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어렵다. 우편투표 용지를 받으면 어려움의 정도는 그 두께로 가늠한다. 다음달 7일 치러지는 올해 예비선거 역시 두툼했다. 뜯어보니 읽기 전부터 지친다. 내가 사는 LA시 13지구 유권자 집에 배달된 우편투표 용지는 8페이지다. A4 용지보다 30%쯤 더 긴 종이 앞뒷면에 글이 빼곡하다. 벌써부터 올라오는 피로감을 꾹 참고 한 장씩 넘겨본다. '기자가 투표 용지 한번 안 읽어봐서 되겠나.'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투표는 더 어려워진다. 뽑아야 할 선출직은 30개고, 용지에 적힌 후보자수는 무려 191명에 달한다. 연방 상.하원에 각 1명씩을 시작으로 LA시 선출직은 시장, 시검사장, 회계감사관, 시의원, 교육위원 등 5명에 표를 줘야한다. 또 LA카운티는 수퍼바이저, 셰리프국장, 조세사정관, 판사 9명 등 12명을 투표해야 한다. 캘리포니아주 선출직으로는 주지사를 비롯해 11명을 뽑아야 한다. 투표의 첫 난관은 직책명의 이해다. 보험국장, 조세형평국위원, 총무처장관 등등 당최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지 모른다. 구글로 찾아봤다. 역할이 뭔지 알아야 적임자를 고를 것 아닌가. 대충이나마 감을 얻고 투표할 후보 명단을 봤다. 더 낭패다. 아는 이름이 없다. 용지에 적힌 후보 정보라고는 소속 정당과 직업 딱 2가지다. 말했다시피 용지에 인쇄된 전체 후보는 191명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만 26명이고, 연방 상원의원에도 23명이나 출마했다. 모든 후보의 정보를 한 명당 1분씩만 봐도 191분, 꼬박 3시간11분이 걸린다. '성실한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거리며 후보 정보를 뒤졌다. 고맙게도 인터넷에는 '밸럿피디아(Ballotpedia.org)'라는 선거 전문 백과사전이 있다. 출마 후보의 이력은 물론이고 출마의 변도 일문일답식으로 자세히 올려져있다. 올해 예비선거 투표용지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후보는 연방상원직에 도전한 티모시 어시치 주니어다. 민주당 소속이고 의사다. 어시치 후보의 이름은 금시초문이다. 직업 정치인이 아닌 첫 출마한 아웃사이더니 당연하다. 반면 그가 맞서는 현역인 알렉스 파디야 의원은 익숙하다. LA지 7지구 시의원에 주상원의원, 주총무처장관까지 지냈으니 그의 이름 옆 공란을 칠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유혹을 꾹 참고 그의 출마 정보를 읽었다. 마지막 질문과 답은 이렇다. -의회에서 타협은 어떻게 해야하나? "주고 받는 건 의회의 본질이다. 하지만 본래 법안에 다른 법안을 끼워넣어 추가하는 건 타협이 아니다. 반대로 일부를 빼서라도 통과시켜야만 국민들에게 빨리 혜택을 줄 수 있다." 어시치 후보의 그럴 듯한 철학을 읽고는 나머지 190명 후보의 변을 보는 걸 포기했다. 아마추어 정치인이 이 정도라면 후보들의 말로 적임 여부를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쯤 되면 드는 생각은 하나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열심히 일할 후보들의 명단은 없을까.' 투표 용지는 사실 유권자들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난수표나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신성한 권리를 충실히 수행하고 싶지만 투표다운 투표를 하긴 어렵다. 뭘 하는 자리인지 모르고 200명에 가까운 후보들은 더더욱 잘 모른다. 답 없는 고민만 하다가 결국 지지 정당이나 낯익은 후보 이름을 찾아 '찍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 해본 사람이 잘하겠지'라거나 '같은 한인이니까 무조건 뽑아야 하지 않겠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소신이나 공약 대신 자기합리화가 투표에 담긴다. 투표가 어렵다는 한인들을 위해 중앙일보는 난수표를 해독할 수 있는 '커닝페이퍼'를 하나씩 내놓고 있다. 후보들을 소개하고 공개지지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나를 위해 일할 적임자가 누군지 검증했다.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난감함에 고민하는 것은 중앙일보의 몫이다. 투표는 쉬워야 한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스토리 In 투표용지 난수표 우편투표 용지 출마 후보 후보 정보
2022.05.15. 14:03
