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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손자의 졸업식

죽을 힘을 다해 손자의 시카고 의대 졸업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나는 근육무력증 환자다. 거의 20년을 약으로 연명했다. 나이 탓인가. 약효가 소진되었는가 보다. 피곤하고, 팔이 올라가지 않고, 한쪽 눈이 감기고, 운전하면 차선이 이중으로 보인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지막 날 아들에게 간다고 선언했다. 용기를 내었다. 휠체어의 도움을 받으며 온타리오 공항을 떠나서, 댈러스 공항을 경유해 시카고에 도착하였다.   미국의 3대 도시 시카고를 구경하기 위해 강변 크루즈를 타려고 나섰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5월은 매섭고 쌀쌀했다. 아들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부둣가로 가다가 보도의 턱에 걸려 뒤로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켰다. 다행히 경상이었다. 넘어지면 큰일난다는 생생한 체험이었다.     재작년 우리 옆집에 예순이 되지 않은 여인이 2층 화장대 앞에서 얼굴을 만지다 현기증으로, 뒤로 넘어지면서 목욕탕 언저리에 목을 부딪쳤다. 응급차는 환자를 실으러 왔다가 시체를 싣고 떠났다. 목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요즘도 나는 그 여자의 남편을 만나면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린다. 의자에 앉아서 화장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노인들은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특히 목욕탕에는 의자를 놓아야 한다.   크루즈 선상에서 본 각양각색의 건물은 진풍경이었다. 저 건물들이 지구의 인력이 없었으면 모두 뒤집어 곤두박질하겠지. 어려서 대보름 날 잡곡밥을 먹고 저녁에 철사 난로에 숯불을 돌리며 불장난하던 생각이 난다. 인력으로 숯이 쏟아지지 않았다.갑자기 금빛 찬란한 ‘TRUMP TOWER’가 나타났다. 그 건물에 트럼프가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환상이다.   다음날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상체를 들 수 없이 목이 팽팽하고 폭삭 주저앉고 싶었다. 손자의 이름이 불리고 졸업가운을 입은 그가 단상에 섰을 때 그의 이름을 힘껏 불렀다.   이제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호텔을 떠나기 전 기운을 내기 위하여 근육무력증 약 세 개를 한꺼번에 먹었다. 설사가 나왔다. 공항 대기실의 가족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지와 패드를 준비했었다. 일 처리를 하고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또 나왔다. 바지도 패드도 없다. 우리는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들과 딸은 당황했다. 참혹하고 처참한 장면을 생략한다.     집에 와서 하룻저녁 자고 다음날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닷새 동안 근육무력증 주사약 열병을 맞고 살아났다. 상당 기간 안정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간신히 이층을 올라가고 내려온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는 노인이 되었다. 언제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내를 위하여 운전해야 한다. 나는 운전할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고생스러웠지만 시카고 여행은 성공적인 모험이었다. 나의 손자가 자랑스럽다. 그는 고등학생 때 집사 안수를 받은 신앙이 돈독한 청년으로서 시카고 의대를 장학생으로 학비 융자 없이 졸업했다.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시사(示唆)하는 바 크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졸업식 손자 시카고 의대 도시 시카고 시카고 여행

2025.06.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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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대 교수로 돌아온 천재소년

천재 소년으로 주목을 받았던 쇼 야노(사진)가 최근 시카고의대로 돌아와 연구와 수업, 환자 치료를 하고 있다.     올해 32세인 쇼는 한국인 어머니 진경혜씨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9살에 로욜라 대학에 진학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2살에는 시카고 의과대학의 MD/Ph.D 복수 과정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중앙일보를 통해 천재 소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18세에 분자유전학과 세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21세에는 시카고 의대 병원에서 소아과와 신경과 수련의 과정을 거친 뒤 두 개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에 이르렀다. 존스 홉킨스 병원과 국립보건원(NIH)에서 유전학의 일종인 medical genetics 연구로 전문의 자격을 추가로 취득하기 위해 약 5년간 시카고를 떠났던 쇼가 최근 돌아왔다.     지난 8월부터 모교인 시카고 의대에서 조교수로 일하면서 연구 활동도 하고 환자도 보고 있다. 현재 쇼는 시카고 의대에서는 뇌전증(epilepsy)와 근육긴장이상증(dystonia)의 유전적인 요인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천재 소년이 긴 연구 과정을 거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쇼는 “4년 과정의 메디컬 스쿨과 5년 넘게 걸리는 박사과정을 마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학업이 아니라 차별이었다. 메디컬 스쿨을 12세라는 비현실적인 나이에 시작한 것도 문제였지만, 아주 어려 보이는 젊은 아시아인 레지던트와 마주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아주 쉽게 차별의 타켓이 될 수 있었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아울러 “항상 잠이 모자랐던 힘든 레지던트 시기에도 계속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도움은 주변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쇼는 “다행스럽게도 따뜻하게 살펴주신 교수님들과 동료들의 격려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을 많이 받았다. 내가 아는 만큼 환자들과 그들 가족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위로가 됐다"고 설명했다.     학업 능력이 뛰어나 또래와는 다른 진도로 공부를 했던 쇼는 홈 스쿨링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쇼는 “홈스쿨링을 아주 즐겁게 했다. 내 진도대로 배우고 싶은 만큼 마음껏 배울 수 있었고 부모님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셨다”며 “4살 때 사립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끝내고 그 후 영재학교(highly gifted school)로 옮겨 3년간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경우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홈스쿨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특별히 일반적인 학교 과정를 다 안 거쳤다고 해서 섭섭한 점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쇼의 동생인 사유리 역시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를 떠나 있는 동안 시카고 미술관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특별히 그리웠다는 쇼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와 지도, 환자 치료를 계속할 계획이다.  Nathan Park 기자시카고의대 천재소년 최근 시카고의대 시카고 의과대학 시카고 의대

2023.09.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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