하며 두 우물을 파기도 했다.   김씨는 구두 수선이 한인사회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지 오래라고 말했다. “비싼 구두는 예외지만, 어지간하면 구두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치지 않고 새로 사서 신는 시대가 됐다. 당연히 일감이 줄 수밖에 없다.”   김씨는 구두를 관리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좋은 구두를 꺾어 신은 흔적을 보면 안타깝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전과 달리, 구두를 건성건성 고치는 사례가 늘었다. 다른 곳에서 엉터리로 고친 구두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 세태가 그런 것 같다.”   타인종 고객도 많았다. “베트남계는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인간적이더라. 가게 문 닫을 때 짐을 싸라고 빈 상자를 여러 개 가져다주는 이도 있었다. 중동계는 큰손 고객이다. 1000달러, 2000달러가 넘는 고가의 운동화를 밑바닥까지 깨끗이 닦아달라며 가져오는 이도 만났다.”   1980년 미국에 온 김씨는 뉴욕, LA를 거쳐 오렌지카운티에 정착했다. 한동안 정원사로 지내다가 구두 수선을 시작했다.   김씨가 유명해진 이유는 구두 수선만이 아니다. 그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묘지 봉사를 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인 김씨는 OC와 인근 지역 묘지, 해외 파병 후 전사한 군인들의 묘소를 찾아다니며 비석을 닦고 혹시 문제가 있으면 수소문해 고인의 가족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누가 시켜 하는 일도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봉사가 아니다 보니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았다. “미친놈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묘지 세일즈맨으로 오해받은 적도 허다하다.”   김씨는 이민 초기 한국의 남동생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당시 김씨는 동생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그때 동생이 떠나는 모습을 못 봐서 그런지 묘지 봉사를 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김씨는 동갑내기 부인 티나 김씨와 미드웨이시티에 살고 있다. 김씨는 당분간 은퇴 생활을 즐겨볼 생각이라며 “묘지 봉사는 평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임상환 기자구두 수선 구두 수선 동안 구두 타인종 고객

2025.05.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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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몸도 마음도 수선이 필요해

남편의 허리가 31인치로 줄었다.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이다. 내 일이었으면 오죽 좋으련만. 아무튼 바지 여섯장의 수선을 맡겼다. 연변 아주머니인 린다네 수선점이다. 고쳐 입느니 새로 살까도 싶었지만 불경기엔 지출을 안 하는 것이 돈 버는 일이 아닌가?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면 그 수선비도 안 들겠지만 이젠 눈이 어두워 바느질이 어렵고, 하도 많이 해본 옷 수선이어서 지겹기도 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 돈벌이가 얼터레이션(alteration)이었다.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할 때 텍사스 오스틴의 유태인 세탁소 톱 클리너스에서 일감을 받아다가 집에서 옷 수선을 해 가계에 보탰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벌어 남편 공부 시켰다고 큰소리치며 산다. 오래된 옷이나 낡은 옷을 버리지 않고 수선해서 입는 미국인들의 습관 덕에 돈도 벌고 절약 정신도 배웠다.   린다 아줌마는 “일 없습네다”하며 허리 줄이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말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엔 옷수선점이 성업이다. 일이 밀렸다며 일주일 뒤에나 찾아가란다. 옷 수선해서 번 돈으로 연길에 번듯한 집을 한 채 더 샀다고 자랑한다. 불경기에도 실속 있는 비즈니스가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경기가 좋거나 아니거나 간에 맞지 않는 옷은 고쳐 입어야 한다. 비단 옷 뿐이랴? 고쳐야 할 것은 고쳐가며 살아야 한다.   이번 우기엔 많은 비 때문에 피해를 본 집들이 있었다. 우리 사무실도 작년에 비가 샜건만,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올해는 더욱 볼만했다. 무려 다섯 군데에 쓰레기통을 받쳐두고 빗물을 받았다. 건축회사의 사무실 광경이 그러하니 유구무언이었다. 날씨도 우중충한데 사무실에 가면 쓰레기통에 포위되어 일을 보는 격이어서 짜증이 났다.   며칠 전 한인타운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나는데 커다란 배너가 걸려있었다. ‘나를 고치소서’라고 적혀있고 그 밑에 ‘한 해를 무릎으로 시작합시다’라고 쓰여있다. 새해의 표어인 모양이다. 그걸 보니 내 마음이 급해졌다. 나도 빨리 무릎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살면서 신장도 위도 관절도 한 번씩 대 공사를 하여 몸은 대강 정비된 듯했는데 간에서 발견된 혹은 무어란 말인가? 여기저기 기도만 부탁해 놓고 정작 환자인 나 자신은 망연자실하여 멍 때리는 시간이 많다.   얼터레이션일을 놓으면서 마음도 놓아버리고 살았나 보다. 남편이 공부를 마쳤다고, 바라던 직장을 가졌다고, 시민권을 받았다고, 살림이 조금씩 펴진다고 안심하고 살았다. 그사이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았다. 많이 교만해지고 무척 이기적이 되고 갈수록 물질성향이 되었다. 내가 쓰는 글도 치열함이 줄었다.   초심을 회복하며 사는, 마음의 얼터레이션이 절실하다. 고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내 마음에서부터 먼저 일어나길 소원한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마음 수선 남편 공부 유학생 남편 사무실 광경

2023.05.1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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