무효표는 많았다. 이번 대선에서 30만 7542표가 소용없는 표였다.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간 득표수 차이인 24만7077표 보다 6만465표나 더 많다. 역대 대선과 비교해도 많다. 무효표는 15대 40만 195표, 16대 22만 3047표, 17대 11만 9984표, 18대 12만 6838표, 19대 13만 5733표였다. 직전 대선인 19대와 비교하면 이번 20대 대선에서 2배가 넘는 무효표가 나왔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5대 대선에서 발생한 무효표 40만 195표 이후 25년 만에 가장 많다고 한다. 분석가들은 무효표가 많은 가장 큰 이유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가 각각 윤 당선인, 이 후보와 단일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퇴한 후보들의 이름이 9일 본투표의 투표지에 여전히 올라 있어서다. 재외선거에서도 무효표는 많았다. 이번 재외선거는 해외 115개국(177개 공관), 219개 투표소에서 실시됐다. 재외선거에 참여한 16만1000명중 1만3000여표가 무효표였다. 재외선거 무효표는 사실 무효가 될 표가 아니었다. 2월23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됐는데 당시는 안 후보나 김 후보가 사퇴하기 전이어서 두 사람을 찍은 표들이 모두 무효표로 처리됐다. 2009년 이후 도입된 재외선거 대선에서 후보 사퇴로 인한 무효표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신껏 찍은 내 표가 무효표가 됐다는 데 한인들의 허탈감은 컸다. 미국 중부에 사는 한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기 위해 16시간을 운전했는데 단일화 때문에 내 표가 무효표가 됐다"며 "안철수 찍으면 사표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먼길 마다하지 않고 가서 투표했는데 내가 지지한 후보가 내 표를 사표로 만든 셈"이라고 했다. 분통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외국민 투표 종료 이후 후보 사퇴를 제한하는 '안철수법' 제정해 주세요"라는 글로 표현됐다. 글의 작성자는 내 표를 무효표로 만든 후보와 제도를 꾸짖는다. "투표를 다 끝낸 이후의 후보 사퇴로 인한 강제 무효표 처리는 그 표를 던진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선례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다음 선거에도 재외국민 선거 진행 이후 급작스럽게 사퇴하는 경우가 생길 텐데 그렇게 되면 재외국민 투표자들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겠는가" 재외선거에선 유효표가 무효 처리됐지만 본투표에서는 고의적인 사표들도 있었다. 일부러 무효표를 던진 한 유권자의 소감은 이렇다. "1번과 2번 사이 빈 공간에 도장을 찍었어요. 도저히 누굴 찍을 수가 없어서…" "투표 용지에 아예 도장을 찍지 않았어요. 지난 5년간 민주당에 실망을 많이 해 정권이 바뀌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국민의힘도 쇄신했다는 느낌은 못 주는 것 같아 손이 가지 않더라구요." 개표참관인이 놀란 장면들도 있다. 대전에서 개표사무원으로 개표 작업을 진행한 강모씨는 "한 후보의 이름을 긋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써 놓은 표도 있었다. 유권자가 '뽑을 사람이 없다'는 거부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한 것 같았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0.73% 차이로 이기고 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유권자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특정 후보를 찍은 유효표보다 무효표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1번과 2번 사이에 찍은 도장, 아무도 찍지 못한 도장, 노 전 대통령의 이름 위에 찍힌 도장은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유권자로서 권리와 의무인 투표는 하겠지만 차마 당신들은 뽑을 수 없다'는. 여야 모두 박빙 승부의 승패 원인을 분석하느라 바쁘다. 지역별, 세대별, 성별 표심을 읽으려고 고심한다. 해답은 일부러 던진 '사표'에서 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무효표는 많았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스토리 In 무효표 사표 재외선거 무효표 재외국민 투표자들 강제 무효표
2022.03.13. 18:58
풋볼 지수가 그립다. 매년 수퍼보울이 열리는 이맘때면 네 글자는 머릿속에서 풋볼 공처럼 튄다. 13년 전 기사 때문이다. 미주중앙일보가 2009년 1월29일자에 게재한 특집 기사의 제목이 ‘풋볼 지수’였다. 한인들의 미국화 정도를 수치로 가늠한, 이전에 없던 실험적인 기사였다. 1면에 커버 기사로 알리고 안쪽 2개면을 관련 기사 6꼭지로 다 할애했으니 편집도 파격적이었다. 기자 3명이 매달린 취재는 ‘가장 미국적인 문화 중 하나가 풋볼’이라는 대전제로 시작한다. 그 뒤로는 연역적으로 풀었다. ‘미국인이라면 풋볼을 잘 안다’→ ‘한인도 미국에 산다’→ ‘그렇다면 한인도 풋볼을 잘 알까?’로 화두를 던졌다. ‘풋볼을 얼마나 아는지’가 ‘미국화의 척도’라는 등식을 얻었으니 조사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풋볼 기초상식 10개 문항을 다양한 연령대의 한인 266명에게 물었다. ‘한 팀당 몇명이 뛰나’가 예문 중 하나다. 