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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손자의 졸업식

Los Angeles

2025.06.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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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윤재현 전 연방공무원

죽을 힘을 다해 손자의 시카고 의대 졸업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나는 근육무력증 환자다. 거의 20년을 약으로 연명했다. 나이 탓인가. 약효가 소진되었는가 보다. 피곤하고, 팔이 올라가지 않고, 한쪽 눈이 감기고, 운전하면 차선이 이중으로 보인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지막 날 아들에게 간다고 선언했다. 용기를 내었다. 휠체어의 도움을 받으며 온타리오 공항을 떠나서, 댈러스 공항을 경유해 시카고에 도착하였다.
 
미국의 3대 도시 시카고를 구경하기 위해 강변 크루즈를 타려고 나섰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의 5월은 매섭고 쌀쌀했다. 아들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부둣가로 가다가 보도의 턱에 걸려 뒤로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켰다. 다행히 경상이었다. 넘어지면 큰일난다는 생생한 체험이었다.  
 
재작년 우리 옆집에 예순이 되지 않은 여인이 2층 화장대 앞에서 얼굴을 만지다 현기증으로, 뒤로 넘어지면서 목욕탕 언저리에 목을 부딪쳤다. 응급차는 환자를 실으러 왔다가 시체를 싣고 떠났다. 목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요즘도 나는 그 여자의 남편을 만나면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린다. 의자에 앉아서 화장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노인들은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특히 목욕탕에는 의자를 놓아야 한다.
 
크루즈 선상에서 본 각양각색의 건물은 진풍경이었다. 저 건물들이 지구의 인력이 없었으면 모두 뒤집어 곤두박질하겠지. 어려서 대보름 날 잡곡밥을 먹고 저녁에 철사 난로에 숯불을 돌리며 불장난하던 생각이 난다. 인력으로 숯이 쏟아지지 않았다.갑자기 금빛 찬란한 ‘TRUMP TOWER’가 나타났다. 그 건물에 트럼프가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환상이다.
 
다음날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상체를 들 수 없이 목이 팽팽하고 폭삭 주저앉고 싶었다. 손자의 이름이 불리고 졸업가운을 입은 그가 단상에 섰을 때 그의 이름을 힘껏 불렀다.
 
이제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호텔을 떠나기 전 기운을 내기 위하여 근육무력증 약 세 개를 한꺼번에 먹었다. 설사가 나왔다. 공항 대기실의 가족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지와 패드를 준비했었다. 일 처리를 하고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또 나왔다. 바지도 패드도 없다. 우리는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들과 딸은 당황했다. 참혹하고 처참한 장면을 생략한다.  
 
집에 와서 하룻저녁 자고 다음날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닷새 동안 근육무력증 주사약 열병을 맞고 살아났다. 상당 기간 안정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간신히 이층을 올라가고 내려온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는 노인이 되었다. 언제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내를 위하여 운전해야 한다. 나는 운전할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고생스러웠지만 시카고 여행은 성공적인 모험이었다. 나의 손자가 자랑스럽다. 그는 고등학생 때 집사 안수를 받은 신앙이 돈독한 청년으로서 시카고 의대를 장학생으로 학비 융자 없이 졸업했다.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시사(示唆)하는 바 크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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