그 결과 한인들의 풋볼 지수는 10점 만점에 평균 2.6점에 그쳤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평균 지수가 8~9점인데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미국의 한인 이민사회가 여전히 ‘고립된 섬’이라는 증거였다. ‘아마 그럴 것이다’는 현상을 수치로 입증했으니 뒤따른 관련 기사들은 힘있게 달릴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과 국을 먹고, 한인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저녁에 한국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평균 한인’들에겐 풋볼(미국) 문화가 끼어들 틈이 없다.” 기사는 이해하기 쉬웠다.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지수(index)들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빅맥 지수다.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해 각 나라의 구매력을 평가 비교하는 경제 지표로 쓰인다. 한국에는 ‘김치 지수’가 있다. 4인 가족용 김치 담그는 비용을 수치화한 소비자 체감형 물가지표다. 풋볼 지수 기사의 반응은 갈렸다. 참신하다, 재미있다는 격려가 많았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고작 10문항으로 가늠할 수 있느냐, 266명이라는 작은 표본이 한인 사회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특집을 준비한 3명의 기자들은 만족했다. 좋다, 나쁘다는 뻔한 이분법적 평가는 이들에게 진부했다. 이들이 바랐던 건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의 확산이었다. 그 자신감은 독창성에서 왔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부정적인 평가마저도 새로웠다. 13년 전의 풋볼 지수를 꺼낸 건 수퍼보울 때문이 아니다. 더이상 새로움을 찾기 어려운 언론의 현실이 떠올라서다. 신문(新聞)은 구문(舊聞)이 된 지 오래고, 라디오는 운전할 때나 들을까 말까며, TV로는 9시에 뉴스 대신 차라리 넷플릭스를 본다. 사건은 동네 주민이 스마트폰으로 먼저 생중계하고 정치판 해설도 유튜버들이 더 깊게 전한다. 기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얼마 전 식당 뒷자리에서 들려온 대화에 뜨끔했다. “다른 신문인데 기사는 다 똑같아, 볼 게 없어.” 신문사 밥을 먹는 사람으로 억울한 생각도 든다. 편집국 입장에선 인력은 없고, 지면은 많다. 경영진 입장에선 지면광고 시장은 계속 좁아지는데 인건비는 갈수록 오른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아직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미 답은 나와있는지도 모른다. 종이 지면을 통해 읽을 수밖에 없는 기사, 라디오로 들어야만 더 잘 들리는 보도, TV로 봐야만 하는 뉴스 말이다. 몇분 먼저 보도했다는 이유로 ‘단독’이라는 머리글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다른 언론에서 따라갈 수 없는 보도가 ‘단독’이어야 한다. 13년 전 풋볼 지수를 쓴 기자 3명은 신문사를 떠났다. 그들이 던진 공을 누군가는 받아 터치다운을 하기 바란다. 풋볼 지수가 그립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스토리 In 풋볼 지수 풋볼 지수 풋볼 기초상식 관련 기사들
2022.02.13. 16:56
마리화나는 마약이 아니다. 대중적 인식은 그렇게 굳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기호용' 판매와 재배를 전면 허용한 지 올해로 벌써 5년째니 그럴만도 하다. 마리화나가 마약의 꼬리표를 뗀 흔적은 일상에 널려있다. 특유의 구린 냄새는 길거리, 아파트, 건물, 주차장 어디서나 코를 찌른다. 주택 발코니에서는 '마리화나 화분'도 종종 목격된다. 사고 팔고 피우는 것뿐만 아니라 21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집에서 6그루까지 합법적으로 기를 수도 있다. 담배보다 더 흔해진 이 현상은 전국적이다. 2021년 현재 18개주와 워싱턴 DC, 괌까지 20개 지역에서 마리화나는 '기호용(recreational)'이라는 합법적 제품명으로 '의료용'으로만 제한됐던 규제를 벗었다. 합법화를 놓고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시행 후 큰 부작용은 없는 듯했다. '마리화나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거나 '마리화나에 취해 총기를 난사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부작용의 냄새는 흔한 일상이어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얼마 전 플로리다의 인기 한인 유튜버가 본인이 마리화나에 빠져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동영상을 통해 고백했다. 유튜브상에서 '코리안 재호(Korean Jaeho)'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지재호(20)씨다. 그는 고교 졸업반 시절인 3년 전 미국 고교생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영상에 담아 올리면서 17만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거느린 '스타 유튜버'로 떠올랐다. 그의 성공담을 미주중앙일보 뉴스레터로 소개했었다. 학교에서 유일한 한인이었던 그는 차별에 시달릴 법도 했지만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여러 친구와 잘 어울렸다. 학점도 3.8이 넘는 우등생이었기에 유튜버로서 그의 성공은 다른 한인 청소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9월부터 돌연 유튜브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올린 동영상에서 '어떻게 거의 죽다 살아났는지(How I almost died)' 털어놨다. 그가 마리화나에 빠지게 된 건 팬데믹이 터지면서다. 펄펄 끓는 청춘이 나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니 마리화나라도 피워야 했단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니 언제든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마리화나는 '입문용 마약(gateway drug)'이 됐다. LSD, Acid 등 다른 마약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그러다 일주일에 한번, 어느새 매일 빠지게됐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혼자 방에서 마약을 먹고 망상에 갇혀 자해 행위를 하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소란을 피운 끝에 경찰에 체포됐다. 재소자병동에 72시간 수감됐던 그는 그 후 한 달간 중독재활센터에 갇혀 지내야 했다. 지금은 회복됐지만 그 안에서 꼬박 보름 동안 금단증상 때문에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냥 죽은 줄 알았다. 내가 죽어서 이 세상에 갇힌 줄 알았다"고 했다. 그의 경험은 지금 한인 10대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흔해 빠진 일상이다. 현상이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뿌리가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마리화나에 대해 잘 모른다. 호칭조차 낯설다. '조인트(joints)'가 말아 피우는 대마초고 '블런트(blunt)'는 시가처럼 생긴 마리화나며 '봉(bong)'은 물담배 방식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전자담배로 피우는 액상 마리화나는 냄새도 나지 않는다. 마리화나(marijuana)의 어원에는 여러 가설이 있다.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멕시코 원주민 나우아족의 언어 나와틀어인 '말리후안(Mallihuan)'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말리후안은 '포로(prisoner)'라는 뜻이다. 이 가설은 마치 팬데믹 상황을 예견한 듯 들린다. 감옥처럼 갇힌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로 선택한 마리화나가 실제 감옥으로 향하는 출입문(gateway)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그 출입문 앞에서 얼마나 많은 한인 청소년들이 서있을지. 마리화나는 마약이 아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스토리 In 말리후안과 마리화나 마리화나가 마약 마리화나 화분도 액상 마리화나
2022.01.17. 12:11
백신이 문제다. 어디를 가나 백신 찬반론 얘기다. 접점 없는 충돌은 종종 토론을 넘어 감정다툼이 되고 만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어느 편을 들기가 어렵다. 양쪽 모두 논리적 허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자기 주장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백신을 맞아야만 한다는 쪽에서는 효용성을 앞세워 부작용에 대해선 눈감는다. 극소수일 뿐이니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쪽에서는 백신의 효용성을 믿지 않고 부작용을 확대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대전제 자체를 부정한다. 팬데믹 이후 심해진 사회현상중 하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다. 좀 어려운 말로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다 확증편향은 있다. 특히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간절히 바랄 때, 그동안 옳다고 믿어온 신념을 지켜야만 할 때 더 도드라진다. 확증편향에 빠지기는 쉽다. 나열된 사실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경제학에선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 하는데 맛있는 체리만 골라 먹는 걸 뜻한단다. 신문, 방송 매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게 된 이유중 하나가 기자들의 ‘체리 피킹’ 행위 때문이다. 먹음직한 팩트만 강조하고, 식욕을 떨어트릴 수 있는 팩트는 쏙 빼면 없던 일도 사실로 만들 수 있다. 2005년 당시 폭스뉴스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오라일리 팩터(O’Reilly Factor)'의 체리 피킹은 전설처럼 남아있다. 부시 정부의 빈곤퇴치정책을 치켜세우기 위해 직전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4년차 빈곤율과 부시 집권 4년차를 비교했다. 각각 13.7%와 12.7%였으니 시청자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전체 그림의 사실은 달랐다. 클린턴 재임기간에 빈곤율은 계속 낮아졌고 퇴임한 2000년에는 3.4%까지 떨어졌다. 쉽게 말해 빈곤율 3.4%로 출발한 부시 행정부가 불과 4년 만에 다시 12.7%까지 올려놓았던 셈이다. 비판을 해도 부족할 통계를 체리 피킹으로 교묘하게 눈속임한 보도였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확증편향을 갖게 되는 이유를 크게 2가지로 본다. 먼저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이라는 시각이다. 내가 지켜야만 하는 신념과 충돌하는 정보는 축소나 왜곡으로 '재해석'해 위험요소를 차단하는 생존 전략이라는 의견이다. 신념의 붕괴를 막으려는 본능적 행위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지적 우월감이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확증편향 현상은 최근 SNS라는 '체리 피킹' 도구를 만나 더 극명해졌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보여준다. 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친구로 이어준다. '다른 사실'을 알 기회조차 없어졌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마음 편하다고들 한다. 접점없는 백신 논쟁에도 SNS가 한몫했다. 상대를 반박할 전문자료들은 이미 '내 친구들'이 친절하게 체리피킹해 SNS로 알려줬으니 절대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런데 양쪽 모두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어떤 백신도 100% 안전하거나 100% 효과가 확실할 수 없다는 '팩트'다. 그러니 백신을 믿을 수 있다느니 반대로 효과가 없다느니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백신의 접종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온전히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절대적 진실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쪽을 선택을 해야만 할 때 사람은 '최선'을 고른다. 물론, 최선의 우선순위는 개개인이 다를 수 있다. 2010년과 2013년 2차례 아프리카의 극빈국인 '차드'에 취재차 다녀왔다. 듣도보도 못한 나라에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백신 접종이었다. 장티푸스, 황열병, 광견병 등 3가지 백신을 한꺼번에 맞는 바람에 며칠간 심하게 앓아야 했다. 또 말라리아 약인 '클로로퀸'은 다녀와서까지 한동안 먹어야 했고, 그 부작용으로 두통에 시달렸다. 아프고 힘든 백신과 약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안전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해보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때 아들은 돌을 갓 넘긴 아기였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아들에게 몹쓸 병을 옮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당시 내겐 '최선'이었다. 백신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스토리 In 확증편향 백신 백신 논쟁 확증편향 현상 가나 백신
2021.12.12. 18:23
의사들은 억울하다. 노력과 결과가 항상 같지만은 않아서다. 정성껏 치료해도 예후가 나빠지면 돌팔이 소리를 듣기 일쑤다. 일상의 포기도 강요 받는다. 긴급전화는 시도 때도 없다. ‘긴급하지 않은’ 전화라도 받지 않으면 무책임한 의사로 낙인 찍힌다. 팬데믹이 터지고 의사들의 자괴감은 더 깊어졌다. 갇힌 일상의 억눌린 감정들은 종종 의사들에게 향한다. 얼마 전 만난 한 내과 의사는 환자에게서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놨다. “한 환자가 코로나19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아 검사했다. 걱정대로 양성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검사결과를 받은 환자가 ‘분명히 당신 병원에서 감염됐다’면서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하더라.” 이러니 의사 노릇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푸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사들이 얼토당토않다고 말하는 환자들의 주장 중 일부는 억울하다는 항변만으로 덮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지난 2월 LA한인타운 내 산부인과 박모 전문의를 상대로 가주검찰이 제기한 환자 성추행 혐의도 그중 하나다. 명문대 출신의 그는 1989년 의사면허를 받은 32년차 베테랑 전문의다. 가주의사면허위원회(MBC)가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가주 검찰의 고소장에는 박 전문의로부터 진료 중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한인 여성 3명의 주장이 담겨있다. 피해 일시는 2017년, 2018년, 2019년으로 서로 다르지만 모두 30대 여성이다. 환자들의 주장에는 닮은 점이 있다. 가주검찰은 “박 전문의는 환자들에게 설명 없이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가슴을 만졌다”고 고소장에 적었다. 예를 들어 ‘피해환자 1’ 여성의 방문 목적은 유방암이 아니라 자궁경부암(pap smear) 검사였다. ‘피해환자 2’ 여성 역시 아랫배 통증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윗옷 아래로 박 전문의가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부적절한 발언’이다. 예를 들어 피해환자 2는 “박 전문의는 내게 ‘성병(STD) 감염이 의심된다’면서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후 이 환자가 다른 의사에게 재검진을 받은 결과 성병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가주검찰은 고소장에서 박 전문의의 혐의를 5가지로 나열했다. 환자 1과 환자 2를 상대로 한 성착취(sexual exploitation),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sexual misconduct), 환자 3명 모두를 상대로 한 업무상 중과실, 반복된 과실행위, 진료기록 부실 등이다. 박 전문의로서는 유방암 검사의 일환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더욱이 남성인 그가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여성 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상 성추행이라는 의혹을 받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번 혐의는 더 철저하게 가려져야 한다. 통상적으로 징계 심사 과정은 의사들에게 유리하다. MBC는 15인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과반인 8명이 의사다. 설사 의사의 과실이 입증된다고 해도 면허 박탈의 중징계보다는 낮은 처벌이 내려지는 경우가 더 많다. 비영리단체 캘리포니아헬스라인이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의 성추행 징계 135건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49건이 보호관찰(probation)로 결론났다. 시간도 의사들 편이다. 피해 고발 접수부터 혐의에 대한 유무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평균 3년이 걸린다. 그마저도 의사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소송으로 항소할 수 있다. 최종 유죄로 입증되기 전까지 의사들은 무죄다. 무죄라면 억울한 항변을 3년 동안이나 되풀이해야하는 의사들도 딱한 처지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유죄라면 그 3년간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환자들의 심정 역시 짐작하기 어렵다. 심사관도, 시간도, 돈도 내편이 아닌데 말이다. 환자들은 더 억울하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스토리 In 의사 환자 피해환자 2 여성 환자 환자 혐의
2021.11.14. 12:32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정구현 / LA 선임기자·부장
2021.10.18. 19:32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라지고, 퇴근길에 증발하고, 친구와 여행간뒤 소식이 끊어지고, 마켓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집에 돌아오지 않은 한인들이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SNS는 잊혀진 사람들을 찾는데 최고의 도구이지만 정작 그들의 사진보다는 무생물들로만 가득하다. 어제 구입한 명품, 방금 뽑은 고급차, 별 다섯 개 레스토랑의 음식, 럭셔리 호텔방, 비싼 휴양지의 절경, 마스크를 쓰네마네, 백신을 맞네안맞네 등 다들 ‘나’를 알리기에 바쁘다. 팔로워수가 많은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실종자들의 사진을 한번이라도 공유해주길 바란다. 실종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
2021.10.13.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